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PROJECT
애니메이션 <영광의 레이서>에는 다양한 주행 머신들이 등장한다. 'F-1' 같은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하는 만화다. 유니콘은 이 만화에서 주인공이 타는 머신 이름이다. 만화에 표현되는 주행 머신들의 수준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지만, 일부 기술들은 어느 정도 상용화돼서 도로의 많은 자동차에 이미 적용되어 있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언젠가 유니콘 같은 차량을 도로에서 직접 운전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장난감은 유행에 민감하다. 그러면서도 돌고 돈다. 내가 자신 있던 분야는 미니카였다. 부품이 고장 나거나 개조가 필요하면 친구들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미니카가 들어있는 공구박스는 나의 주요 장비함이었는데, 각종 타이어나 브라킷, 모터를 개조할 수 있는 자잘한 부품들까지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어린이들의 미니카는 그저 앞으로만 달릴 뿐이지만, 그 미니카들이 등장했던 만화영화 속 미니카들은 스스로 움직였다. 방향을 바꾸거나 벽을 타는 것도 자유자재였다. 아이들은 모형 미니카를 갖고 놀면서, 어제 저녁 만화영화의 장면을 상상하며 꿈을 키웠다.
오늘의 주제인 <영광의 레이서>는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신세기 사이버포뮬러>가 원작이다. 나는 애니메이션에 무지하기 때문에 '사이버포뮬러'와 '영광의 레이서'의 차이에 대해 설명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는 <영광의 레이서>에 한정해서 인공지능을 풀어보려 한다.
<영광의 레이서>에 등장하는 머신들이 인공지능이라는 점에 대해선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영광의 레이서>에 등장하는 인공지능은 다른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일반적인 인공지능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사람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인공지능의 역할은 사람과 철저히 분리된다는 점이다. 다른 인간 형상을 띄고 있는 인공지능이나, 로봇 형태의 인공지능처럼 팔다리가 달린 건 아니지만, 사람보다 월등히 빠른 바퀴를 가지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아직 상용화된 기술이 아니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서 미국의 고속도로를 필두로 시험 주행 및 준상용 수준의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학계나 산업계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단계별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광의 레이서>에 나오는 머신들은 위 표에서 Level 4와 Level 5 정도 수준이다. 사실 Level 5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만 만화적 효과를 위해, 머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원하는 의도대로 관철시키는 장면을 보여주곤 한다. 그래서 Level 4에 해당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함을 감안해야 한다.
<영광의 레이서>는 아직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어떤 가시적 산출물도 없을 때, 상상만으로 '자동차'에 '인공지능'이라는 가상의 기술을 덧대어 묘사한 작품이다. 물론 등장하는 기계들이 말도 안 되는 성능으로 무장되어 있긴 하지만(가령 자동차가 2,000마력에 720kg이고 최고속도는 500km에 육박한다는 점 등) 만화라는 점을 이해해준다면, 이제야 점차 현실화되는 자율주행 기술을 빗대 보면 꽤나 흥미롭고 의미가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수많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들은 이를 갈고 참여했다. 이 표현은 조금 의아할 수 있다. 올림픽은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승부하는 스포츠 대회인데 기업들이 이를 갈고 참여하다니? 하지만 올림픽의 속성을 이해하고 뚜껑을 열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모든 올림픽이 그랬다. 올림픽은 스포츠대회로 포장되어 있지만, 개최국의 국력을 과시하는 목적도 크다. 더불어 기업들의 기술 성과를 대회 인프라를 통해 위시한다. 지구상 대부분의 기업들이 'OO올림픽 메인스폰서'라는 딱지를 달고 싶어 하는 이유다.
현대자동차는 수소자동차를 평창올림픽에 적극 내세웠다. 특히 많은 기술자들은 '평창-서울'을 주행했던 자율주행 수소차 '넥쏘'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시되는 기술에 대해 항상 '행간의 의미'를 잘 읽어야 한다. '평창-서울'의 고속도로를 자율주행으로 다닐 정도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완성됐다는 의미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저렇게 보이는 기술은 '아직 상용화는 안 됐다'로 이해하는 게 마땅하다. 과시용 기술은 항상 현실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율주행 기술이 무시할 정돈가 하면 그렇지도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의 자율주행 기술들이 비싸지 않은 옵션으로 상용차에 탑재되고 있다.
자율주행기능이 가장 대중화된 완성차 업체는 테슬라로 보인다. 테슬라의 '모델 3' 등은 유튜브에서도 심심찮게 아예 손을 떼고 전방을 주시하는 경험이 공유되어 있다. 물론 아직 완전히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에만 의존하긴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테슬라가 공격적인 사업 전략으로 오토파일럿을 제공한다는 점을 미루어봤을 때, 그들의 야망은 뚜렷해 보인다. 자율주행은 데이터가 누적될수록 정교해진다. 차를 파는 것만큼이나 데이터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 빠르게 자율주행 자동차를 지면에 굴리기 시작한 덕에, 현재 완성차 중 테슬라만큼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어디도 없다.
테슬라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서두에 이야기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단계별 구분에서 Level 1, 2 정도에 해당하는 완성차들은 매우 많다. 이제는 기본 옵션 정도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우리가 뻔하고 흔하게 생각하는 '크루즈 컨트롤'이나 '차선이탈 경보', '후방 주차 보조' 등은 결코 그냥 나온 기술이 아니다. 이들도 분명 자율주행에 기여하는 기반기술에 해당된다.
