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캠프를 차릴때면 가급적 물이 흐르는 곳 근처에 잡는다.
처음에는 무조건 깨끗한 계곡만을 고집했다. 물이 깨끗하고 안 깨끗하고는 네이버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막상 괜찮은 스팟이다 싶어서 도착해보면 물이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이후 나는 네이버 지도가 아닌 종이지도의 등고선을 참고하기 시작했다. 등고선이 높은 곳에 있을수록 물은 깨끗하다. 하지만 읍내 접근성은 떨어진다. 당연한 이치다.
물론 이 물을 마시진 않는다. 그럼에도 물은 필수재다. 간단히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할 때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그릇이나 뭔가를 닦아야 할 때, 생수를 쓸 수 없는 때가 분명 존재한다.
어쨌든 나의 별보기 생활 초창기에는 멋모르고 이것저것 많이 가리던 터라 깨끗한 물 공급처를 찾아 캠프를 차리곤 했는데, 생활이 길어지자 모든 요소를 만족시키는 스팟은 사실상 없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됐다.
물이 그렇게 깨끗하지 않더라도 적당히 손 씻을 정도가 되면 위치를 잡았다. 캠프 위치가 너무 높아버리면 읍내로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목욕탕이나 세탁소를 다녀오기에 너무 오랫동안 캠프를 비워두어야 했다. 이동하더라도 대부분의 짐은 가져가는 편이지만, 그래도 스팟에 멈췄다가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번거롭다.
이번에 잡은 스팟은 등고선상으로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물이 깨끗하고 냇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주변 위치에 캠프를 차렸다. 촬영도 제법 잘 나왔기 때문에 이 스팟에 오래 머무르리라 생각했다.
생각하지 못한건 물이 가무는 경우였다. 이미 처음 스팟을 차릴 때 물의 상태가 가물고 있는 과정이었다는걸 알지 못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고 맑은 날씨가 지속됐다. 구름한점 없는 날씨가 지속될수록 별 사진은 아름답게 찍혔다. 이런 날씨에서는 아예 해가 올라오는 때에도 금성 정도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다. 마치 여기에 오래 머무르라는 듯 문을 열어준 하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움직이려 했다. 밤을 기다리는 시간은 설레였다.
해가 올라와 있는 낮 시간 동안 밤하늘을 맞이하기 위해 평상시보다 많은 양의 공부와 디테일한 계획을 세웠다. 오늘의 날짜에는 어떤 별을 볼 수 있고 어느 위치와 어느 각도의 하늘에 망원경을 고정시킬지를 분석했다. 낮잠을 자고 깰 때면 크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전날 찍은 딥 스카이 영상을 틀어놓았다. 유튜브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아름답고 깊은 하늘이 내 카메라, 내 노트북에 들어있는 모습에 소름과 전율이 돋았다. 날씨는 당분간 계속 이렇게 지속될 거라고, 예보에서는 말했다.
흙 투성이가 된 손수건을 씻고 세수를 하려 냇가로 다가갔을 때, 물은 없었다. 원래 물이 흐르던 그 위치에는 촉촉함이 거의 사라진 흙만 남아 있었다. 차에 마실 물은 어느정도 있었지만, 그걸로 간단한 세수를 하거나 식기를 씻을 정도는 되지 않았다. 좀 더 상류 쪽으로 쭉 따라서 산을 올라가 보았다. 한참을 올라가도 물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당장 물이 필요하지 않으니 그냥 있어볼까 생각도 했다. 물을 조금 참더라도 이만큼 인적이 드물고 촬영하기 적합한 장소도 없었다. 길없는 산등성이를 슬며시 계속 걸었다. 숨이 찰 정도의 능선을 넘어가니 한차선짜리 도로가 보였다. 도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긴 했지만 비포장도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좁고 낡아 있었다. 산의 평평한 면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도로 양쪽으로는 자그마한 민가들이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보이는 가장 가까운 곳에는 깔끔한 폰트로 '공소'라는 간판이 서 있었다. 울타리는 없었고, 일반적인 민가보다는 조금 큰 크기의 건물과 컨테이너 크기의 작은 건물이 떨어져서 배치된 곳이었다. 두 건물 사이에는 성모상이 놓여 있었다. 공소라고 써있는 안내판 밑에는 작은 글씨로 '천주교 OO교구'라고 표시된게 그제서야 보였다. 아마 천주교와 관련된 장소인 모양이다.
