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밤 열한시. 관측이나 캠프 설치를 실패하고 찜질방이나 여관에서 몸을 뉘였던 날들조차 이 시간에 이불 속으로 들어간 적은 없다. 몇 주만에 처음으로 '자야될 시간'에 잠자리로 들어온 날. 그것도 고급스러운 호텔의 질감좋은 이불에서.
몇 주간 지속된 생활패턴 때문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몸은 나른하고 편한데 자꾸 뭐라도 해야할 것 같다. 왼쪽으로 몸을 돌려 누우니 캄캄해진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별도 간간히 보인다. 창 안에서, 가장 안락한 상태로 별을 보며 잠이 들었다.
- 안녕하세요. 박성운입니다. 별 같이 봤던 사람이요.
라는 메시지를 얼마나 다듬어서 보냈는지 모른다. 레스토랑에서 주문 후 식사를 기다리며 한참을 고치고 고치다가 보낸 메시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알람을 맞춰두지 않았음에도 햇빛 덕분에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체크인 할 때만 해도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말끔하다. 이불이 한약재로 만들어진걸까.
어제부터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체크인을 하고 짐들을 조금 정리한 후 사우나를 하고 비싼 식사를 했다. 그리고 씻고 잠에 들었다. 이것 뿐이다.
당장 마라톤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이 생기자 몸이 근질거렸다. 호텔 주변을 좀 달려보고 싶었다.
가벼운 복장으로 천천히 나왔다. 적당히 찬 공기가 코 안으로 들어왔다. 콧 속으로 맑은 산소가 들어오고, 산소는 뇌로 향했다. 뇌 안에 찬 공기가 들어차면서 서서히 맑게 적셔졌다. 지난 밤동안 몸이 회복되었다면 아침 공기를 통해 정신이 회복되었다.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면서 몇 주간의 방랑생활을 찬찬히 복습했다.
나는 대체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지도를 보면서 달리는게 아니다보니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중간중간 낮은 집들이 띄엄띄엄 보였고 녹색 가득한 산이 계속 배경에 깔렸다. 발이 가는대로 천천히 호흡을 유지하며 달렸다. 비포장된 골목으로 꺾어들어가자 기분은 한층 더 좋아졌다.
윈도우 잠금화면으로 밤 하늘 사진이 뜰 때가 있다. 그런 화면이 보일 때마다 나는 컴퓨터로 해야할 일을 잊고 실눈을 뜬 채 잠금화면의 사진에 빠져들곤 했다.
또, 서점의 천체관련 서적 코너에서 잘 찍힌 딥스카이 사진을 한참동안 감상하기도 했다.
NASA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우주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이 정도까지 가면 경외롭다.
처음 떠나오면서 떠올렸던 이미지는 이런 속성이 아니었을까. 조금만, 조금만 더 밤 하늘에 가깝고 싶다.
그리고 지난 몇주간 나는 어땠나.
관측과 촬영은 성공한 날 만큼이나 실패한 날이 많다. 그래도 몇 개만 결과물로 건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딥스카이 촬영은 더욱 성공률이 낮다. 촬영에 인내도 필요하지만 촬영 후 보정 기술은 경험이 좀 더 필요하다.
자, 과연 이렇게 필터링을 거치면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나의 생활동안 몇개의 결과물이 남을까. 열 손가락 안에 들어오는 듯하다.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온 것 같아 잠시 숨을 고르며 휴대폰을 들었다. 지도를 보니 호텔로 연결된 길은 없고,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팔을 어깨 위로 쭉 들어올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좁은 들판과 흙땅이 섞인 길이었고, 앞쪽으로는 홱 높아지는 산길이 보였다. 흙땅에는 트럭 두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 안쪽으로는 아예 산길이어서 차가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허리와 어깨를 팽팽하게 당겨주며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몸이 매우 산뜻하다.
성과물로만 봤을 때, 나의 이 생활은 50점이 안된다. 양 손을 뒤집어서 깍지를 끼고 앞으로 쭉 내밀자 저절로 입에서 "으어어."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 나의 지난 몇 주는 50점이 안되는 점수를 줘야 하나.
캠프조차 설치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쫓겨다니다가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의 뿌듯함.
처음 밤하늘 영상 녹화를 시작했던 날.
막상 다음날 녹화된 영상을 보니 초점이 다 날아가 있었던 걸 보고 헛웃음을 지었던 순간.
산길에 차가 빠졌을 때.
틈틈히 육안으로 바라본 밤 하늘과, 거기서 쏟아지는 별을 온 몸으로 맞은 순간들.
망원경에 꽉 들어찬 달을 마주했을 때.
느닷없이 찾아와 별을 보겠다고 했던 이상한 여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문득 휴대폰을 꺼내들게 됐다. 메시지의 1은 없어져 있었지만 답은 없었다. 괜한 짓이었을까.
나의 연락이 괜한 짓이었다고 해도, 관측을 포함한 나의 지난 생활들은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확실한건 어디서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도 나는 결과물과 관계없이 '이걸 하고 있는 그 자체'로 뿌듯하고 행복한게 확실하다. 몇 주를 돌이켜보니 더욱 또렷하게 나의 만족감이 확실해졌다.
호텔로 돌아와 차를 공터로 조금 이동했다. 그리고 차의 모든 문을 활짝 열고 먼지를 털어냈다. 차 안에 남아있는 짐 정리도 다시했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어제 꺼내온 세탁물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아무렇게나 저장된 파일들을 깔끔히 분류했다. 대청소하듯 모든 정리를 마무리하자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능숙한 태도로 사우나로 내려갔다. 온탕안에서 눈을 감고 해야할 일이 뭐가 남았나 떠올렸다. 개인정비와 관련된 일들은 모두 끝난거 같다. 이제 필요한 물품들을 좀 사두면 되겠다.
호텔에서의 안락함을 완벽한 재충전으로 소화했다. 마을로 내려가 가볍게 점심을 먹고 마트에 들러 장기 노숙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했다. 그동안 없어서 불편했던 것 중 하나가 비옷이다. 캠프에 있는 상태에서 비가 오기 시작하면 빠르게 캠프를 철수해야 하는데, 비 맞으면서 일하는건 상관없었지만 막상 그렇게 정리를 끝내고 차에 타려고 하면 시트까지도 엉망이 되어버린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들도 든든하게 구매했다. 단백질바, 즉석밥, 컵라면, 컵밥, 육포, 고구마말랭이류로 트렁크의 한 칸을 채웠다. 별을 보는 날만큼이나 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저녁거리고 걱정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룸서비스라는 것도 한번 이용해봐야지.
- ㅎㅇㅎㅇ 참 빨리도 연락하네요
은경의 답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