인공지능과 관련된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문제들은 공통점이 있다. '결국은 인간이 문제'라는 것. [완전한 자율주행]에 대한 질문에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완전한 자율주행은 99% 가능하다"라고 얘기한다. "왜 100%가 아니냐"라고 질문하면 다음 답을 듣게 된다. "도로에서 인간이 운전하는 차가 단 한 대도 없어야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매우 흥미로운 대답이면서도 인간의 운전에 대해 본질적으로 접근한 답이다.
인공지능은 여러 데이터에 근거하여 예측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인공지능끼리 운전 관계로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누가 몇 차선으로 가고, 누가 먼저 갈지를 정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물론 합리적인 속성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운전하는 상황도 적지 않다. 개판 운전자도 많다. 기계가 이들의 습성을 예측할 수 있을까? 비합리적이고, 데이터의 예외에 해당하는 운전에 대해서 인공지능이 대응할 수 있을까? 도로의 자동차에 인간 운전자가 조금이라도 끼어있다면, 인공지능에게는 모든 상황이 예외가 된다.
<영광의 레이서>에는 이런 점이 상징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때때로 사이버 머신들은 운전자에게 '그렇게 운전하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인간'인 운전자들은 자주 합리적인 선을 어기고 한계를 넘으며 액셀을 밟는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제언대로라면 이기지 못했을 승부에서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는 장면을 선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완전한 자율주행을 논의하려면 '인공지능이 얼마나 똑똑한가'를 말하기 전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코 답이 내려지지 않겠지만,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예외는 줄어든다. 예외를 줄이면 줄일수록 우리는 점차 '완벽에 가까운' 자율주행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현실과 만화가 다른 건 당연지사지만, 여기서는 현실의 자율주행과 <영광의 레이서>에 등장한 자율주행이 인공지능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논하고자 한다.
발전 단계의 차이는 극명하지만 어쨌든 현실 속 자율주행 자동차는 점점 <영광의 레이서>처럼 인간을 훌륭하게 보조할 수 있도록 발전해가고 있다. 더딘 부분은 바로 '소통'이다.
<영광의 레이서>에서 머신들은 운전자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말로 소통함은 물론이고, 현재 운전자의 상태를 오히려 머신이 판단하기까지도 한다. 지금 자율주행 기능을 어느 정도 탑재하고 있는 자동차들도 이 부분은 미흡하다. 사실 기계와 인간의 소통 기술은 꼭 자율주행 분야가 아니라도 더딘 것이 사실이다. 언어는 엄청나게 종류가 많을뿐더러, 문법, 억양, 발음 등등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다.
최근 출시된 벤츠의 차량들은 'MBUX'라는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다. 가령 "안녕 벤츠"라고 호출한 후, "에어컨 틀어줘" 등의 지시를 내리면 "네, 에어컨을 작동합니다."등으로 대답한 후 동작을 수행한다. 한동안 유행했던 '인공지능 스피커'의 역할을 차량에 적용하고, 좀 더 광범위하게 수행하도록 만들었다.
고성능이라고 보긴 어렵다. 아니, '인공지능'으로 인정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들의 행동은 극소수 동작에만 한정되고, 그마저도 종종 인식을 못한다. 인공지능의 대답은 즉흥적이지 못하고, 입력되어 있는 메시지 안에서만 녹음된 음성을 재생시켜 줄 뿐이다.
<영광의 레이서>에서 보여주는 머신의 차량 통제나 운전자와의 소통은, 냉정하게 2020년의 수준과 비교하면 그저 몽상에 가깝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아직 일부분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언어에 대해 여전히 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있고, 언어를 기계가 소화하도록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를 누적하고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언어를 말하는 동작뿐 아니라 듣는 동작도 수행해야 한다. 게다가 언어에 담긴 속 뜻까지 파악하도록 하려면 단지 '멀었다'로 평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가령 "에어컨 틀어줘"는 이해하더라도 "지금 차 안이 좀 덥네?"라는 말을 인공지능이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여전히 인간의 기대에 못 미친다. 하지만 그.나.마. 자율주행 기술은 타 분야에 비해 빠르다. 상용화되는 속도도 고무적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가공된 유의미한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른 이유는 데이터의 양이 엄청나게 빠르게 쌓여간다는 점에 기인한다.
게다가 자동차 산업은 인공지능이 결합할 수 있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표준화가 잘 되어 있고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빠르게 앞선 기술을 점유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율주행 기술은 타 분야의 인공지능보다 비약적으로 빠르게 다듬어질 것이다.
한편 이렇게 발전한 자율주행 기술은 타 분야로도 확산이 가능하다. 자동차 이외의 운송수단은 물론이고, 자율주행의 각 개별 기술들 또한 전혀 별개의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가령 사람을 인식하는 기술을 리테일이나 팩토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게 되는 여타 인공지능 이야기에 비해 자율주행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아 보인다. 물론 인간의 일자리 상실이라는 걱정도 수반하지만, 이는 꼭 인공지능뿐만이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의 발전에 따라오는 문제다. 실수투성이 인간을 보완할 완성된 자율주행 기술이 가져올 산업구조의 변화는, 오히려 인간이 특정 분야에는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