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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Sep 19. 2021

'뇌절'의 정의 1편 - 드라마 펜트하우스

 뇌절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표준어라고는 보기 힘든 인터넷 용어다. 나는 글을 쓸 때, 밈이나 유행어를 쓰기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뇌절이라는 단어는 예외다. 이 단어가 가진 함축성을 대체할 단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뇌절. 뇌와 손절하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혹은 1절-2절-3절-뇌절, 식으로 '재미도 의미도 없이' 늘어지는 상황에 쓰인다. 

 개연성이나 인과관계, 기승전결 없이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스토리를 비난할 때, '뇌절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한 사례다. 우리가 흔히 "저게 말이 되냐?"하면서 어이없어 하는 상황을 '뇌절'이라는 단어는 그 어떤 용어보다 적확하게 설명한다.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시즌 3까지 마무리됐다. 연기력으로 끝장을 보는 캐스팅에,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 자극적인 스토리 등으로 화제가 끊이지 않았던 드라마다. 

 

 한자리수 시청률에서 출발했던 시즌1은 마무리할때 무려 30%에 육박하는 기록을 남기며 종료됐다. 시즌2 또한 높은 시청률이 유지됐다. 하지만 시즌 3는 20% 안팎에서 출발해서 10% 중후반으로 살짝 떨어진 시청률로 마무리됐다. 

 나는 아내와 함께 펜트하우스의 시작부터 시청했다. 하지만 시즌 3부터는 고개를 돌렸다. 바로 이 '뇌절' 때문이다.

 죽었던 인물이 '사실은 살아있지롱!'하며 뿅 나타나거나, '사실은 가족이었지롱!'하는 식의 전개가 끊임없이 반복되다보니 엉망 수준의 개연성을 눈감아주는데 지쳐버린 것이다.

 게다가 시즌이 길어지면서 불필요한 인물들이 갑자기 등장하고, 비슷한 수준의 임팩트만이 반복됐다. 잔혹하거나 자극적인 레벨도 개연성이나 기승전결을 무시한채 반복됐다.

 

잔혹함을 지적하려는게 아니다. 잔혹함으로 치면 이미 이전에 추천했던 '조커'나 '존 윅'시리즈가 몇 수 위이기 때문. 잔혹함에도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있어야지.

 사실 잔혹한 정도는 지적할 문제의 범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극적인 소재가 없는 경우는 잘 없다. 다만 그 소재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이해 가능한 수준에서 배치하느냐의 문제였다. 펜트하우스는 소재를 남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의미하게 반복했다.




 창작물의 명작여부는 어떻게 판가름할 수 있을까. 캐릭터와 스토리, 두 요소가 모두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기억되는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대표적인 사례는 슬램덩크가 있다.


 일본 소년점프에서 연재됐던, 지금까지 기억되는 '명작' 만화다. 1990년에 첫 연재를 시작했지만 2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요 캐릭터들과 스토리가 독자들의 머리에 생생히 남아있다.

 슬램덩크의 장점은 불필요하게 스토리를 끌지 않고, 가장 임팩트가 컸던 부분에서 완결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창작물로 발생하는 매출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슬램덩크도 스토리 곳곳에 '다음 이야기' 떡밥을 던져놓긴 했다.

 

슬램덩크도 맘만 먹으면 이야기를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작가는 김판석과 마성지라는 캐릭터를 슬쩍 흘려보내며 이를 기대하게 했다. 결국 두 캐릭터는 맥거핀으로 남았지만.

 가령 마성지나 김판석 같은 캐릭터가 그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명정과의 경기보다 더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그리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완결을 냈다. 덕분에 독자들은 아쉬움은 조금 남았지만, 주인공역인 북산고교의 선수들 뿐 아니라 상대로 맞붙었던 캐릭터까지도 충분히 기억할 수 있었다. 짧고 굵은 스토리를 맛깔나게 완성한 셈.

