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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Aug 31. 2023

04 탈 것 이상의 무언가(1)

 구글 검색창에 '똥차'라고 타이핑해 보자. 가장 첫 번째 자동완성에 '똥차 가고 벤츠 온다'라는 검색어가 뜬다. 똥차 가고 '명차'가 오는 게 아니다. '벤츠'라고 한다. '부가티'나 '페라리'가 아니다. '벤츠'란다. 벤츠보다 좋은 브랜드나 좋은 자동차도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굳이 벤츠라고 표현한다. 벤츠라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쓰이는 예시다. 벤츠가 가진 소프트 파워를 증명한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벤비아'라는 표현을 쓴다. 혹은 '독3사'라는 표현도 쓴다. 벤츠, BMW, 아우디를 묶은 표현이다. 고급 수입차의 가장 대중적이고 잘 알려진 세 브랜드는 판매량이나 성능, 고객 서비스까지 다른 수입차들과는 다른 레벨로 인지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부류로 묶이는 세 브랜드도 막상 매장에서 구매상담을 해보면 약간 다르다. 벤츠는 다른 두 브랜드의 같은 등급의 차종보다 할인율도 애매하게 낮고 가격도 약간 높다. 차종별로 다르지만 평균적인 대기기간도 다소 길다. 




보통명사화된 고유명사


 수입차가 도로에 흔해지고 국민들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벤츠는 어느새 대중들에게 접근 가능한 브랜드가 됐다. 이제 구매하고자 하는 차종의 배기량 등급을 한두 단계만 낮춰도, 국산차를 구매하려던 금액으로 벤츠가 구매 가능해졌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의 제조사별 자동차 판매량(출처 : 오토뷰). 벤츠가 쌍용이나 르노보다 많이 팔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벤츠라는 단어는 앞에 말했듯 '똥차'의 대척점에 보통명사로 서있다. 윗 세대의 어른들에게는 여전히 벤츠라는 단어만으로 다른 구구절절한 설명을 상쇄하는 듯하다. 철이 없고 낭비벽이 있고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 세대로 인식되고 싶지 않은 젊은 벤츠 차주들은, 오히려 부모님 세대에게 '벤츠가 이제는 그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2023년을 기준으로 진짜 부자들은 포르쉐를 대중적인 차로 인지하고 구매한다. 벤츠는 부자들에게는 편하게 탈 수 있는 세컨드카 정도로 자리 잡아가는 걸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츠라는 이름이 갖는 소프트 파워를 타 브랜드들이 뒤집으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 같다. 한번 자리 잡은 소프트 파워는 이토록 강력하다. 

 차종이 다양하고 주행성능면에서 항상 칭찬받는 BMW, 디자인과 할인율에서 장점을 가진 아우디가 있지만, 삼각별 브랜드 심볼은 별다른 설명 없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수많은 연구개발비가 투영된 성과만큼이나 강력한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소프트 파워를 강화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 결코 매몰비용이 아닌 이유이다. 


 소비자는 자동차를 단순히 '탈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가방을 '들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수백 만원짜리를 줄 서서 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의 차종별 판매량(출처 : 오토뷰). E클래스는 20위 내에 있는 유일한 수입차이다.




한국인의 벤츠 사랑


 전범기업이라는 오명이 남아있는 벤츠이지만, 안정적인 생산량과 높은 품질, 그리고 혁신적이면서 상용화된 신기술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정복할 수 있었다. 벤츠는 '고급차'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 위해 오랫동안 '적당하면서 높은' 가격을 유지해 왔다. 벤츠라는 명칭 때문에 고객들은 막연하게 '비싼 차'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매장에서 구매상담을 해보면 '그 정도까지 비싸진 않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게 되는 것이다. '가성비의 끝판왕'으로 지금까지도 자리매김하고 있는 도요타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매거진의 프롤로그에서도 소프트 파워를 기업에 대입하여 설명하기 위해 벤츠와 도요타를 예시로 들었다. 고급차, '있어 보이는 차'를 선호하는 특수한 시장인 대한민국에서는 도요타가 자주 보이는 차는 아니지만, 대중적이고 고장이 잘 안나는 차를 선호하는 일반적인 자동차 시장에서는 도요타가 압도적이다. 

 어쨌든 벤츠의 입장에서는 한국인들에게 감사해야 맞다. S클래스나 E클래스는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 중국의 인구가 14억이고 미국의 인구가 3억인데, 한국의 인구는 5천만 명이다. 애당초 말이 안 되는 판매량이다.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독일 현지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팔릴 때도 있는 걸 보면 '설명이 필요 없다'.

벤츠가 한국 시장에 신경 쓴다는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벤츠 회장은 한국에 방한했을 때, 위 이미지의 기사 제목처럼 '꼭 판매량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국이 각별하다는 얘기를 했다. 한국 기업들과의 협업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워딩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독자들은 없을 거라 믿는다. 기업인들이 으레 취해야 하는 겸양의 표현일 뿐이다. 정확하게는 '어떤 이유로든 각별한데, 판매량까지 높은 나라'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게 맞아 보인다. 

 

 이렇듯 국가 규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판매량이 높은 이유가 단지 '차가 좋아서'만으로 결론을 내리기엔 논리가 매우 모자라다. 계속 우리는 한국 시장에서 벤츠가 갖는 소프트 파워를 사례별로 찾아볼 것이다.


('05 탈 것 이상의 무언가(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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