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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Sep 16. 2021

좀비물 시대의 대안(존 윅 시리즈 리뷰)

영화리뷰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클리셰 투성이인데다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규격화되어 식상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비물은 성장해왔고, 단편 영화 뿐 아니라 넷플릭스 등의 미디어를 타고 장편화되기까지 했다. 그만큼 (나와 같은 관객들을 제외하면)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뜻이다.


미드 워킹데드(왼쪽)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오른쪽)은 모두 좀비를 소재로 성공한 작품들이다.

 좀비물의 매력은 무엇일까. '적'으로 규정된 좀비들을 살해하는데에 가책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크지 않을까. 주인공이 살아남기 위해서 좀비들은 최대한 아프게 맞아야 한다. 파괴되어야 한다. 이 점이 잔인한 요소라기보다 오히려 강렬한 타격감과 적당한 긴장감, 그리고 쾌감을 주는 것이다.

 어차피 주인공은 살아남는다는걸 관객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런 클리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좀비들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과정에 대해 '연만'이나 '잔인'이라는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좀비들은 가능한 징그럽게 묘사된다.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들은 수없이 고통받지만, 정작 그들이 쏜 총은 주인공을 거의 맞추지 못한다. 이른바 '스톰트루퍼 효과'라는 용어까지 있을 정도.

 사실 이런 점들은 꼭 좀비물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가령 스타워즈에서 스톰트루퍼들이나 드로이드들을 수없이 베어지고 부수어진다. 관객들은 죽어가는 스톰트루퍼를 결코 불쌍해하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오크족들(왼쪽)과 어벤져스에 등장했던 치타우리 종족(오른쪽). 이들도 영화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파괴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한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크족들을 수도 없이 죽지만 관객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굳이 오크족에게 적용하지 않는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복제된 스미스 일행, 어벤져스의 악당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정리하면, 관객들은 압도적인 양적 위세로 돌격해오는 '적' 혹은 '악'을 주인공이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를 보고싶어 한다. 또한 현실에서는 극악무도한 범죄나 살해행위에 해당될 수 있는 행위를 영화에서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는다. 좀비물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로도 이런 점을 충분히 표현해 낼 수 있다.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한 좀비영화 부산행(왼쪽), 흥행에도 호평에도 실패한 좀비영화 #살아있다(왼쪽)

 하지만 돌아와서, 존재 자체의 비현실성, 혹은 설정 자체의 비현실성 때문에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게 바로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공군마냥 숫적으로 압도적인 적들을 극소수의 주인공이 제압하는 모양새에 충분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건 마찬가지다.


존 윅 시리즈는 바로 이런 점을 좀 더 다른 모양새로 잘 공략했다. 




 2014년 첫 작품이었던 존 윅을 시작으로 2017년 두번째 작품(존 윅:리로드), 2019년 세번째 작품(존 윅:파라벨룸)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존 윅'이 죽인 적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존 윅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스토리를 매우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 전직 레전드 킬러였던 존 윅이 어떤 계기에 의해 자신을 살해하려는 킬러 집단들과 맞서게 된다.

   그리고 존 윅은 멋지게 다 이겨내고 적들을 족친다. 끝.


 자, 그러면 좀비물에 고개를 저었던 나에게 비판섞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저 스토리 구조야말로 좀비물과 다르지 않은 클리셰 아니냐?"

 부정하지 않겠다. 주인공은 무적이고, 어떤 잔혹한 킬러가 나타나더라도 다 이겨낸다. 하지만 존 윅의 재미는 결과보다 과정이다.




1. 멋

 존 윅은 일단 멋있다. 여기서 가산점. 

 존 윅 시리즈 특성상 주요 매니아 층들은 남성들일 가능성이 크다. 남성 관객들은 영화 러닝타임동안 정장을 입고 멋있게 총을 뽑아드는 키아누 리브스가 마치 관객 자신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실제로 존 윅이 총이나 칼을 맞으면 내가 아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싸우는 씬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도 주인공 존 윅의 멋짐을 세심하게 그려낸 점이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이입하게 만든다.



