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자연인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세상과의 소통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잦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각각의 자연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왜 세상과 스스로 단절되는지는 좀 알 것 같긴 하다. 그들은 세상을 피해왔든, 다른 목적이 있던지 간에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그들의 집중에 방해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야말로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야 할 사람이 확실하다. 철저히 집중해야 하는 사람아닌가. 하지만 나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밖에 나와서 생활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 누구보다도 정보에 노출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틈틈히 유튜브를 찾아보고, 도서관이 있는 동네를 지날때면 관측하다가 적어놨던 필요한 책들을 찾아본다. 논문은 어려워서 다 읽진 못하더라도 관측인들이 온라인에 올려놓은 수 많은 정보들을 끊임없이 손댄다.
나는 이 생활을 딱 100일로 잡았다. 길다면 긴 기간이지만 이 모든 기간동안 제대로 된 관측을 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짧다면 또 충분히 짧은 기간이다. 게다가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작스레 그만두고 -물론 속으로 꿈꿨던 기간을 '계획'으로 상정한다면 '갑작'은 아닐 수 있다- 집을 없앤 비용으로 이 생활을 시작했을 정도면 내 나름대로 어떤 별을 봐야겠다는 욕심은 충분히 있어야 하는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의 100일은 철저히 효율적으로 활용되어야 했다. 내가 그동안 나의 일상들을 적으며 여러 여유있는 모습들을 남겼지만, 그것들은 생활의 일부에 불과하다.
관측의 행위는 반복된다. 관측 장비를 설치하고 영상을 녹화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육안으로 망원경 안을 보는 것. 반복되는 루틴을 굳이 글로 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쓰지 않았을 뿐이고, 무엇보다 그 행위들의 결과는 사진과 영상으로 충분히 남겨지고 있다.
정보로부터 나를 노출시킨 이유는 바로 이 효율성 때문이다. 나는 전공자이긴 하지만 고작 학사일 뿐이고, 그조차도 전공과 무관한 세상에서 몇 년이나 머물렀다. 내가 알고 있는 관측 지식과 장비, 방법은 몇 년 전까지만 유효한 것일 수 있다.
가령 나는 이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망원경을 구매하면서도, 대학생 시절에 알던 것과는 다른 사양의 망원경이 있음을 깨닫고 감탄했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까지 쓰지는 않더라도, 온라인 공간에 널려있는 정보를 활용하지 않으면 손해인건 확실하다.
나는 내 생활도구들의 이름을 '1차 장비', '2차 장비', '3차 장비'로 명칭을 붙였다. 구분해서 명칭을 붙인 이유는 딱히 없다. 생활의 체계화를 위해서였다.
1차장비는 의식주에 해당되는 장비들이다. 취사도구나 옷, 그리고 집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는 차까지다.
2차 장비는 망원경과 쌍안경, 카메라를 비롯한 관측을 위한 도구들이다.
그리고 3차장비는 태블릿과 노트북, 스마트폰 정도다.
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본 적이 있다.
일단 짐을 쌀때 나는 태블릿을 챙기지 않을까를 고민했었고, 스마트폰을 피처폰으로 바꾸는게 어떨지를 고민했다. 나는 스스로가 자연인에 가까운 모습이 되길 바랐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생활을 지속할수록 과거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절절히 깨닫고 있다. 다행히도 과거의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 태블릿도 스마트폰도 챙겼다. 지금도 이렇게 정보가 충만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태블릿이 두세개는 있으면 정말 더 편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여러 개의 자료를 놓고 비교하기 위해. 혹은 한 태블릿에는 사진, 한 태블릿에는 분석 자료를 띄워놓고 보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하드웨어들을 엄청나게 활용하고 있다. 하다못해 캠프를 차리고 관측장비를 설치한 후 조금 쉴 때는 유튜브로 관측하는 영상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있으니, 과거에 생각했던 '자연인에 가까운 모습'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망상이었음을 느낄 수 밖에.
내 모습은 뭘까. 글쎄. 지금 생각하면 독고다이로 활동하는 연구원처럼 보이는게 아닐까. 어딘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궁금하고 재밌어서 탐구에 나선 철없는 덕후의 모습이 아닐까. 꼭 캠핑 생활을 한다고 하여 정보나 장비의 부재가 필요조건으로 따라올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애초에 나는 단절을 원했던게 아니다. 몇 개인지 셀 수도 없는 저 별들과의 교감을 위해, 별들과의 소통을 위해 이 생활을 시작했다.
이 생활을 준비하던 때의 나는, '내 겉모습이 어때야 한다'를 은연 중에 설정했나보다. 그리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음을 시나브로 깨달았다. 나의 하루하루가 맥시멀하더라도, 결국은 아름다운 별을 보는 것만 충족되면 그만이다.
별을 제대로 보기 위해, 잘 보기 위해, 내 모습이 미니멀이냐 맥시멀이냐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음을, 이 생활이 길어질 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깨닫는다. 여러 첨단 장비들에게 고마워하면서 말이다. 야생 속에서 곱게 다루지 않아 태블릿 뒷면은 긁힌 자국이 꽤 생겨있다. 입김을 불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손자국이 지저분하게 묻어있는 화면도 깨끗이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