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Sep 26. 2020

『오리진』의 윈스턴

A.I. PROJECT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문제작인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소설 『오리진』에는 '윈스턴'이라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 댄 브라운의 다른 작품들에 이어서 여전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버트 랭던'은 이 작품에서 또다시 기호와 암호를 해독하여 세계를 구해야 한다. 고작 이어셋 형태의 인공지능이지만, 윈스턴은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능숙하게 인간과 소통한다.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안경이나 이어폰, 혹은 시계의 모양을 가진 인공지능과 수시로 소통한다. 댄 브라운의 소설 『오리진』에서 등장하는 인공지능의 모습과 유사하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로 세계구급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로스트 심벌』, 『인페르노』 등의 작품을 연달아 히트시켰고, 다빈치 코드 이전에 나온 작품인 『천사와 악마』 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언급한 작품들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로버트 랭던은 작품들이 흥행할수록 더한 생고생을 겪는다. 그는 끊임없이 여러 기호들을 해석하며 세계를 구한다.

 소설 『오리진』은 책의 표지부터 좀 진지한 사람들이 항상 고민하며 살아가는 근원적인 질문을 제시한다. "Where do we come from?", "Where are we going?"이 그것이다. 등장하는 윈스턴은 주인공 로버트 랭던이 귀에 꽂힌 채로 세계를 구하게 돕는 인공지능이다.



◇ 기계와 결합된 인간의 형태


 윈스턴은 작품 중 이어폰 모양으로 묘사된다. 에드먼드 커시라는 천재 사업가 겸 과학자가 만들어 낸 윈스턴은 '윈스턴 처칠'에서 따온 이름이다. 작품 속 커시는 테슬라 창업주인 '일론 머스크'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아마 모델로 삼고 쓰인 듯하다. 이어폰으로 착용된 윈스턴은 로버트 랭던과 함께 움직이면서 거의 삼라만상의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윈스턴은 랭던과 목소리로 소통한다. 윈스턴은 박물관의 관람 및 커시의 프레젠테이션 지원을 위해 마련된 인공지능이다. 윈스턴의 설명에 따르면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 모두의 귀에서 사용자에 따라 다른 목소리와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스트레스지수를 측정하고 있는 삼성의 스마트워치(좌), 심박수를 측정하고 있는 애플의 스마트워치(우)


 현실로 돌아와 보자. 우리 몸에 착용된 기계들 중,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스마트폰이 대표적이지만 '착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음악을 들려주고 전화를 받을 수 있게 해 준다. 앞으로 언젠가는 윈스턴처럼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대중화된 착용 기계는 아무래도 스마트워치 같다. 사실 스마트워치는 처음 등장했을 때, 온갖 잡다한 기능까지 제공하기 위해 심미적 요소를 상당히 포기하기도 했었다. 이른바 '전자발찌'라는 오명을 가졌던 초기 모델들이 그렇다. 2020년 현재의 스마트워치는 조금 정제된 형상이다. 오히려 '시계'라는 본연의 모습에 초점을 맞춰간다. 최대한 예쁘고,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기능들은 제외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헬스케어는 스마트워치에 최적화된 기능으로 보인다. 심박수나 수면시간도 꽤 정확하게 측정해주고 있다. 

스마트 글래스는 '눈'에 착용한다는 특징이 큰 장점이다.

 상용화는 되지 않았지만 안경류도 있다. 구글글래스가 대표적이다. 아직 '쓸만하다'는 수준은 아니지만 AR, VR 기술과 결합하여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스마트워치보다 압도적이다. 사람의 신체 구조를 고려했을 때, 안경류는 시계류의 기계보다 인공지능이 탑재되기 훨씬 유용하다. 시계는 손목에 착용되지만 안경은 눈에 착용되기 때문이다. 좀 선문답 같은가?

 잘 생각해보자. 손은 '동작'하는 신체이다. 하지만 눈은 정보를 '습득'하는 신체다. 눈에 쓰여지는 안경은 손목에 착용하는 시계보다 습득할 수 있는 정보가 더 많다. 게다가 눈은 귀와도 위치가 가깝다. 안경이 이어폰과 결합된 형태로 제공된다면 시각 정보뿐 아니라 소리 정보도 함께 제공이 가능해진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의 스마트 워치(?). 스마트 워치라고는 했지만, 변신과 공격까지 가능하다. 


 사람과 기계가 결합한다는 가정은 마치 '인조인간'을 만들어야 할 것처럼 무섭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손목에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고, 스마트폰을 항상 휴대한다. 분명 스스로의 신체는 아니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오리진에서는 이런 점을 토대로 결말에서 '테크늄(technium)'이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 튜링 테스트(Turing Test)


 2권이나 되는 두꺼운 소설이지만, 윈스턴이 인공지능인지를 알아차리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아니, 사실 윈스턴이 직접 말하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튜링 테스트는 성공적이다. 