2. 총기, 무기의 사용

 사용하는 무기들이 매우 많고 다양하게 등장하는 점도 볼거리다. 특히 존 윅은 과거 홍콩 무술 영화들과는 다르게 총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여러개의 총을 바꿔가면서 능숙하게 사용하는 장면이나, 빠르게 재장전하는 장면들은 단지 몸으로만 싸울때는 느끼기 힘든 쾌감을 선사한다. 



3. 날렵한 액션씬

 액션씬이 날렵한 점은 좀비물에 비해서 확실히 우위를 점한다. 좀비물은 특성상 주인공의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점과 좀비와 생존자의 '접촉'을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날렵하고 멋드러지는 액션신은 배제된다. 대신 가능하면 일격으로 좀비를 박살내는 형태의 타격감의 특징이다. 

 하지만 존 윅은 여기서 자유롭다. 킬러와 킬러간의 싸움이기 때문에, 근접전에서 도검류로 굉장히 속도감있고 긴장감있는 액션이 나타난다. 또한 맨몸 싸움에서 다양한 격투기를 씬 안에 녹여낼 수 있다.



4. 세계관


 좀비물이 아닌 다른 액션영화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 킬러 영화들도 좀비물과 다를 바 없이 현실성은 떨어진다. 

 생각해보자. 도시에 킬러들이 난무한다면,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고담 같은 도시가 아닌 이상, 그 킬러들을 잡기 위해 군대나 경찰이 먼저 압도적인 화력으로 그들을 제압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존 윅은 아예 세계관을 설정했다. 킬러들만의 규칙이 있고, 그들도 시민사회 안에서 적절히 숨어서 잘 지낸다는 설정이다. '호텔'은 그 설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렇게 세계관이 존재한 덕분에 킬러들은 경찰이나 군대, 법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룰 안에서 선혈이 낭자하는 싸움을 벌일 수 있다. 

 이는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와도 비슷하다. 다른 판타지와는 다르게, 해리포터 시리즈는 일반 시민 사회 속에 마법사 함께 살고 있다는 설정이 존재한다. 




 상기한 점들 덕분에 존 윅은 '좀비'라는 다소 이질적이고 징그러운 존재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좀비물에서 느낄 수 있는 타격감을 충분히, 아니 그 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물론 좀비물과 존 윅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좀비물은 존 윅이 주지 못하는 다른 류의 매력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령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제한된 환경에서의 제한된 싸움씬이 더 긴장감을 줄 수도 있으니.

선혈이 낭자하면서도 주인공의 멋들어짐을 최대한 살려낸 영화 '아저씨'도 존 윅 시리즈가 주는 매력과 비슷하다. 물론 존 윅이 훨씬 매운맛이다.

 그러니까 아마 존 윅을 좀비물보다 더 좋아하는 (나같은) 관객은 보여지는 모양새가 얼마나 '간지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즐기는 사람일 수 있다.

 일단.. 그냥.. 멋지지 않은가?

 존 윅의 단순한 스토리는 '그것이 킬러/스파이 영화의 클리셰'라는 고정관념을 오히려 역이용했다. 

 '응 맞아, 우리는 클리셰를 쓸거야. 근데 클리셰를 얼마나 간지나게 소화하는지 보여주지.'라는 느낌.

 그래서 존 윅 시리즈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그다지 없다. 관객들은 싸움의 인과관계나 세계관을 낱낱이 파악할 순 없지만, 그것이 궁금해지기도 전, 이미 전투들이 벌어지고 총성이 난무하는 장면에 빠져들게 된다.

  호평을 받았던 1편과 2편에 이어서 3편은 다소 비판이 늘었던 모양새다. (그럼에도 호평이 여전히 높은 편이긴 하다.) 존 윅 시리즈의 매력인 '구구절절한 설명 배제'를 3편에서 조금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명작이지만 이야기가 끊임없이 늘어나면서 지속적으로 파워 인플레가 표면화된 만화 드래곤 볼(왼쪽), 명작으로 시작했지만 온갖 뇌절로 마무리된 웹툰 노블레스(오른쪽).

  전투, 싸움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물들은 특성상 새로운 시즌이 나오거나 편 수가 길어질수록 '파워 인플레'와 '뇌절'을 맞딱뜨려야 하는 상황이 늘어난다. 


 존 윅은 뇌절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훌륭하게 다른 쾌감을 이어갈 것인가. 곧 나올 4편을 기대해보며 글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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