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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넉살 "작은 것들의 신"

음반리뷰

<힙합은 꼭 어두워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라떼는 말이야~) 밝은 느낌의 힙합 앨범도 많았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본토'라고 얘기하는 미국의 원조 힙합들은 지금의 '디스코'와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한없이 어둡거나 삐딱한 비트에 돈 자랑, 차 자랑으로만 가득한 가사를 '힙합'의 전부인 것처럼 들어오고 있다. 아, 물론 이런 '자랑'이 싫은게 아니다. 자랑이야말로 힙합 정신의 가장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 드러낼 때 더 멋있게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힙합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획일화 되는게 힙합은 아니다. 진정한 자기얘기를 풀어내는 것이 힙합이다. '쇼미더머니' 이후 수 많은 젊고 랩스킬 좋은 래퍼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그래서 희소성이 떨어진다. 그 가사가 그 가사, 같은 랩들. 흉내가 없고 자기만의 색이 뚜렷한 이센스의 가사가 반대로 극찬을 받는 이유다. 

 밝은 비트와 밝은 가사를 쓴다고 힙합이 아닌 것도 아니다. 자유와 다양성, 그것이 힙합이다. 그래서 나는 넉살을 좋아한다. 넉살의 가사는 솔직하고 비유가 풍부하다. 라이브가 훌륭함은 말할 것도 없고, 랩스킬은 현 세대 탑클래스 래퍼들과 견주어도 오히려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넉살의 보여지는 모습은 시종일관 밝다. 


 2016년에 나온 이 정규앨범 뒤로도 넉살은 싱글과 피처링 등을 통해 많은 작업물들을 냈다. 그럼에도 정규앨범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정규앨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래퍼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하다. 발라드나 댄스곡을 부르는 가수들은 싱글로도 충분하다. 사랑노래가 9할이기 때문에 가사의 중요성이 랩에 비해 덜하다. 그러나 래퍼는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자들이다. 싱글 하나로 자신의 삶을 모두 그릴 수 없다. 정규앨범, 즉 풀랭쓰(Full Length) 앨범에서야 가능해진다. 




 '팔지 않아'를 첫 트랙으로 두고, 음악과 영혼을 바꾸지 않겠다는 아티스트로서의 당찬 각오를 외친다. 'SKILL SKILL SKILL'을 외치며 "기술 배워 기술!" 하셨던 아버지에게 랩도 기술임을 증명해 보인다. 'ONE MIC'와 '악당출현'을 통해 음악에 대한 욕심을, '밥 값'과 'I GOT BILLS'를 통해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와 돈을 번 후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앨범 제목과 동명의 '작은 것들의 신'을 마지막 트랙으로 두면서 사소한 삶이 없고, 작은 모든 것들이 소중함을 외친다.(무려 BTS보다 먼저 나온 '작은 것' 노래다.)


 VMC는 방송과 거리를 두면서도 음악정 성취를 일궈왔던 기획사다. 수장 딥플로우는 정규 3집 '양화'라는 앨범으로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앨범 부문을 수상했는데, 수상평에 '방송과 거리를 두면서도'라는 설명이 있다. 하지만 지금 VMC는 방송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디스를 당하기도 했다. 오늘 얘기한 넉살은 '도레미 마켓'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있기까지 하다. 나는 래퍼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욕설 가사를 써가며 비판해야 하는 행동인지 잘 모르겠다.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밝은 모습의 래퍼를 공중파 방송에서 종종 볼 수 있다는게 개인적으로 반가울 뿐이다. 게다가 방송출연 자체로 비난하기엔 '작은 것들의 신' 앨범만 봐도 음악적으로 흠 잡을 부분이 없다.

   


 

 작년에 넉살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팬심을 참지 못하고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넉살을 따라가 수줍게 붙잡았다. 가방에는 동생이 어렵게 구해서 선물해 준 넉살의 정규 1집, 이 앨범이 들어있었다. 넉살은 밝은 사람이었다. 당시에 '명함을 정리하며'가 출간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쑥스럽게 싸인을 부탁하며 책을 선물했다. 

   


 "어휴 싸인 당연히 해드려야죠, 책을 주셨는데.."



 아마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한, 넉살은 나에게 좋은 기억을 남아있을 거고, 좋아하는 래퍼로 남아있게 될 것 같다. 앞으로도 천편일률적인 요즘 래퍼들과는 조금 다른, '밝음'을 간직한 래퍼 넉살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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