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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Sep 20. 2021

'뇌절'의 정의 2편 - 영화 스타워즈 7-8-9

영화리뷰

 최근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사례로 '뇌절'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다. 오늘은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7,8,9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스타워즈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고, 창작물들이 워낙 많이 나왔기 때문에 스핀오프나 애니메이션은 모두 배제하고, 영화 중 본편에 해당하는 에피소드1부터 9까지로만 주요 소재를 한정한다. 이야기 특성상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된다.




1. 스타워즈 에피소드 1부터 에피소드 6까지의 단단한 스토리



 스타워즈는 에피소드 4,5,6이 먼저 나왔다. 이 세 편을 '오리지널 3부작'이라고 부른다. 전설의 시작이라고도 불릴만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4는 1977년 개봉작이다.


 그리고 에피소드 1,2,3이 꽤 오랜 기간을 두고 개봉했다. 에피소드 1이 1999년에 개봉되었으니 1983년에 개봉한 에피소드 6과 16년의 격차가 있는 셈이다. 에피소드 1,2,3은 더 나중에 개봉했지만, 스토리상으로는 오리지널 3부작보다 앞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프리퀄 3부작'으로 통칭한다.


 스타워즈의 방대한 서사에 비해 메인 스토리는 단순하다. 우주를 지배하려는 악의 세력이 존재하고, 주인공이 이를 무찌르며 바로잡는 이야기다. 에피소드 6에서 모든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타락한 악당의 선한 부분을 되돌려 내는 걸로 마무리된다.




2. 악당을 무찔렀다면서, 에피소드 7, 8, 9는? 


 이미 악의 세력이 정리된 상태에서 뒷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여기서 모든 '뇌절'성이 발생한다. 에피소드 7부터는 '사실 악의 무리는 안무찔러졌었다!'라는 유치한 연속성을 가져갈 수 밖에 없다.

 '시퀄 3부작'으로 통칭되는 에피소드의 시작인 에피소드 7은 그나마 '악의 무리를 무찌른다!'는 단편적인 성격이 아니라, 그 전 스토리까지의 히어로였던 전설적인 제다이기사를 찾아가는 내용이 입체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에피소드 8과 에피소드 9에서는 그나마 '오마주'정도의 소재라고 눈감아 주었던 아이템들도 대부분 고갈되고, 무리하게 덧붙여버린 스토리가 진행되어야 하다보니, 과정까지도 무리수를 남발하게 된다. 




3. 뇌절로 생명력을 연장하는 에피소드 8과 에피소드 9


 기존 스타워즈 시리즈와 부딪히는 설정들이 너어어어무 많아서 그걸 하나하나 언급하는건 큰 의미가 없다. 굵직한 것들 위주로만 짚어보자.


(1) 갑자기 등장한 '퍼스트 오더'

 그렇게 거대한 집단이 1편부터 6편까지의 거의 수십년의 기간동안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하다못해 그렇게 강력하고 거대한 조직이라면 수백살의 나이를 먹은 요다에 의해서라도 언급되었을법 하다. 그야말로 7편을 시작하기 위해 갑자기 등장해야 했던 설정. 

 팰퍼틴의 몰락 이후 그 집단을 계승한 조직이라고 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엔도전투 이후 제국의 전력은 어마어마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제국에서 퍼스트오더로 계승되고, 전력이 회복되는 과정 설명이 1도 없다.



(2) 인물간 개연성은 왜 개사료로 줬나


 등장인물끼리의 관계가 당신의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승객과 당신의 관계와도 같다. 접점도, 의미도, 당위성도 없는 등장인물이 무분별하게 쏟아진다.


어쩌면 스타워즈 최악의 빌런은 로즈였을지도.

 레이-핀-포 까지만 등장했던 에피소드 7이 그나마 봐줄만한 이유. 에피소드 8부터는 갑자기 한-레아-렌-로즈-루크-젠나 등등의 관계가 마구잡이로 얽혀든다. 이야기 진행에 전혀 필요가 없거나, 뜬금없는 행동(가령 루크가 렌을 죽리려 든다거나)으로 갸우뚱하게 만든다. 


 드로이드들도 마찬가지.  BB-8은 R2-D2의 역할을 계승하며 대체할 것으로 보여졌으나 R2-D2와 C-3PO도 계속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이야기 후반부로 가면서는 이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 많다. 필요도 없는 상황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3) 참신하다고 해야되나.. 하이퍼스페이스 카미카제


 그래, 어차피 창작물이다. 그러려니 넘어가자, 삭제된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정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에피소드 8에 이르면 이젠 한숨을 내쉬게 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던 우주에서의 함대전을,  하이퍼스페이스 카미카제를 통해 시궁창으로 보내버렸다.

 가장 큰 한숨은 단연 하이퍼스페이스를 이용해 공격(!)하는 씬.

