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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Sep 26. 2021

데미안과 은하철도999, 감격스러운 작별의 유사성

책리뷰

 내 청소년기부터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인 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겪는 성장을 여러 은유를 담아 표현한다. 표현되는 은유는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인물간의 관계를 통해 시의 적절하게 폭발하곤 한다.


  

 은하철도999는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이라는 주제곡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다. 

장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은하철도999라는 기차를 타고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철이와 메텔의 이야기다.

 그런데 은하철도999와 데미안은 묘하게 비슷한 향기가 난다. 분명 보여지는 색깔이나 문법은 다르지만 소비자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바는 비슷한 느낌이다. 




 은하철도999는 스페이스오페라 장르이지만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적 성격도 강하다. 철이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으며 시나브로 성장하고, 메텔은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때론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철이에게 메텔이 있었다면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이 있었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각 장마다 조금씩 성장해가며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격변의 순간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친구이자 형이기도 하고, 부모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중성적인 묘사를 통해 이성적 대상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어머니를 만나던 순간은 상당히 강렬하게 묘사된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마음을 빼앗는다. 은하철도999의 메텔이 가지고 있던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 중 '동경의 대상'에 해당되는 포지션은 데미안이 아닌 에바 부인에게 부여되는 듯 싶다. 이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순간의 묘사를 위해 동성의 데미안으로는 표현이 어려웠던 것일까.

 하지만 결국 이야기 막바지에 이르러서 데미안은 에바 부인의 역할까지 흡수하며 싱클레어의 최종 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데미안은 떠나는 걸로 표현되지만, 싱클레어 또한 더는 데미안을 찾지 않아도 되는 단단함을 갖게 된다는 마무리가 이어진다. 

헤르만 헤세(왼쪽)와 데미안 초판(오른쪽). 처음 출간시에는 저자를 숨기고 '에밀 싱클레어'라는 작가명으로 출판되었다.


 정리하면 싱클레어는 소년과 청소년 시절을 거치면서 '데미안'이라고 묘사된 인물에게 다양한 영향을 받고 한단계씩 내면을 들여다 보는 능력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알을 깼을 때는, 데미안이 없이도 스스로의 내면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은유가 담겨있는 것이다.




 TV판으로 방영된 은하철도999에서 기계인간이 되기위한 마지막 행성에 도달한 철이. 기계인간이 되기 위해 그 오랜 여행과 역경을 거쳐서 마지막 목적지에 왔으나, 그제서야 영원한 생명을 가진 기계인간으로의 삶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메텔은 오랜 여행동안 항상 철이의 옆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슬픈 눈은 항상 모든걸 알고 있는 듯 했고, 항상 철이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기계인간으로의 삶이 인간으로서의 삶보다 가치있지 않다는 것 또한 그녀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메텔과 철이의 이별씬


 하지만 그녀는 절대 철이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철이의 애인이 되기도, 친구가 되기도, 선생님이 되기도, 엄마가 되기도 하며 함께했다. 철이가 결국 큰 깨달음을 얻고 마지막 행성에서 빠져나와 플랫폼에 이르러서야 메텔은 철이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항상 다소 슬퍼보이는 메텔의 눈은, 철이가 떠날 존재라는 걸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기계인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어린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지향점'의 현실을 깨달음으로서, 소년은 이제 더이상 '메텔'이 필요하지 않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은유적 표현 같다. 

 데미안이 떠나간 것처럼 메텔도 떠나간다. 하지만 이는 작별의 아픔을 보여주기보다는 '성장하며 보내야 하는 무언가'를 상징한다. 데미안이든 메텔이든 결국 떠났기 때문에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 

 철이나 싱클레어는 앞으로 살면서 데미안이나 메텔의 흔적을 떠올리고 돌아보긴 하겠으나, 그들을 찾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되며 '알을 깨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메텔을 주인공 철이와는 전혀 다른 비율과 아름다움으로 작화한 이유는,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동경의 대상에 대해 최대한 미화하여 표현하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우리의 삶 속에서도 메텔과 데미안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을거라고 생각하면 철이와 메텔이 헤어지는 장면이나, 데미안이 키스를 남기고 떠나는 장면은 가슴을 울리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살면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은하철도의 플랫폼에 서서 메텔을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철이나 싱클레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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