작은 건물에는 화장실 표시가 붙어있었다. 살짝 손잡이를 돌려보니 문이 열렸다. 작고 낡은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휴게소 화장실만큼이나 깔끔했다. 산을 넘어온 내 신발이 화장실 바닥에 흙을 남길 것 같아서, 문 앞에서 쿵쿵 털고 들어갔다.
큰 건물 쪽으로 슬쩍 고개를 기울여봤다. 건물 밖에 십자가가 있었고 작은 유리들에는 스태인드글라스가 소박하게 붙어있었다. 스태인드글라스 유리 안으로 건물 내부를 보려고 했지만, 내부가 어두워서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겨서 큰 건물의 정문처럼 보이는 큰 문을 밀어 보았다. 문이 무겁게 '끼이익'하며 열렸다.
문 안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모양처럼 일반적인 성당의 모습이 펼쳐졌다. 정면에 큰 십자가와 예식을 치르는 테이블이 보였다. 긴 의자들이 두 분단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아왔던 성당의 모습보다는 확연히 작은 규모였지만 크게 다르진 않았다.
나는 성당 안으로 발을 들일 생각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다시 문을 닫고 뒤로 돌았다. 그때 큰 성당 뒤쪽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문 채 다가왔다. 그도, 나도 흠칫 놀랐다. 회색 반팔 사제복을 입은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시죠?"
"아.. 지나가다가.. 보여서 들어와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신부는 돌에 담배를 황급히 끄고 손을 휘휘 저어 담배연기를 날려보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둘러보셔도 됩니다. 허허. 여기가 보통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오시는데, 낯선 분이 계시길래요."
신부의 옷은 땀 투성이었다. 내가 옷을 보는걸 느꼈는지 신부는 변명하듯 말했다.
"아.. 이게.. 사실 오늘은 제가 여길 오는 날이 아니거든요. 근데 이게 참. 공소가 낡아서 의자나 이런 것들이 바스라져요. 평일 중에 한 번씩은 와서 못질도 좀 새로 하고, 청소도 해놓고 하는데.. 매번 혼자하려니 땀이 이렇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부의 등 너머 뒤쪽 빈터에 널부러진 나무들과 의자를 봤다.
"그러면 보통은 여기 안계신건가요?"
"그렇죠. 신자는 아니시죠? 머무는 본당은 따로 있고 공소는 이렇게 좀 외진 곳에서 신자분들이 주일미사정도는 보실 수 있게 만들어진.. 뭐라고 해야되나.. 작은 멀티같은 장소에요."
그제서야 공소의 의미가 조금 이해됐다. 주변을 스윽 둘러봤다. 평탄한 마을의 가장 끝쪽에 공소가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길은 완전히 평탄하진 않았다. 공소 방향으로 슬며서 언덕이 올라있었고, 그래서 공소에서 작은 마을 전체가 온전히 잘 보였다. 공소의 터를 일부러 이렇게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나무들도 상당히 정리되어 있었고, 적당히 시야도 괜찮은 편이었다.
신부는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어쩌다가 이곳에.."
이 생활을 시작한 이후 종종 마주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대부분의 경우 뭉뚱그려진다. '캠핑을 한다'거나 '관측을 한다'거나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신부에게는 왠지 기승전결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지 않은가?
아무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별을 보기 위해 시작한 나의 일상을 설명했다.
어느새 나와 신부는 작은 돌턱에 나란히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부는 오십이 조금 안되어 보였고 흰머리가 희끗희끗 나고 있었다. 키는 170을 조금 넘기는 것 같았고, 덩치가 크거나 살집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른 편으로 보였다. 하지만 마치 농사짓는 사람처럼 다부진 느낌이 있었다.
대화가 길어지자 신부는 바지주머니를 더듬더듬하며 물었다.
"혹시 담배 태우시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신부는 끄덕이며 더듬이는 행동을 멈췄다.
"성경에서는.. 아, 신자는 아니시지만.. 어쨌든 성경에서는 나그네들을 잘 대접하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참.. 지금 가진게 담배밖에 없어서.."
나는 신부가 일했던 흔적으로 보이는 빈 터를 보며 물었다.
"저, 혹시 제가 뭘 좀 도와드릴까요?"
의외로 신부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넉살좋게 승낙했다.
"아이고. 감사하죠. 안그래도 성전 내부에 해야할게 산더미였습니다. 주일에 오시는 할아버지들 붙잡고 같이 하자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나는 벌떡 일어나면서 성전방향으로 손짓했다.
"얼른 안내해주시죠, 신부님. 해 지기 전에 다시 자리 잡아야 되서요."
신부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