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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Jun 07. 2020

<어벤져스> 시리즈의 자비스

A.I. PROJECT


영화 <아이언맨>부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이르기까지 토니 스타크의 두뇌 역할을 담당했던 인공지능이 바로 자비스다. 형체는 없지만 아이언맨 슈트에 장착된 상태로 주인공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때론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지금의 10~20대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인공지능의 대표주자인 자비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현실에서도 구현이 가능할지 짐작해보자.



 우리는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해 인공지능의 미래상을 그리고 상상하고 희망한다. 이렇게 보이는 인공지능의 모습은 대중매체의 다양성만큼 다양하다. 인간에게 종속적인 인공지능이 있기도 하고, 인간을 해하는 인공지능도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쓰이는 글이다 보니 후자의 상상을 그다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인공지능 연구가들은 인공지능의 '터미네이터'화를 배제하진 않고 있다.


 그렇다면 2020년 기준으로 가장 인간이 발전상으로 삼고 있으며, 인공지능의 발전단계와 흡사한 묘사를 보여주는 문화 속 인공지능은 무엇일까? 단연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자비스(J.A.R.V.I.S.)를 꼽을 수 있다.



 ◇ 자비스는 어느 정도 수준의 AI인가?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본인의 조수로 만들어낸 인공지능 자비스는 인간 종속적인 수준에서 출발한다. <아이언맨> 1편에서 토니 스타크는 첫 슈트인 'Mk 1'을 자비스와 함께 개발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당시 자비스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자비스는 철저히 토니 스타크의 명령에 따르며 스타크가 필요한 정보를 가장 이해하기 편한 형태로 제공한다. 현재 인공지능들이 갖는 모습과 같다. 수준이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스레 현재 인공지능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스타워즈>의 R2-D2편에서 아주 잠깐 '모라벡의 역설'을 이야기했다. '인공지능은 어려운 문제를 잘 풀고, 쉬운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는 것.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걸 암기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데이터들로도 단순한 문제를 쉽게 풀지 못하는 게 인공지능이다. 반면 인간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정보량을 가지고 있어도 쉬운 문제는 쉽게 푼다. '직관' 때문이다.


모라벡의 역설 (출처 : www.linkedin.com/pulse/moravecs-paradox-unconscious-vs-conscious-ashwin-pingali)


 인간은 사과와 귤을 구분할 때, 이를 위한 알고리즘을 굳이 설계한 필요가 없다. 경험과 직관에 의해 뭐가 사과고 뭐가 귤인지를 단박에 구분한다. 우리는 아직 인간의 이런 생각 구조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이 절차에 수많은 수식을 도입한다. 색깔이 무슨 색인지, 크기가 어떤지, 질감은 어떤지 등등. 

 인간 혹은 기계의 행동은 생각에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생각과 행동 사이에는 '판단'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다. 다만 인간에게는 생각-행동-판단의 절차가 너무 당연한 행위라서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여겨질 뿐이다.


 <아이언맨> 1편으로 돌아와 보자. 자비스는 절대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스타크의 지시에 따라 본인이 가진 방대한 정보량을 가시화해줄 뿐이다. 물론 판단을 가끔 내리기도 한다. 어쩌다 내린 그 판단은 잘못된 판단이어서 스타크에게 물을 뿌리기까지 한다. 스타크의 얼빠진 표정은 덤.



◇ 딥 러닝(Deep Learning)과 자비스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 글의 서두에 자비스가 바로 인공지능의 발전상과 가장 흡사할 것이라는 언급을 했다. 이는 단지 <아이언맨>의 자비스 수준이 현 수준과 비슷해서가 아니다. 단언하지만 현 수준의 인공지능은 <아이언맨> 1편의 자비스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 

딥 러닝(Deep Learning)을 개괄적으로 표현한 그림. Layer가 많아질수록 A.I.의 지능은 높아진다.

 내가 주목한 것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발전을 거듭하는 자비스의 능력이다. 게다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신체를 얻기까지 한다.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자비스는 계속 발전하는데, '퀀텀 점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자비스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만큼씩 발전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만약 <어벤져스> 2편을 보고 <아이언맨> 1편을 보면 '자비스가 멍청했네.'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리즈 순서대로 보면 자비스는 쭉 유능한 조력자로 느껴진다. 이것이 인공지능에 대한 철저한 고찰로 만들어진 그림인지, 혹은 '자비스맨'이 아니라 '아이언맨'이다 보니 자비스의 뛰어남에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던 탓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런 점진적인 발전상이 실제 인공지능이 발전해 나갈 속도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아니, 그럴 것처럼 여겨진다. 딥 러닝 때문이다.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아이언맨 슈트들은 스타크 없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딥 러닝이라는 단어는 알파고의 등장 이후, 대중적으로도 자주 통용되고 있다. A.I.가 스스로 학습을 거듭함을 의미한다. 영화에서의 자비스는 스타크가 따로 학습 데이터를 넣어주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언맨에 탑재된 채 스타크의 시계나 안경 등에서 여러 상황을 함께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스타크와 역할이 분담된다. 단지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도 존재하지만 더 강한 적들, 더 다양한 상황들을 직면하면서 순간적인 판단을 자비스가 해낸다. 