 일본 만화 명작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다른 한축은 드래곤볼이다. 하지만 여기서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의 장점이 확실하게 갈린다. 슬램덩크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모두 생생히 남았지만, 드래곤볼은 캐릭터에 비해 스토리의 기억이 다소 희미하다.

 드래곤볼이 애초에 '싸움'을 소재로 삼은 만화다보니 발생한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드래곤볼은 스토리를 무분별하게 늘려가면서 소위 '파워 인플레'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가령 초반에 '피콜로'는 무려 '대마왕'이었지만 후반부에서는 설명/해설역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하지만 슬램덩크는 전반부부터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북산고교의 주연급 모든 선수들의 캐릭터가 그대로 살아서 제 역할을 다한다.

 

 스토리가 무분별하게 늘어지면서 캐릭터만 남고 서사는 잃어버리게 되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명탐정 코난은 이미 마주한 피해자만 세자리수를 넘어섰고, 원피스는 단행본만 100권이 넘었다.

 일본만화만 그런게 아니다. 네이버 웹툰 노블레스는 '뇌절로 스토리를 말아먹은 대표'격으로 꼽아도 손색없다. 갓 오브 하이스쿨은 드래곤볼과 마찬가지로 초반부에 강해보였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잊혀지는 중이다.




 펜트하우스로 돌아와보자.

 강렬한 캐릭터성을 가진 주조연들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그냥 무분별하게 찌르고 죽이고 모함했던 상황들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왜?"가 없다. 꼭 결과가 해피엔딩이 아니더라도, 뇌절만 줄였더라도, 배우들이 살려낸 캐릭터성은 완성형의 스토리와 충분히 조화될 수 있었다.

 

 2층 높이에서 떨어진 샹들리에에 명치가 꽂혀도 죽지 않거나, 감옥 따위는 손쉽게 빠져나올수 있다거나, 자동차 하나를 날려버릴 수준의 폭발 정중앙에서도 얼굴에 작은 흉만 남고 살아남는다거나 등등.

스토리는 점점 더 잔인하고 자극적이 되어야 하지만, 주인공은 살아서 스토리를 끌어가야 하는 모순.

 이 정도의 대규모 뇌절들이 한 회에도 몇번씩 발생하다보니

- 손쉬운 지문 복제, 

- 죽어도 집 문은 잠궈놓지 않는 열린 마음의 주인공들, 

- 맘만 먹으면 쉽게 해내는 도청 등은

 아예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한 채, 시청자들이 고개를 저으며 넘어가 주어야 할 지경이다. 집중할만하면 등장하는 PPL은 애교로 보일 정도.

 물론 드라마는 매출을 발생시켜야 한다. 십 퍼센트대로 떨어진 시청률도 충분히 높은 수준이니 방송사 입장에서도 스토리가 어디로 흘러가든 회차를 늘려야 이익이다. 배우 입장에서도 길어지면 출연료가 늘고, 

작가 입장도 이야기가 길어져야 이득인 건 마찬가지일터.




 이런 이해관계가 있다보니 작가는 무리하게 이야기를 늘려서 이어가고, 이해되지 않는 설정과 뇌절에도 배우들은 연기를 하고, 방송국은 이를 여과없이 내보내는 삼각관계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세 이해관계자 모두를 행복하게 하며 잘 끝났다.

 하지만 과연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저 '배우들 연기 x나 잘하더라.'만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그 드라마 스토리 뭐였더라?"라는 질문에

 "몰라 x나 잔인했어." 정도로 끝나는 그저그런 막장 드라마 중의 하나로 기억되는 것이 작가나 방송사에 과연 오랫동안 이익이 될까.

 이미 종영한지 7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좋은 작품이라고 회자되는, 딱 적절한 순간에 뇌절 없이 이야기의 '결말'을 마무리한 드라마 미생을 기억하며, 시청률과 별개로 과연 펜트하우스는 좋은 드라마였을까,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을까,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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