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아무리 정신적으로 안락하고 행복한 날들이 지속된다고 해도, 신체적인 피로가 시나브로 누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망원경을 해체하고 스팟을 이동하려 할 때, 목 뒤가 뻐근한 걸 느낀게 이미 며칠됐다. 그리고 허리나 허벅지 쪽에도 찌릿찌릿한 느낌이 왔다.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갑자기 안좋아진게 아니라 꾸준히 오랫동안 체력 게이지가 우하향 하는 형태로 내려왔을터다. 다만 꿈같은 생활에 취해, 애써 체력적인 저하를 외면한거나 다름없다.
잠도 차에서 자고, 식사도 일정하지 않다. 정신을 제외한 육체만 놓고 봤을 때, 몇주간 이 생활이 반복되면 분명 문제가 생기는게 당연해 보인다.
만약 내가 특정 목표를 두고 누군가에게 검증받아야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체력적으로, 신체적으로 다소 무리가 오더라도 해야하는 일을 강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했던 다짐을 수백번째 다시 떠올렸다.
'뭔가 하려 하지 말자,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일교차가 좀 컸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과하게 하진 않았지만, 균형잡히게 하지도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고. 잠자리가 문제일까? 잠은 항상 어디서든 푹 자는 편이었다. 그래도 분명 상대적으로 비교하자면 침대보다 차가 편할리는 없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꽤 좋은 호텔을 잡고 한 2박 정도만 하자는 생각. 서울이나 주요 관광지는 웬만한 3성급 호텔도 몇십만원씩을 받겠지만 사람들이 다소 덜 찾는 이런 지역에서 평일이라면 조금 저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태블릿을 꺼내서 검색을 해보니 으리으리하다 싶은 4성 호텔이 요 주변에 있었다. 온천과 조식이 함께 포함된 패키지가 평일 1박에 20만원이 조금 안됐다. 이틀을 자면 40만원. 평상시 지출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비용이지만, 여전히 잔고는 많이 남아있었고 이렇게 가보지 않으면 갈 일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고정 수입이 있었던 서울 생활을 할 때도 굳이 호텔을 찾아서 가본 적은 없었으니까.
결정을 내렸으니 지체할 필요가 없다. 그 화면에서 바로 2박을 결제하고 지도를 찍었다. 지금 위치에서 차로 약 한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걸로 나온다. 스팟을 정리하고 움직이면 넉넉하게 2시간 정도 후에 도착할테니, 체크인 시간도 딱 맞을 것 같다.
가면 뭘 할까. 사우나 쿠폰이 함께 나오는 호텔인만큼 우선 뜨거운 물에 몸을 좀 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팟을 정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물을 끓이고 커피를 내렸다. 사람의 생각은 참 신기하다. 몸이 찌뿌둥하고 어딘가 안 좋다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더 몸은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물이 끓는걸 기다리면서 속옷과 수건을 빨랫줄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무와 차를 연결해 둔 빨랫줄을 정리했다.
호텔에서 세탁을 해주던가? 가본 적이 있어야지. 좀 큰 빨래들을 맡길 수 있으면 가격을 보고 맡겨야 겠다 싶었다. 아니면 코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으려나? 뭐든 지금의 야생보다는 편하겠지.
이동하면서 자꾸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괜히 열이 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한번 '나는 몸이 좋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자, 마치 신체가 '맞아, 몸이 좋지 않은게 확실해.'라며 신호를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호텔은 한산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문득 복장이 호텔이라는 장소에 맞지 않는거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로비층에 도착하니 이는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방문객은 많지 않았지만, 그 많지 않은 방문객들 중 누구도 그럴듯한 정장 차림인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등산복 상의에 운동복 바지를 입은 사람은 드문드문 보였을 정도.
프론트에서 직원이 친절하게 체크인 안내를 해주었다. 안내를 해주면서 혼자 온거냐고 물을 때, 나는 과하게 밝고 활발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호텔은 혼자오는 투숙객을 매우 경계한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한 장소로 다리위 만큼이나 호텔이 많이 선택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지나가는 것에 비해, 직원은 별다른 경계나 걱정의 태도를 보이진 않았다. 극단적 선택을 하러 온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는 방증이려나. 평일이라 그런지 객실은 여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직원은 높은 층의 바다조망으로 드렸다고 설명해주었다. 카드키를 가지고 17층으로 올라갔다.
점잖은 소리로 문이 '달칵'하고 열렸다. 눈 앞에 큰 창으로 바다가 훤히 들어왔다. 객실은 넓진 않았지만 아늑했다. 다른 것보다도 창가쪽으로 간이 책상과 스탠드, 그리고 의자가 놓여있었다. 이틀동안 묵으면서 필요한 기록을 하기에 충분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아무 짐도 가지고 오지 않은 상태여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에 놔둬도 되는 짐과 호텔로 가지고 올라갈 짐들을 좀 구분하기로 했다.
일단 망원경을 비롯한 부속장비와 카메라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카메라의 데이터는 매일 노트북으로 그때그때 옮겨놓은 상태다. 망원경과 삼각대 같은 부속품들을 차 안쪽으로 좀 더 밀어넣었다.
노트북과 태블릿, 지도를 방으로 가져갈 가방에 챙겨넣었다. 빨래는 3일치가 쌓여있는 상태였다. 빨아야 될 옷들과 이틀동안 입을 옷들을 더플백에 넣었다. 세면도구도 같이 넣었다. 주차장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으니, 나머지 짐들은 그대로 두고 다시 로비로 들어왔다.
직원들은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했다. 그동안 내가 사람을 만날 일은, 등산객들을 마주치거나 마을로 내려와서 세탁소를 갈 때, 혹은 사우나를 갈 때 정도였다. 이 정도로 격식을 갖추는 사람들을 만날 일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조금 어색했다. 엘레베이터로 향하다가 다시 데스크로 돌아왔다.
"네, 고객님."
"아, 혹시 라운더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나 해서요."
"네, 물론 가능하시고요. Kg당 0만원입니다. 빠른 세탁을 원하시면 00만원이시고요."
생각보다 비쌌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빨랫거리의 kg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해보고 있는 찰나에 직원은 말을 이었다.
"아니면, 여기 지하 2층에 코인세탁기가 있습니다. 건조까지도 하실수 있어요."
이어진 직원의 말에 나의 가늠과 계산은 더이상 이어질 필요가 없었다. 인사를 한 후 방으로 올라왔다.
온천을 같이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여서, 바로 온천으로 향하려다가 다시 몸을 돌려 가방으로 돌아왔다. 이마를 다시 짚었다. 그리고 가방 안으로 손을 넣어 타이레놀을 찾았다. 두 알을 먹었다.
몸은 참 신기하다. 스스로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는 정말로 아픔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우나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감기약의 기운과 물의 온도가 조화롭게 내 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온천수의 홍보문구를 봐서 그런지, 시골 동네의 사우나에서 몸을 담글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런 게 플라시보일까. 물 안에서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빠가 살아 계시던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목욕탕을 가면 온탕이 너무 뜨거워서 빨리 물 안에서 나오고 싶었다. 그렇게 물에 깔짝깔짝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온탕의 물은 물이 아니라 불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해가 안됐던 건, 그 '불'속에 몸을 담근채 코를 골며 자는 어른들이 종종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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