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우주 망원경

소설 연재

by 서인석

호텔에서 묵는 동안 은경과 다시 만나진 못했다. 하지만 첫 메시지를 남긴 뒤로 몇 번의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은경은 나와 만났던 기간을 계기로 하늘을 자주 보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내가 감탄했던 무언가에 누군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이, 혼자서 별을 볼 때보다 더욱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이었다.


- 인터넷 찾아보니깐 휴대폰 카메라로 밤 하늘 잘 찍는 법이 나오더라고요.

은경은 하늘을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매일같이 망원경으로 보고, 묵직한 카메라로 찍는 결과물과 비교할 건 아니었지만, 분명 웬만큼 잘 찍힌 사진이었다. 오히려 내가 은경에게 어떤 기능을 썼는지 물었다. 은경은 조리개나 노출을 조정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자신이 촬영할 때 봤던 링크를 함께 보냈다.


스마트폰.

천문학과를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휴대폰에 카메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 참 좋아졌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100만화소 카메라가 휴대폰에 달렸을 때는 '이러다 터미네이터도 진짜로 등장하겠는데?'라는 생각도 했었다.


이젠 스마트폰은 단지 높은 화소의 카메라만 달린게 아니다. 웬만한 촬영 기능을 출중하게 흉내낼 수 있는 괴물 기계가 됐다. 은경이 보낸 사진을 저장하고 확대해서 관찰했다.



그녀가 하늘을 찍었다는 사실에 다시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용기를 내서 답장을 보냈다.

- 그때보다 더 멋있는 하늘을 보여주고 싶네요.

은경의 답은 바로 돌아왔다.

- 오늘 볼 수 있을거 같던데요?

- 네?

- 오늘 NASA에서 밤 11시 반에 우주 망원경 사진 최초 공개한다고 했는데.

- 오.. 은경씨, 이제 그런 것도 찾아봐요?

- 별 사진 찾아보다보니 나오더라고요.

NASA에서 오랜 기간 준비했던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다. 그리고 드디어 첫 촬영본을 공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사실만 알고 있었지, 날짜가 오늘 밤인 줄은 몰랐다.


문외한이었던 사람이, 나에게 먼저 NASA의 우주 촬영본 공개 일정을 알려준다는 사실이 흐뭇하다.



노숙자 겸 천체관측자 생활을 지속하다보니 인터넷 서핑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내가 표현한 '인터넷 서핑'은 목적없이 그야말로 인터넷 세상을 파도타는걸 의미한다. 별과 관련된 검색이나 영상 분석은 제외한 표현이다.


일단 시간이 없다.

당연히 캠프를 설치한 후나,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새벽에는 중간중간 여유시간이 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굳이 손바닥만한 화면을 보기에는 눈과 목과 어깨가 충분히 피로하다. 차라리 의자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보내는게 건강에도 정신에도 이롭다. '산멍'은 나그네에게 최고의 휴식이다.


커피를 마시며 의자에 앉아 주변을 바라보는 행동 같은. 의외로 재밌다. '불멍'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알게 된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본다거나, 캠프 근처에 냇가가 있으면 그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등. 어쩌다가 동물들이 오면 산멍은 더 재밌어진다. 새나 청솔모 같은 동물은 자주 볼 수 있다. 고양이는 잘 없긴 한데 드문드문 보인다. 아직 사슴류의 동물이나 (다행히도)멧돼지는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좀 인터넷 세상에 빠져 있어야 할 일이 생긴 셈이다.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든 것 같은 이 무지막지한 망원경은 우주덕후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 충분하다. 은경은 자신이 봤던 몇가지 뉴스 링크를 보냈다. NASA에서는 마치 BTS 공연 소식을 공유하듯, 촬영본 발표 시간을 카운트다운 형태로 예고하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 때문에 밤 열한시 삼십분이 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영상 촬영은 포기했다. 망원경만을 두고 육안과 접안으로만 별들을 좀 봤다.

그 대신 보기 편한 자리에 노트북을 세팅해 놓고 NASA 홈페이지의 새로고침을 누르며 기다렸다.

이미 NASA에서는 공개 전일 쯤 한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 아름다운 사진, 어마어마한 사진은 나처럼 고작 지구에 발을 붙이고 별을 관찰하는 이들에게 경악과 좌절을 주었을 거다.

대기의 존재 유무는 망원경의 성능과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못박듯 선언해 버렸다.

'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상, 까불지 마라.'


NASA의 공개 사진은 볼 수 있는 인원 제한이 있거나, 일정 시간만 공개했다가 닫거나 하는게 아니다. 내일도 모레도 이 사진을 NASA 홈페이지만 가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밤 열한시 반을 세며 기다린 이유가 뭘까.

단지 빨리 보고 싶어서? 글쎄, 그랬다면 촬영 일정도 미리 좀 조정했을텐데.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듯 싶다.


새로고침을 계속 하던 중 예고된 시간에 새 사진들이 오픈됐다.

"아.. 맙소사.."


컴컴한 산 속의 캠프는 내가 보고있는 노트북의 화면만 빛나고 있었다. 바람에 나무들이 부딪히며 사부작대는 소리와 먼 곳에서 들리는 졸졸졸 소리, 알 수 없는 새소리들이 규칙없이 모아졌다 흩어졌다.

그 속에 유일하게 빛나는 노트북 화면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주 끝자락 빛들의 집약체 사진을 바라보며 탄성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스크롤을 내리며 우주 어딘가에 떠있을 망원경을 떠올렸다. 대기를 벗어나 무중력의 공간 속에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세상의 비밀을 찾아가고 있는 기계. 베릴륨으로 무장한 인간 기술의 최전선.

별만 보겠다는 일념으로 회사조차 때려친 나의 의지는 미약해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지식과 덕력으로 무장한 과학자들이 수 년동안 뇌세포 사골까지 짜내어 만든 깡패같은 도구다.


성운과 성단의 사진으로 다시금 인간의 미약함을 느꼈다. 또 이런 사진을 얻어내기까지 노력했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에, 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순수한 존경심이 샘솟았다.


휴대용 프린터를 차 트렁크 구석에서 꺼내어 노트북에 연결했다. 그리고 가장 색감이 또렷해 보이는 사진을 출력했다. 이 사진 하나가 무려 100MB를 훌쩍 넘겼다.


A4 용지에 뽑혀나온 사진은 모니터로 처음 원본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담아내진 못했다. 노트북을 테이블에 둔 채, 조금 뒤로 의자를 옮겨 앉았다. 워낙 깜깜했기 때문에 모니터만 여전히 밝게 빛났다. 다 식은 커피를 입에 한 모금 머금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리고 옆에 놓인 망원경을 바라봤다.


갑자기 흠칫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급하게 노트북으로 다가가 내가 촬영했던 사진 하나를 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조금 떨어져 앉아서 보았다.


그 사진도 아름다웠다.



은경의 메시지가 왔다.

- 봤어요? 뭐가 뭔진 모르지만 진짜 멋있네요.

나는 은경이 보냈던, 스마트폰으로 찍은 밤 하늘 사진을 길게 누르고 '답장'을 눌렀다.

- 이것도 충분해요.



※ 실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촬영본을 NASA에서 공개한 시기와, 이번 에피소드의 배경 시기는 상이함을 알립니다. 소재만을 차용했으나, 삽입된 사진은 실제 NASA에서 공개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촬영 사진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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