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D2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전체에 걸쳐서 등장하는 드럼통 모양의 로봇이다. 친구처럼 함께 등장하는 'C-3PO'가 인간형 로봇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비프음만으로 의사소통을 진행하지만, 영화 속에 드러나는 R2-D2의 능력은 상당하다. 단순 수리부터 전투 지원, 때로는 직접 전투에 임하기까지 한다. 다재다능하면서 귀여움까지 갖춘 R2-D2의 활약을 통해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미국의 신화'라는 수식어를 가진 <스타워즈>하면 몇몇 아이콘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다스베이더와 숨소리, 붉은색 푸른색 광선검이 '지잉-'하며 켜지는 소리, 명대사 "I'm your father.", X자 모양으로 날개를 펼치는 파이터 등등. 지금 소개할 R2-D2도 아이콘 들 중에 분명 들어갈 것이다. 아마 영화를 안 봤음에도, 위 R2-D2의 사진이 이미 익숙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R2-D2는 제일 처음 '전설의 시작'을 알린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편에서부터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까지 3편 모두 개근 출석했다. 게다가 프리퀄로 제작된 세 편의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개근한 캐릭터다. 비교적 최근 제작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도 등장한다. 이 정도면 주인공을 돕는 로봇이 아니라, <스타워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시사회에 등장한 드로이드들
'스타워즈의 그 로봇'이라고 하면 보통 두 기종의 로봇을 떠올릴 것이다. 황금색의 말 많은 인간형 로봇과 드럼통 모양의 비프음을 내는 로봇이 그들이다. R2-D2가 후자다. 보통 영화 내에서는 "헤이, 알투!" 이런 식으로 불린다.
◇ R2-D2는 인공지능일까?
우리는 흔히 영화에 로봇들이 나오면 당연하게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공장의 용접 기계나 도색 기계는 그저 '로봇'이라 부른다. 우리는 그들을 인공지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용접로봇.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지만, 스스로 판단하진 않는다.
인공지능임을 인정하기 위해선 (학자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의 차이가 있는) 몇 가지 조건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을 차치하고,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인공지능의 정의를 내려볼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인간이 아닌' 지능
여기서 '인간이 아닌'이라는 단어가 굳이 들어가는 이유는, 저 부분이 빠지는 순간 모든 인간까지도 인공지능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A.I.는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이다. 요점은 '인간'지능이 아니라, '인공적인', '인위적인' 지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유사한', '인간 수준의', '인간을 흉내 낸' 정도로 풀어볼 수 있다.
R2-D2는 시리즈 전 편에 걸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용어 중 '약인공지능'과 '강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있다. 약인공지능은 특정한 분야에서만 제한적인 판단을 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지칭한다. 하지만 강인공지능은 모든 판단과 행동을 목적에 맞게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지칭한다.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압도적 능력의 인공지능들은 모두 강인공지능으로 부를 수 있다. R2-D2 또한 소유자가 명령하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그는 비록 드럼통 모양이지만 분명히 인공지능이다.
◇ R2-D2의 주요 역할
<스타워즈>는 4-5-6-1-2-3편의 순서로 개봉되었기 때문에 첫 등장이 4편이 맞겠지만, 스토리상으로는 어쨌든 1편에서 먼저 등장한다. 주인공 일행은 우주선을 타고 적의 추격을 받으며 탈출 중이다. 적들의 공격에 우주선은 피해를 입는다. 이때 R2-D2와 같은 드럼통형의 드로이드들이 급히 우주선 밖으로 나가서 공격받은 부위를 수리한다. 안타깝게도 다른 드로이드들은 이어지는 공격에 우주상에서 파괴된다.R2-D2는 공격들에 살아남으면서도 우주선의 고장 난 부위를 완벽하게 고쳐내고 선내로 복귀한다. 우주선에 탑승하고 있던 여왕과 수행원들은 R2-D2의 공을 치하한다. <스타워즈> 스토리에서 R2-D2의 화려한 데뷔다.
<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 중. R2-D2의 <스타워즈> 세계관 첫 등장씬이다. 늠름하게 선상으로 향한 뒤, 우주선을 수리한다.
그는 주요 현장마다 주인공 그룹을 완벽하게 지원한다. 2편에서는 오비완과 아나킨의 훌륭한 조력자로 활약한다. 4편에서는 레아 공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며, 5편과 6편에서는 아예 전시상황 속에서 한몫을 단단히 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R2-D2의 스틸-씬은 3편이다. 우주선을 지키라며 무선 송수신기만을 던져주고 아나킨과 오비완이 떠난다. 그때 우주선을 뺏어가기 위해 전투 드로이드들이 다가온다. R2-D2는 (손도 없으면서!) 두대의 전투형 드로이드들과 싸우게 되는데 이때 R2-D2의 전투기술이 아주 일품이다. R2-D2는 불을 지르면서 1:2의 싸움을 이기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다.
