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리스트

TEXTIST PROJECT

by 서인석

내 폰에 저장된 음악파일은 오천 곡쯤 된다. 멜론, 벅스, 지니 같은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도 충분하고, 스포티파이나 유튜브 뮤직 등의 플랫폼도 견고한 시대지만, 나는 항상 CD와 다운로드 상태로 음악을 소장한다.


오천 곡을 어떻게 다 듣냐고 궁금해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나름의 듣는 방법이 생긴다.

일단 CD로 구매한 음반은 음원을 추출한 후 앨범 단위의 폴더를 폰 내부에 생성하여 넣는다. 집에서는 CD로 앨범을 들을 수 있고, 운동하거나 걸을 때는 폰의 해당 폴더로 듣는 게 가능하다. CD로 구매하지 않은 음원들은 다운로드 폴더에 따로 저장한다.

그리고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이 플레이리스트는 규칙이 있다. 200곡 내외로 유지하는 것. 이른바 '서인석 Top 200'이라고 보면 된다. 다운로드한 음원과 CD로 추출한 음원들 중 딱 200곡 내외만을 이 플레이리스트에 등록한다. 플레이리스트는 그렇게 전적으로 나의 취향을 따라가게 된다. 수십 년 된 음악도 내 맘에 들면 200곡 내에 들어있게 되고, 지난주에 다운로드한 음원이라도 더 듣고 싶지 않으면 플레이리스트에서 빠진다.(물론 언제라도 다시 들어올 수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200곡'이라는 정량적 숫자이다. 개수의 한도를 정해두지 않으면 오천 곡을 그냥 쌓아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의 정리는 CD 시장이 사장되기 시작했던 대학생 시절부터 MP3플레이어에 쭈욱 유지했던 방법이다. 이제는 이 방식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스트리밍사이트로 듣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이 방법의 장점은 너무 명확한데, 첫째로는 음악을 들을 때 통신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무형의 파일 형태로 휴대폰에 들어있지만, 어쨌든 파일은 온전히 '내 것'이다. 스트리밍사이트로 듣는 음악은 '빌려'듣는 기분이 든다.

둘째는 트렌드에 맞지 않거나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음악들도 플레이리스트에서 살아있게 된다는 점이다. 스트리밍사이트의 Top100, Top200은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성공한 음악들이겠지만 그것이 내 귀에 무조건 맞으라는 법은 없다. 또한 어느 정도 내 귀에 맞다고 하더라도 순위까지 백 퍼센트 맞을 수는 없다.



얼마 전 운동을 하다가 불현듯 듣고 싶은 음악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음악이지만 내 폰 안에 살아있으리라고 당연히 확신했다. 역시 그 음악은 파일의 형태로 200곡에는 포함되지 못한, 오천 곡 중 하나로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재생을 눌러 들었다. 또 오랜만에 그 노래를 200곡 내로 넣었고, 200곡 중 다른 한 곡을 제외시켰다.


같은 행위를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할 수 있다. 과거에 좋아했던 곡을 떠올리고 검색해서 듣는 일 말이다. 하지만 그 노래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한 단계가 더 필요하다. 내가 소유한 적이 있었냐는 단계. 스트리밍사이트는 수천만곡을 준비해 두었지만, 내 주머니에는 언제라도 200곡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오천 곡 있다.


이제부터는 개인의 영역이다.

내가 이 CD를 언제 샀었구나, 어디서 샀었구나, 이때 나는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있었구나, 이 음악을 다운로드할 때 어떤류의 음악을 들었구나, 어떤 방송을 봤구나, 어떤 사람과 만났구나, 무슨 책을 읽고 어디에 살았구나 같은 것들. 스트리밍 사이트의 수천만곡은 내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음악은 음식도 학문도 아니기 때문에 듣는 이마다 각각의 의미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빌보드 1위의 가수보다 집 앞에서 버스킹 하는 기타리스트의 음악이 감동적일 수 있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똑같은 음정과 음계가 공기의 떨림을 타고 전해짐에도, 듣는 이들은 각자 다르게 눈물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음악 주머니에 들어있는 오천곡은 그렇게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고 고요히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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