“괜찮은 하루였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Prologue"
세상에는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었다는 것이
때로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족쇄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호텔은 그렇게 17년을 함께한 공간이자 시간이다.
그 안엔 수많은 이름과 얼굴, 맛과 온도,
성공과 실수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나를 2025년의 5월로 데려왔다.
17년 동안 호텔 F&B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매일이 바쁘고 낯설었지만, 결국 ‘사람’ 덕분에 버텼고,
그 속에서 성장했다.
지금은 잠시 멈춰 돌아보며, 다음 걸음을 준비한다.
누구나 다 최종 목적지로 꿈꾸는 그림이 있으니까
다시 나답게, 천천히 살아가보려 한다.
"Some endings are just quiet beginnings in disguise."
(어떤 끝은 조용히 시작을 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 그때는 몰랐다. 이 일이 내 삶의 중심이 될 줄은
수능을 망치고 들어간 대학에서,
처음 나갔던 JW메리어트호텔 Banquet 실습.
이제는 그 사람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달 동안 트레이를 들고 행사장을 돌고,
라운드 테이블을 굴리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곤 했다.
“이 일이 나랑 맞나?”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어느 캡틴인지 주임인지,
외모비하에 대한 상처받는 말들을 쏟아냈다.
실습 마지막 날엔 눈물을 쏟고 회식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야 하지?
더 좋은 호텔에 들어가서 보란 듯이 잘해보자.”
저런 인간처럼은 살지 말자.
남산 위에 있던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팀, 다 같이 만들어가는 현장.
그게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느 고객의 감사 인사에 마음이 울컥했던 기억도 있다.
'이 길이 내 길인가?' 바보 같은 질문도 해봤다.
물론 그 안에도 어둠은 있었다.
권력의 그림자, 보이지 않는 서열 및 감정싸움들.
결국 그 ‘분’은 그 후 잘렸다고 들었다.
이 바닥도 다 그런 건가 싶었다.
두 곳의 호텔 입사 제안 앞에서 고민하던 시기.
하나는 인사부에서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고,
하나는 내가 선택한 곳이었다.
인사부에서 설득한 호텔을 갔었더라면,
지금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서울시 한가운데?
남산 언덕아래 호텔에서는
인턴으로 시작해서 요청한 연말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말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 눈 내리는 언덕길에서 미끄러졌고,
기어기어 지문 찍는 출입구에서 쓰러졌었다.
양호실에 누워 있었더니
지배인은 “이제 그만 나오라”라고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던 그때,
다 그런 거라며 웃어넘겼지만
아마 집에 돌아오면서 바로 백화점에 가서
고가의 장갑을 산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 장면은 선명하다.
그분, 지금 잘 계실까??? 계시나요
벌은 받았으려나
그 후로도 방황은 계속됐다.
경력기술서엔 쓰지 않은 호텔도 몇 군데 있다.
어느 호텔에선 이런 말도 들었다.
"얼굴이 좀 더 예쁘고 아양 좀 떨었으면,
3천 이상 주고 모셔왔을 거야."
(그땐 내가 20대였다.)
고객에게 받은 팁도 모두 다 가져갔다.
어디에 쓰는지 유무는 그때의 리더들만 꿀꺽
그 호텔은 아직도 있다. 곧 리노베이션을 한다고 들었다.
슬픔과 울음, 상처와 함께
그렇게 호텔 일을 이어나갔다.
2. F&B는 사람이 만든다
호텔 F&B는 매일이 비슷한 일상 같다.
커피를 내리고, 잔을 닦고, 식기를 정리하고, 미장을 하고, 예약을 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늘 사람을 봤다.
단골 고객의 취향을 기억하고, 그가 좋아하는 자리를 먼저 세팅하고,
얼음을 반만 넣은 물을 미리 준비하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말 한마디 톤까지 조심스러워지던 나.
이건 메뉴얼에도, 메뉴판에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F&B에서 가장 본질적인 순간은 언제나
이런 순간이었다.
이 일은 혼자서는 절대 못한다.
좋은 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동료들과의 단합, 화합, 때론 충돌.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지금 하라고 하면 못할 것들도 많다.
바빴던 어느 날, 정신없는 중에도
누군가의 “고생했어요” 한마디에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던 날도 있었다.
또 어느 날은 고객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이런 인간이 무슨 서비스를 한다고?”
직원에게 폭언을 하고 나는 그걸 제지하면서
어느샌가 나는...
모두의 그 말은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 있다.
3. 17년의 시간을 마주하며
처음 이직을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난 왜 아직 이럴까? 뭐가 이리 부족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나”였다.
지방 순환 근무 제안도 받았다. 할 수는 있었지만,
그 제안에서 ‘내가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납득이 없었다.
호텔이라는 공간에는 영업장은 애정이 있었다. 아쉬웠다.
다시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난 단지 '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 깊이 알고, 성장하고 싶었다.
이전 멘토는 나를 소믈리에로 키우고 싶어 했다.
매일 칠판에 와인 기본 지식을 써주셨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관심이 없었다.
덕질을 하느라...... 미친년이지
지금은 너무나 후회된다.
리더가 되기 위해선 알아야 할 게 많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남몰래 이리저리 다니고 공부했다.
자격증 하나 없이 인터뷰에 나갔을 때,
“말하는 걸 보니 자격증이 꽤 있겠네요?”
그 뒤에 이어진 말은, “근데 없으시네요.”였다.
창피하고 아픈 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뒤늦게 대학원 짧은 과정을 밟았다.
전부는 아니지만, 책을 펼치고 배우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연봉 협상'이란 걸 처음 해봤다.
30대 후반이었다.
그전까지는 회사가 정해주는 대로 다녔던,
정말 바보 같고도 헌신적이었던 시간.
지금 생각해 보면 골병만 남았던 그 시간들
그럼에도 열심히 살았다는 자부심은 남는다.
진심으로 일했고, 그 안에서 성장했고,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4. 이제, 나답게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호텔을 떠난 뒤, 가장 먼저 내게 던진 질문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였다.
그 전의 이직은 그냥 정리하고 넘어갔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우선이기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뒤도안 돌아보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유독 아쉬움이 컸다.
그건 내가 진심을 다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현장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정성껏 만드는 걸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다.
뭔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거든..............
비록 그 공간에서 무능한 리더로는 남지 않길 바란다.
다만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사람들과 일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삶을 함께 만들고 싶은지를 함께 고민하게 됐다.
그동안은 누군가 만든 시스템 속에서
그 누구보다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로 살았다.
이제는 내가 기준이 되어
내 시간, 내 일, 내 관계를 '나답게' 설계하며 살고 싶다.
이직은 더 나은 회사를 찾는 일이 아니라,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제는
내 이름을 걸고, 나의 판단력을 바탕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변화는 두렵지만
나는 이미 수없이 많은 첫날을 지나온 사람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금 더, 나답게.

17년간 호텔과 함께한 날들, 일을 사랑했고 지쳤고 성장했던 그 시간을 마주하며 나답게 살아보기로 한 기록.
"I gave my best years to a place that taught me who I am.
Now, it's time to choose how I want to live."
(나는 내 가장 빛나는 시간을, 나를 알게 해 준 공간에 바쳤다.
이제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선택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