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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May 23. 2020

방탄소년단 "LOVE YOURSELF 結"

음반리뷰

<지구가 좁게 느껴지는 문화적 성과>


군에서 전역을 준비하던 무렵, 요상한 이름의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다. 전역 무렵이라 다른 것들보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 취업 준비에 오감이 팔려있던 시기였다. 아무리 음악을 항상 귀에 달고 살아도, 특이한 이름의 남자 아이돌 그룹까지 섭렵할 정돈 아니었다. 다만 이름이 특이해서 아이돌이 홍수 속에 "어휴, 저런 그룹도 다 있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들은 수 년 뒤, 역사가 되었다.



 같은 시기 이야기를 해보자면 싸이를 빼놓을 수 없다. 위 문단의 저 생각을 했던 반 년 전, 싸이는 (조금 과장해서) 세상을 뒤집었다. 연말 서울시청 광장에서 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연 실황 중계를 당직 근무를 서며 TV로 봤다. 어떻게 한국어로 된 가사가 빌보드를 누빌 수가 있는지, 앞으로 그런 일이 백년 뒤에나 일어날지 감탄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나더라.


 '앨범'의 시대는 이미 수 년 전에 훌쩍 지났다. 이 블로그에 음반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수차례 얘기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블로그를 비롯한 음악 이야기에 '형태가 있는 정규 음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해 왔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음악가라면 응당 한 흐름으로 30분 이상의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게 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단독 콘서트의 레파토리가 생긴다. 히트곡이 아니라도, 타이틀곡이 아니라도, 음악가 단독의 무대에서 숨은 보석같은 곡들을 보여줄 수 있어야 진정한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저물어버린 음반의 시대, 방탄소년단은 거슬렀다. 물론 다시 사람들에게 스트리밍을 안하고 오프라인 음반을 사게 만든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음반'을 사게 만들었다. 작년 발매된 'MAP OF THE SOUL _ PERSONA'는 무려 350만장이 팔렸다. 트와이스의 'FANCY YOU'가 36만장,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가 28만장 팔렸다. 아예 방탄소년단은 국내 판매량과 비교하는게 무의미해졌다. 


 오늘 소개할 'LOVE YOURSELF 結 'Answer''는 2018년 발매되었다. 약 220만장이 팔렸다. 나는 수년동안 이 블로그에 '이제 디지털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밀리언 셀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종종 리뷰했다. 왠걸, 2018년에만 방탄소년단은 180만장을 판매한 'LOVE YOURSELF 轉 'Tear''을 포함해 400만장 이상을 팔았다. 그들은 이제 그 정도의 '소년단'이 되어버렸다. 



 다른 방탄소년단 앨범들보다 이 앨범을 산 이유는 원래 즐겨듣던 곡들이 다소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리패키지의 장점이다. 'FAKE LOVE'와 'MIC DROP', 'DNA', 'IDOL'을 한 앨범으로 들을 수 있다. 항상 풀랭쓰 분량의 정규앨범을 살때는 들을만한 곡이 얼마나 있는지를 미리 들어보고 산다. 방탄소년단의 앨범은 그들만의 색이 확실하기 때문에 30대 아재가 되어버린 나의 귀에는 어색한 곡들도 많다. 이 앨범은 그런 곡들 사이사이에 원래 좋아하던 곡들이 끼어있다. 큰 고민없이 주문을 누를 수 있었던 이유다. 


 저렇게 꼽은 곡들말고 쉽게 외우는 곡은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가 방탄소년단의 앨범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단지 많이 팔려서만이 아니다. 내가 정규음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것이 증명하는 가치에 대해 항상 역설하는 부분을 방탄소년단은 정확히 채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 'LOVE YOURSELF'시리즈만 해도 총 네장의 정규 규모의 음반을 통해서 '기', '승', '전', '결'을 완성한다. 음반 한장을 풀랭쓰로 구성하기조차 어려워지는 인스턴트의 시기에, 방탄소년단은 무려 네 장의 앨범을 연계하여 만들었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이건 '방탄소년단이기 때문에' 투자할 여력이 있거나 그래서 가능한게 아니다. 이미 방탄소년단은 '화양연화'때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그랬듯이 각 앨범간의 연계성을 면밀히 구축하며 그림을 그려왔다. 또한 앨범 내에서의 트랙간의 서사성도 존재한다.


 '대박'이전부터 방탄소년단과 매니지먼트의 꾸준한 노력, 공들임은 결국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곡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Hot100 2위까지 가거나 디지털연간차트 순위권을 따먹는건 아니지만(요즘엔 따먹으려면 사재기도 해야읍읍), 그들의 [음반]은 말도 안 되는 기록들을 갱신하고 있는게 바로 이 노력들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CD라는 저장매체가 생겼을 때, 그 용량이 약 80분로 정한 이유가 바로 '베토벤 교향곡 9번'정도는 한 장의 CD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이 이유에 더할나위없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교향곡이 담고 있는 서사를 그래도 CD 한 장 내에서는 청자가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CD라는 매체를 통해 80여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면 음악가라면 응당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은 하나의 서사를 주어진 분량 안에서 최대한 활용할 욕심이 있어야 한다. 

 

 방탄소년단은 인스턴트가 난무하는 '차트 음악'의 시대에 CD를 온전히 활용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들려주려는 음악가로 거듭나고 있다. 올해 2월, 방탄소년단은 'MAP OF THE SOUL' 시리즈의 다음 앨범을 발매한다. 방탄소년단의 매니지먼트는 올해 5월 새 사옥으로 이사한다. 그들이 쌓아놓은 음악들은 빅히트의 대내외적 크기만큼 탄탄해지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매니지먼트가 그 음악적 욕심을 놓지 않는 한, 그들은 새로 세워지고 있는 사옥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음악적, 문화적 발자국을 남길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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