튜링 테스트를 개념화한 그림.(출처 : https://prezi.com/njx0rff7vhjx/presentation/)


 튜링 테스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컴퓨터 공학자 앨런 튜링이 고안한 인공지능 실험 방법이다.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컴퓨터와 인간이 대화를 할 때, 인간이 상대가 컴퓨터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 된다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의 발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볼 수 있다.

 요즘에는 각종 기관이나 기업들이 '챗봇'을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콜센터 등에서 했던 업무를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대체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챗봇의 역할은 제한된다. 우리가 챗봇에게 필요한 질문을 남기거나 의사소통을 진행할 때, 분명 어색한 점은 발견된다. 다만 인간들은 '잘 안되면 상담원을 연결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챗봇을 대할 뿐이다. 즉, 우리가 생활 속에서 대면하고 있는 챗봇들은 아직 인간 수준의 기계임을 증명할만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은 셈이다.


 소설 속에서 윈스턴은 귀에 꽂혀있는 이어셋들이 모든 관람객들에게 각각 다른 목소리와 각각 다른 언어, 다른 톤으로 정보를 제공한다고 알려준다. 윈스턴은 한 명(?)이지만 이미 관람객들의 모든 정보를 습득하고 있기 때문에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로버트 랭던을 제외한 다른 관람객들은 특별히 윈스턴이 랭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사실 인공지능이요"라고 선언하지 않은 한, 그저 인간 안내원이 어딘가에서 이어셋으로 정보를 전달해준다고 믿게 된다.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


 그러고 보면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요즘 시대에서나 등장할 법한 아이디어 같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앨런 튜링은 1912년생이며, 튜링 테스트는 1950년에 제안됐다.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 테크늄(Technium)


 현생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슬기 슬기 사람', 즉 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류는 발생했을 때부터 사피엔스 계열의 종은 아니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쭉 진화를 거듭했다. 

 진화라는 건 어느 특정 시점에 순간적으로 뿅 하고 일어나지 않는다. 서서히 진행된다. 인류는 어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혹은 어떤 필요에 의해 어떤 기능은 진화되고, 어떤 기능은 퇴화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가 됐다. 

인류도 생물이기 때문에 변해왔고, 변해갈 예정이다.(그림 출처 : http://plug.hani.co.kr/futures/2275315)


 자연스러운 다음 질문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답은 '그렇다.' 『오리진』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해 '테크늄'이라는 답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미 현생 인류 중 대다수는 테크늄에 속해 있다고 묘사한다. 


 테크늄이라는 단어는 기존에 존재하던 단어다. 하지만 『오리진』에서 언급하는 뜻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기존의 테크늄은 '기술계'전체를 의미하는데, 이 기술계는 기술적 분야를 넘어서 문화, 예술, 사회제도, 법, 철학 등 모든 유형의 지적 산물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는 전분야를 의미한다. 

 하지만 『오리진』에서 테크늄은 인간과 기술이 결합되어 존재하는 상태로 표현했다.

세계적인 IT잡지 '와이어드(Wired)'를 창간한 케빈 켈리(Kevin Kelly)는 '기술의 충격'에서 테크늄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거리로 나가보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손에 들고 생활한다. 2020년 현재 스마트폰 없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의 손목에는 스마트워치가 채워져 있다. 스마트기기들이 더 발달한다면, 전화나 시계 이상으로 인간의 신체와 더 밀접하고 편안하게 결합된 기계들이 나올 것이다. 오리진에서는 이런 현재 인류의 모습을 '자연스러운 진화 단계'로 표현했다. 신선한 접근이다. 


『오리진』에서 에드먼드 커시에 집에 걸려있다고 묘사된 고갱의 그림. 제목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만약 이렇게 기계와 결합한 인간의 모습을 '신생 인류'로 표현할 수 있다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종말은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물론 그 종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종말'의 의미처럼 '파멸'과 동일시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진보'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듯하다. 물론 이들을 진짜 '신생 인류'로 인정할지는 생물학자 및 과학자들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소설의 결말을 보면 인공지능 비서인 윈스턴은 이야기 전체를 통틀어 전지전능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모습임을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모른척하기도, 철저하게 숨기기도 한다. 하물며 인간도 아닌 기계이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에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테크늄이 신생 인류가 되었을 때, 인간은 기계로 하여금 번영을 누릴 편한 존재가 될까, 아니면 인간의 몸에 잠식한 테크놀로지들에 의존만 하게 되는 수동적 존재가 될까. 당장 운전하면서조차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정보 이외의 것들, 이를테면 창밖의 풍경이나 나만 아는 골목길, 옛날부터 있었던 가게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갖지 않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인간다움'이 뭔지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