현재 인공지능은 머신러닝(Machine)과 딥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생각 더하기 생각'을 하며,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세돌과 바둑 대결을 벌였던 A.I. '알파고'가 초기 발전 속도에 비해, 개발 후기에는 많은 대전을 빠르게 스스로와 진행하며 데이터를 쌓아간 것이 예다. 반면 '스스로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직접' 수집할 능력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가령 아직까지의 인공지능들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스스로 제대로 수집하지 못한다. 그나마 시각, 청각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Artificial' 수준이냐고 하면 갸우뚱하게 된다.
시각을 예로 들어 보자. 현재 시점의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수백 배 빠르게 고양이 사진과 강아지 사진을 스스로의 데이터에 입력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사진을 보고 고양이와 강아지를 완벽하게 구분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직관적으로 어떤 게 고양이고 어떤 게 강아지인지 분간한다. 인공지능은 아직도 '완벽'에 미치지 못한다.
아직 인공지능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완벽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에게 '쉬운 것은 어렵고, 어려운 것은 쉽'다. '모라벡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청각 데이터는 어떨까. 소리를 들은 인공지능은 이를 데이터화하여 저장한다. 단어와 음절을 구분하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 문장이 어떤 내용인지 100% 정확하게 판단하지는 못한다. 아직 콜센터에 A.I.를 도입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장되어 있는 청각 데이터에서 필요한 단어들과 문장들을 찾아 대응하긴 하지만, 질문을 정확히,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영화 속 캐릭터지만, R2-D2는 시각 부문에서 완벽하다. 청각은 인간보다 탁월해 보인다. 물론 관객인 우리들이 R2-D2와 대화를 하지는 못한다.(삑-삐빅! 삑삐비비비 정도의 비프음이다.) 하지만 영화상에서 루크를 비롯한 인물들이 R2-D2의 '삐비빅'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게다가 R2-D2는 인간 이외의 여러 종족들의 언어도 이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청각, 촉각, 미각에 대해서는 따로 드러난 것이 없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 중. 루크를 비롯한 <스타워즈> 등장인물은 대부분 로봇이 아니더라도 R2-D2의 말을 알아듣는다.
종합적으로 보면 R2-D2는 인공지능의 기준에서 필요한 기능(수리 등) 이상으로 상당한 능력을 갖췄다. 게다가 6편 동안의(중간에 기억이 삭제되긴 하지만) 대서사를 가장 중심부에서 겪으면서, 필요한 상황마다 스스로 판단하기까지 하는 준인간적 역량을 보여준다.(귀여움은 덤이다!) 다만 애당초 드로이드로 설계가 되었고 모양도 원통형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소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문턱에 바퀴가 걸린다던지,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한다던지 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하드웨어적 한계일 뿐 그런 부분이 R2-D2의 인공지능 수준을 평가 절하하진 못한다.
◇ 인간과 R2-D2의 소통은?
아마 <스타워즈> 팬들이라면 6편 초장부에 레아를 구하러 간 루크를 떠올릴 것이다. 묶여있는 루크는 R2-D2와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무려 눈빛이라니! 루크의 신호에 따라 R2-D2는 광선검을 던져주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 중. 루크의 신호에 맞춰서 R2-D2는 광선검을 던져준다.
또한 R2-D2는 단순히 지시를 입력받고 임무만을 완수하는 수준이 아니다. 아나킨이나 루크가 R2-D2를 홀로 두고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는 같이 가고 싶다며 삐지는 시그널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요다가 X-윙 파이터를 포스로 들어 올릴 땐 놀라는 모션도 보여주며, 3편 후반부에 기억을 삭제한다는 결정에 대해서 C-3PO와 함께 절망한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이라고 할 순 없지만, 묘사된 모습들은 분명 감정과 유사하다. 대화나 행동을 주고받는 정도는 가뿐하다. 하드웨어 제약이 있는 형태의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감정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초고도 수준의 인공지능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양덕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만큼 R2-D2의 활약도 오래도록 함께 기억될 것이다.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스타워즈가 이야기를 이어 오면서, 이미 관객들은 R2-D2를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많은 캐릭터들처럼 '감정이 있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이 인공지능에 대한 글임에도 굳이 그런 생각을 퇴색시키고 싶지 않다. 나에게도 R2-D2는 이미 스타워즈 세계에서 '임무가 있는 로봇'이 아니다. 그냥 아주 똑똑하고 현명한 작은 친구 정도의 느낌이다. 언젠가는 그런 로봇이 진짜로 등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