 하이퍼스페이스는 일종의 공간점프 기술로, 스타워즈 설정 속에서 은하계간 빠르게 이동하는 기술이다. 에피소드 1~6까지에서는 주인공이 급하게 도망쳐야 하는 상황마다 고장났던 기술이다.


 에피소드 8에서는 하이퍼스페이스를 이용해 적의 함대에 우주선을 때려박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초에 하이퍼스페이스가 웜홀을 통해 움직이는 것 같은 기술임을 감안했을때, 물리적인 공격이 불가능함은 물론, 가능하다고 가정하더라도.. 고작 상상해 낼 수 있는 스토리가 카미카제 수준인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4) 사실 살아있었지롱!

이런 식이면 윈두나 콰이곤도 살아날 수 있고, 다스베이더나 두쿠도 충분히 생존 가능.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설정. 마치 한국 막장 드라마로 치면 "뭐어? 가족이었다고??" 같은 느낌이다. 팰퍼틴의 영혼이 살아있었고, 그걸 육신으로 살려냈다니.. 맙소사. 

 팰퍼틴을 다시 스토리에 써먹는다는 사실은 제작진이 그 정도의 임팩트있는 빌런 창조에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야기를 만드는 노오력을 사실상 안한 것.



(5) 레이의 출신


 포스라는게 혈통만 타고 오는게 아닌데도 레이가 팰퍼틴의 외손녀라는 설정까지 붙여버렸다. (4)에서 설명한 '사실 살아있었지롱!'과 '사실 가족이었어!', 최악의 설정 두 개를 다 써먹은 것.

 다만 레이의 출신에 대해서는 떡밥이 아아아아주 희미하게 에피소드 7부터 있어왔다. 그러니깐 이건 이 설정을 써먹었다는 죄보다는 이야기 빌드업을 거의 안하다시피 했다는 죄가 큰 사안이다.


 에피소드 7-8-9까지 서서히 레이의 출신에 대한 궁금증을 관객들에게 만들어주고, 에피소드 9에서 빵 터트렸어야 했는데, 거의 일언반구 없다가 갑자기 '외손녀였다!'라고 던져버렸다. 아마 제작진은 이게 "I'm your father."처럼 충격적일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그 외에도 너무 많다.

 

 - 마지막에 왜인지 모르게 키스를 해버리는 렌과 레이라던지,

 - 대체 역할이 뭔지 모르겠는 로즈,

 - 7편에서는 주인공 크루로 등장했지만 9편에는 조연급정도로 실종해버린 핀과 포의 분량,

 - 4-5-6편에서 한대 생산하기도 어렵고, 그걸 파괴하는 것도 어마무시한 정도로 설정되었던 데스스타의 남용,

 - 초대형급 함대들이 어디 숨어있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던지,

 - 루크는 이제 영혼만 보내서 싸운다.


 어쨌든 정리하면 스타워즈 7-8-9편만으로 [뇌절]이라는 단어의 뜻이 뭔지 논문을 쓰는것도 가능할 정도다.




 명작이면서도 뇌절의 대표격이 되어버린 명탐정 코난 시리즈는, 진행기간과 흥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기에 얽힌 산업구조와 채용관계들이 엄청나다고 한다. 즉, 작가가 끝내야겠다고 판단해도 끝낼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이다.

 

 스타워즈도 이제 마찬가지의 궤도에 올라서 버렸다. 명탐정 코난은 그저 '명작 만화 중 하나' 정도지만, 스타워즈는 무려 '미국의 신화' 취급을 받다보니 여기서 창출되는 이해관계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스토리를 연장해야되고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잘 만들수 있는걸 뇌절로 덕지덕지 떡칠을 해놓으니 기존 1-6편까지의 공고한 이야기 구조까지도 흔들리고 있다.

 

스토리 변명은 못하게 막아버리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웰메이트 스핀오프들이 충분히 존재한다.

 그게 최선의 스토리였다고 변명하기에 '로그-원'이나 '클론전쟁' 같은 스핀오프나 애니메이션들이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자, 정리해보자.

 막연히 무작정 길어진다고 모든 이야기를 '뇌절'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에피소드 4-5-6에 이어서 십수년만에 에피소드 1-2-3이 나올때도, 자칫 잘못하면 뇌절이 될 수 있었다. 일부 흔적들이 남아있기도 할 정도니깐. 하지만 스타워즈 팬들이 모두 인정하듯, 에피소드 1-2-3에서 다행히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뇌절성과의 거리를 둔 채 이야기를 잘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에피소드 3은 오히려 에피소드 4-5-6보다도 압도적인 완성도라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 에피소드 7-8-9를 만들때도 이 정도의 정성은 들였어야 했다. CG나 배우가 문제가 아니다. 이해될 법한 이야기구조를 단단하게 만들어놓고 진행하지 않으면 기존의 팬들에게도 해를 끼치고, 새로운 팬들도 유입되기 어렵다.


 결국 스타워즈는 에피소드 7-8-9가 나오면서 상당한 매출과 이익을 달성했지만, 스타워즈 팬들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환상적인 서사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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