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IST PROJECT
상대성이론을 굳이 예시로 들지 않아도 시간을 대하는 감각은 점점 무뎌진다. 그리고 문득 시간을 체감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내판을 따라 자란다. 태어난 지 8년이 지났다는 안내판을 볼 때쯤이면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여기서 6년 정도 직진하면 중학교를 가게 되는 식이다. 아무리 멍하니 있으려 노력해도 이 안내판은 '3년이 지났으니 고등학교', '3년이 지났으니 입시'라고 알려준다.
남녀는 20년째부터 조금 다른 안내판을 받는다. 남자는 군 복무의 의무가 안내판에 추가된다. 어쨌든 이십 대 중반 후반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안내판들은 지속적으로 '당신은 지금 이만큼 와 있다'고 알려준다.
사회인이 되고부터 시간의 흐름은 망각된다. 사람마다 워낙 다양한 삶을 가꾸어 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안내판은 사라진다. 내가 얼마나 왔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교차검증을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시간의 감각을 구체적으로 판단할 때 주로 음악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들으면서 '아, 나 이거 군대에서 들었는데.'라고 회상한다. 나의 군복무는 10년 전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남스타일이 바로 엊그제 노래 같더라도 10년의 시간 흐름을 인지할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수단이 다르겠지만, 직접적인 사회적 안내판이 사라진 나이대에서 그 감각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이건 상당히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다고 해서 시간이 느리게 가기는커녕 오히려 빠르게 가기 때문이다.
얼마 전 회사의 선배들과 매우 오랜만에 티타임을 가졌다. 아줌마 선배님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나는 조용히 들으면서 속으로 너무 놀랐다. 분명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아이들'은 애기였거나 초등학생이었는데, 이제는 그들의 군대 이야기와 대학 입시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선배들도 똑같이 회사에 있고 거의 변한 것이 없는데, 거기에 얽힌 '안내판'을 가진 주인공들은 상당한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 놀람을 선배들에게 얘기했다. "OO가 군인이라는 게 너무 소름 돋아요, 선배님.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데 말이죠. 저도 여기 들어온 지 10년째니까요."
이 말을 마치자 선배들도 마찬가지로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나는 그저 부서 막내, 신입사원이었을 텐데 10년이 지났다고 하니 마찬가지로 나의 '10년'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시간의 흐름을 새삼 인지하게 된 또 다른 교차검증이 된 셈이다.
시간은 이렇게 무심하다. 날이 갈수록 안내판은 줄어들고, 시간의 흐름을 판단할 수 있는 교차검증의 수단도 희미해진다. 직접적으로 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판단하려면 한 번의 생각이 더 필요하고, 이제 앞으로는 이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때마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깜짝깜짝 놀랄 일만 남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