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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Aug 21. 2023

03 스마트폰 시장의 두 지배자(3)


삼성에게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려면


 애플페이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한동안 소셜미디어는 '애플페이의 간편함을 보여주는 피드'로 가득 찼다. 삼성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삼성페이는 무려 7년 전부터 이 간편하고 압도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 또한 '선점'과 '후발'이 고객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무조건 적인 요소가 아님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먼저 시작한 서비스도 이럴진대, '설명 불필요한' 위치를 이미 점유한 상대를 따라가기는 오죽 힘들까. 

 갤럭시는 최근 몇 년간 '갤럭시 생태계'를 견고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스마트폰-태블릿-노트북-이어폰-워치의 모든 제품군을 생산하는 지구상의 몇 안 되는 회사로서, 그동안 애플이 견고하게 이룩한 생태계의 아성을 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계속 반복하지만 '갤럭시 생태계'도 역시, 아직은 설명이 필요하다.


'갤럭시 에코시스템' 라인업(위)과 '애플 연속성' 라인업(아래) 


 그런데 갤럭시에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시장이 생겼다. 정확히는 삼성 스스로 개척한 시장이다. 바로 폴더블 스마트폰이다. 

 폴더블폰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기업은 열 곳 가까이 된다. 화웨이, 샤오미, 오포 등의 중국 기업과 구글, 모토로라 등의 미국 기업이 스마트폰을 '접고' 있다. 스마트폰 전체 시장에서 폴더블폰의 시장 규모는 2% 미만으로 미미하다. 비록 작은 시장이지만 여기서 삼성의 점유율은 과반을 훨씬 넘는다.

2022년 상반기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출처 :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위 그래프에서 삼성의 폴더블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62% 수준이지만, 2022년 하반기에 출시된 갤럭시Z폴드4와 갤럭시Z플립4으로 인해 2022년 전체 기간 동안 삼성의 점유율은 80%를 상회한다.


 갤럭시Z는 최근 다섯 번째 시리즈가 출시됐다. 이제는 아예 접었을 때의 작은 틈조차 사라져 버렸다. 폴더블폰의 완성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매년 발전하고 있다. 

 폴더블폰 시장에서도 고객들의 '설명' 여부가 변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가장 초기 제품인 2019년의 갤럭시 폴드가 공개되었을 때, 판매자와 구매자는 '휴대폰을 접으면 어떤 점이 좋은가'를 설명했다. 폴드 라인업이 'Z 폴드'와 'Z 플립'으로 분화 개편되고 디자인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뒤부터는 접는 '기능'에 대한 설명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대신 화웨이나 오포는 그들의 제품이 '갤럭시 Z'시리즈보다 어떤 점이 나은지를 설명하고 있다. '아웃폴딩'이냐 '인폴딩'이냐, '화면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 '무게가 어느 정도냐' 등으로 말이다. 적어도 폴더블폰 시장에서 갤럭시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빠르게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아이폰이 폴더블 시장에 뛰어들면, 기존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애플의 위세를 그대로 폴더블폰 시장에서도 확장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IT 분야의 소식들을 종합했을 때,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출시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남은 듯하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이 폴더블폰 시장 규모 자체를 키워놓는 '퍼스트 무버'로 자리 잡는다면 어떨까. '설명이 필요 없는 자'와 '설명해야 하는 자'의 기존 구도에서 벗어나, 서로서로 '설명이 필요한' 제로베이스 경쟁의 n라운드가 다시 시작되지는 않을까.




소프트 파워의 진득한 지속력 


 대형 사건과 숫자로 빠르게 좌지우지되는 하드 파워와 다르게, 한번 구축된 소프트 파워는 상당한 지속력을 갖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오스트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시가 예쁘고, 온갖 유명한 음악가들이 예술을 남긴, 문화적 성취가 훌륭한 나라로 떠올릴 것이다. 

 대한민국의 하드 파워는 오스트리아의 그것을 뛰어넘은 지 한참 됐고, 차이도 이미 상당하다. 그러나 두 국가의 소프트 파워 차이를 비교하면 하드 파워만큼 벌어지진 않는다. BTS, 블랙핑크, 싸이의 대한민국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오스트리아와 큰 이격을 벌리진 못한 셈이다. 

 소프트 파워의 지속력은 이 정도로 진득하다. 아마 100년 후에도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여전히 기억될 테고, 그때의 오스트리아 소프트 파워에도 반영이 되어 있을 터다.


2022년 인터브랜드에서 산정한 'Best Global Brand 100' (출처 : 인터브랜드)


 애플이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그들의 소프트 파워는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이다. 하다못해 소니를 보라. 한때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IT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순위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니의 인지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변화를 놓친 '실수'한 기업이 이 정도다. 


 삼성의 입장에서 애플이 넘어지기만을 '비나이다, 비나이다' 할 수만은 없다. 애플과는 다른 색깔의 소프트 파워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폴더블폰 시장을 개척하고도 만족하지 않고 매년 개선한 지금처럼 말이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막강하고 탄탄한 하드 파워가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기업 자체의 안정적인 매출과 이익, 판매량, 점유율 등. 게다가 꾸준히 논란 없고 완성도 높은 제품을 탄탄한 공급망으로 생산해 내는 능력 또한 유지되어야 한다. 이 점을 모두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한다니, 글로벌 시장의 지배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는 동떨어질 수 없다. 상관관계에 있다. 

 애초에 불량 투성이인 기계를 만드는 전자제품 회사가 좋은 소프트 파워를 구축할 가능성은 요원하고, 그따위 제품들을 통해 매출이나 이익이 제대로 발생할리도 없다. 애니콜 15만 대를 불태웠던 이건희 회장의 지시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기업과 브랜드의 10년 뒤, 20년 뒤를 바라본 정확하고 날카로운 경영철학이었다고, 후대는 평가하고 있다. '품질의 삼성', '관리의 삼성'이라는 소프트 파워는 '그냥 잘해서' 구축된 것이 아니다. 삼성은 이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소프트 파워를 성장시키기는커녕 유지해 가는 것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95년 삼성에서는 불량 무선전화기 15만 대를 불태웠다.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 기업 순위는 매출, 이익, 자산, 시장가치 등을 종합한 인덱스이다. 그런데 2023년 기준으로 10위까지의 기업 중 생소한 기업도 몇몇 있다. 세계의 10위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중국의 거대 기업들은 하드 파워만 높은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덩치는 크지만 '글로벌'에는 갸우뚱하게 되는 기업들이다. 

2023년 세계 기업 순위, 삼성은 15위에 위치한다.(출처 : 포브스)

 

 삼성은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 모두를 꾸준히 성장시켜 '글로벌'을 붙이기에 전혀 이질감이 없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스마트폰은 반도체와 더불어 삼성의 매출과 이익의 큰 부분을 책임지는 제품이지만 거기에만 그치진 않는다. 삼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의 결정체라는 상징적인 의미까지 더해진다. 

 설명이 필요 없어진 기업인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점점 설명을 줄여갈 수 있을까. 아직 두 지배자들의 스토리는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 시장의 두 지배자'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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