 이렇게 누적된 경험은 자비스의 새로운 학습 데이터가 된다. 자비스는 이내 <아이언맨3>에 이르러서는 수십대의 아이언맨 군단을 스타크의 명령 없이 스스로 지휘하기도 한다. 

 <아이언맨1>에서는 지시에 따라 정보만을 주고, 종종 삐끗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자비스가 <아이언맨3>과 <어벤져스> 시리즈에 이르러서는 "음.. OO 할 것 같은데요?"라는 식의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 자비스의 최종 발전 단계를 예상해 본다면


<아이언맨3>에서는 아예 수십대의 슈트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아이언맨3>에서 자비스는 플랫폼화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클라우드상에 '자비스'라는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해당 클라우드를 수십대의 아이언맨 슈트들이 공유하여 행동하게 되는 그런 모양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비스는 형태가 여전히 없다. 그리고 여전히 토니 스타크의 의중을 최대한 존중하여 판단을 내린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가면 형태가 생긴 인공지능의 결정체를 보게 된다. 자비스는 '비전'이라는 형체로 다시 태어난다. 여기서 비전은 "나는 울트론이 아닙니다. 자비스도 아닙니다. 나는 나입니다."라는 대사를 던진다. 영화상에서는 자비스와 비전이 엄연히 다른 존재임을 확고히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멘트였다. 특정 인공지능이 몸을 갖게 되면 그 인공지능은 기존 인공지능과 같은 인공지능일까.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자비스는 신체를 얻고, '비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다. 


 몸을 갖게 된 인공지능은 행동의 범위가 극대화된다. 하지만 2020년 현재, '몸'을 가진 인공지능은 극소수일뿐더러, 어떤 실제의 인공지능도 자비스의 <아이언맨 1> 시절조차도 이르지 못한 상태다. 



◇ 인공지능의 '행동'이란?


 이세돌 단은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패배했다. 1승 4패가 전적이다. 하지만 과연 알파고는 진정 바둑을 둔 게 맞을까? 바둑을 둔다는 행위가 대체 무엇일까? 심오한 질문이다. 인간은 바둑의 즐거움을 안다. 바둑의 본질을 느끼면서 매 수를 두는 것이 인간의 바둑이다. 과연 알파고는 어떤가? 알파고가 바둑의 재미를 알까? 알파고는 단지 '규칙'만을 안다.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본인이 승리할 수 있는 최적의 알고리즘을 계산하는 기계일 뿐이다. 알파고에게는 바둑에 대한 어떤 감정도 없다.


알파고의 '바둑을 둘 수 없는' 속성 때문에 이세돌 九단의 맞은편에서 '아자 황' 박사가 대신 돌을 두고 있다.


 결정적으로 알파고는 '바둑을 두지 못한다'. 알파고와의 대국 상황을 다시 머릿속으로 돌려봐야 한다. 이세돌 단이 손가락으로 돌을 집어서 바둑판 위에 수를 놓는다. 하지만 알파고는 바둑돌을 집지도, 바둑판 위에 돌을 놓지도 않았다. 알파고는 수를 생각만 했다. 판단까지만 했다. 행동은? 이세돌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자 황 박사가 돌을 집는 것도, 바둑판 위에 두는 것도 대신해주었다. 알파고는 단 한 수도 자신의 손가락으로 바둑돌을 만져보지 않은 채,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몸이 없는 AI의 판단이 과연 어느 정도로 의미가 있을까? 아자 황 박사가 악의를 갖고 알파고의 수가 아닌 다른 수를 바둑판 위에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바둑의 규칙은 바둑판 위에서 일어난다. 알파고의 두뇌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바둑판 위에 두어지지 않는 수는 '판단'까지 일 뿐, 어떤 결과도 낳지 않는다. 


 영화에서 비전은 정신적으로 어떤 어벤져스보다 완성된 인격을 보여준다. 비전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격'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결국 '완성된 인격'이란 인간이 가질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듯싶다. 마찬가지로 알파고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바둑의 본질을 꿰뚫지는 못하지만 '규칙에 따라 승리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목표를 따라간다. 알파고는 바둑을 둘 수 있지만, 바둑을 둘 수 없는 셈이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자비스가 비전으로 다시 태어난 후, 그는 아예 하나의 주체로 살아간다. 더 이상 스타크의 조수로 행동하지 않는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오로지 비전(구 자비스)만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중재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육체를 갖고 자비스와 전혀 별개의 인격으로 탄생한 비전은 이후의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된다.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보다 성숙한 정신으로 여러 히어로들의 귀감이 된다. 자비스의 자리는 '프라이데이'라는 인공지능이 대체하여 스타크의 조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스스로 발전하면서 스타크의 성격까지 경험으로 누적시킨 자비스는 딥 러닝의 이상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다. 형태는 조금 다를지라도 향후 만들어질 인공지능은 인간의 성격과 습관까지, 스스로의 경험으로 누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발전해 나갈 것이다. '기계'와 '인공지능'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또한 자의는 아니었지만 육체를 갖게 되면서 '스타크의 조수'를 넘어 '한 명의 어벤져스'로 활약하게 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육체가 유무가 인공지능에게는 퀀텀 점프가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을 하고 인간을 닮아가며 육체까지 갖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 공학뿐 아니라 철학, 인문학 분야까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함은 자명하다. 비록 그들이 '인'문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人)'의 정의가 다시 내려져야 할 시기가 언젠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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