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Sep 03. 2023

05 탈 것 이상의 무언가(2)


시장의 크기에서 오는 한계


 이렇듯 한국인의 시선에서 보면 벤츠는 어쨌거나 고급스럽고 갖고 싶은 이미지이다. 그런데 경영의 측면에서 보면 벤츠는 혈투를 벌여야만 한다.

 자동차 시장을 국가별로 구분했을 때, 가장 큰 고객은 미국이다. 인구수로는 인도와 중국이 더 먼저겠지만 국가의 발전 수준과 인구수 대비 자동차의 구매대수, 신차 구매에 대한 고객접근성 등을 판단했을 때 그렇다. 북미에서도 '고급차'인 벤츠이지만 개별 자동차 판매대수로는 20위권에 들지 못한다. 이는 북미시장에서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2022년 북미 제조사별 자동차 판매량(출처 : 오토뷰). 벤츠는 기아의 절반 정도 팔렸다.


 가장 자동차가 많이 팔리는 시장에서 판매량이 저조한 '고급스러운 차'라는 게 얼마나 오명인가. 오히려 북미시장에서는 현대나 기아가 더 판매량이 잘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중국이 엄청난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했고, 이 시장에서 벤츠가 상당한 판매량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많이 파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쩌면 적당한 판매량과 높은 이익률을 발생시키면서 희소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도요타와 벤츠를 비교했던 프롤로그의 예시는 그야말로 북미시장에서 가장 적절하게 발휘되는 듯하다.




벤츠의 소프트 파워 근간을 뒤흔들지도 모르는 


 '메이드 인 차이나'가 갖는 위력은 한국에만 한정된 웃긴 밈 따위가 아니다. 이미 영미권에서도 중국산은 '싼 맛에 쓰는'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하다못해 중국인 스스로도 자조적인 의미로 메이드인 차이나라는 말을 쓰곤 한다. 


 중국의 하드 파워가 강해지고 중국에서의 벤츠 판매량이 늘어난 후, 중국인들의 벤츠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나 접근성은 상당히 높아졌다. 중국의 부는 벤츠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갔는데, 이는 단지 자동차의 구매 비용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중국 자본은 벤츠라는 기업에 투자되었고, 현재 벤츠 지분의 상당수를 중국이 갖고 있다. 베이징자동차와 지리자동차는 총 19.67%의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주분을 보유 중이다. 독일법은 국외 자본이 자국기업 주식 20% 이상을 사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치로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지배구조 중 중국계 비중.


 차이나머니가 벤츠에 서서히 깔리기 시작한 후 마찬가지로 서서히 입소문을 탄 멸칭이 '짱츠'이다. 중국을 비하하는 비속어와 벤츠를 합한 이 말은 최초 등장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 중국자본과 벤츠가 연결성을 갖게 된 점과 궤를 같이 한다. 


 차량에 문제가 있거나 디자인의 화려한데 이상하게 고급스럽진 않거나 할 때마다 '짱츠'라는 단어는 등장하곤 한다. 자, 이 편을 열 때 가장 먼저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똥차 가고 벤츠 온다'말이다. 어쩌면 소프트 파워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예비 신호이자 경고음일지도 모른다.


검색 결과에 도출되는 벤츠에 대한 부정적인 컨텐츠들.



시장 자체가 달라진다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눈치게임이 지속되고 있다. 이 눈치게임은 테슬라부터 시작했다. 전기자동차가 상용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 버린 것이다. 테슬라 다음으로 빠르게 치고 나간 완성차 업체가 바로 현대기아차 그룹이다. 현대와 기아의 전기차는 상당한 호평을 받으며 시장을 빠르게 점유해가고 있다. 게다가 처음 자동차를 만들어보는 테슬라와는 다르게 현대기아차는 이미 공장과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고, 업력이 상당하다. 자잘한 단차나 승차감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현되는 테슬라와 차별되는 현대기아의 장점이다.


 벤츠는 이 흐름에 조금 늦었다. 글쎄, 이유를 알 순 없지만 벤츠가 갖는 고유한 '고급스러움'을 밀고 나갈 생각이 아니었을까. 2021년에는 비로소 본사에 다음 내용을 공언했다. 


2025년부터는 전기자동차 전용 아키텍처만을 출시한다.
2020년대 내에 (가능한 시장에 한해) 100% 전기자동차 기업이 된다.


 이 공언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보인다.

전기자동차 시장은 내연자동차 시장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앞선 챕터에서 말한 중국과의 결합이 벤츠의 전기차 진출에 대한 물음표를 자꾸 낳고 있다. 일단 중국자본이 벤츠에 투입된 뒤부터 벤츠의 디자인은 왜인지 모르게 덜 고급스러워 보이고 있는데, 이 부분이 벤츠의 전기차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형상이다. 단지 '공기역학적' 구조라고 끄덕이고 넘어가기에는 다소 선을 넘은 못생김이다. 


벤츠의 전기차 세단의 디자인은 다소 뭉툭한 느낌이 강하다. 


 디자인은 그렇다고 치자. 

 성능면에서도 벤츠의 전기차는 경쟁업체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해서는 그다지 제기된 적 없는 부분이다. 특히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셀링 포인트인 항속거리가 그렇다. 




그래서, 벤츠는 보통명사 자격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전범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반성하고 극복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차 기업으로 자리 잡은 벤츠. 그들은 어쩌면 갈림길에 서있는지 모른다. 앞선 스마트폰 챕터에서 우리는 강력하게 구축된 소프트 파워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살짝 엿봤다. 벤츠의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도 벤츠가 큰 실수를 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하드 파워를 잘 유지한다면 꽤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실수는 실수한 당시에는 알 수 없다. 기업의 중국의존도가 높아진 점,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게 아주 빠르지는 않았다는 점, 이 두 가지가 과연 실수였을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 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한국 사람들 한정으로 더 이상 벤츠는 "우와! 벤츠!"같은 분위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이 단지 희소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기업과 브랜드가 잘 나가고 있어도 끊임없이 '잘 나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탈 것 이상의 무언가'편 끝)

매거진의 이전글 04 탈 것 이상의 무언가(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