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PROJECT SE
인공지능에 대해 얘기할 때면 꼭 빠지지 않는 인물이 두 명 있다. 존 폰 노이만과 앨런 튜링이다. 두 사람 모두 인공지능의 기초를 쌓은 인물이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천재에 전쟁영웅이었지만 안타깝게 생애를 마무리한 앨런 튜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난 '오리진의 윈스턴'편에서 '튜링 테스트'를 소개한 바 있기에 멀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거장으로 꼽았던 존 폰 노이만과 앨런 튜링은 괜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존 폰 노이만이 1903년생이고 앨런 튜링이 1912년생인 것을 기억하자. 그들은 컴퓨터가 없는 건 둘째 치고, 오히려 거리에 마차가 돌아다니던 시절의 인물들인 셈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의 주춧돌을 쌓은 것을 생각하면 여러 번 놀라도 결코 아깝지 않다. 인공지능이 100년 후나 되어서 본격적으로 산업계에 등장하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튜링 테스트를 고안한 앨런 튜링은 빛나는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사실 그의 말년은 상당히 안타깝다.
그는 영재였고 천재였다.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심화 문제를 풀었다는 기록은 이미 유명하다. 자연스레 수학자의 길로 들어섰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 수학적 이론을 토대로 계산 기계들을 제시했는데, 이런 내용들은 컴퓨터라는 당시엔 없던 개념의 토대가 된다.
프리스턴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존 폰 노이만과 앨런 튜링은 이때 만났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 노이만은 튜링에게 미국에 남아 연구하기를 권유했다. 노이만은 튜링의 능력을 매우 높게 샀고, 그의 연구가 지속되길 바랐다. 하지만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였는데, 당시 튜링의 고국인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노이만이 미래를 미리 내다본 것일까.
하지만 비극 영화의 복선처럼 튜링은 애국심에 귀국을 택한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당시 나치 독일은 에니그마라는 기계로 암호를 전송했다. 영국의 암호해독 기관에 합류한 튜링은 천재성을 발휘하여 나치 독일의 암호 해독을 시작한다. 튜링이 이때 개발한 '튜링 봄브'는 바로 이 에니그마를 깨트리는, 즉 해독하는 기계다. 나중에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컴퓨터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튜링의 암호 해독은 종전을 2년 앞당기고, 약 1400만 명을 구했다고 평가받는다.
종전 후 그는 여전히 종횡무진 활약한다. 특히 초기 디지털 컴퓨터 개발 등을 비롯해 각종 전산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1950년에 발표한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는 지난 글에서 언급한 '튜링 테스트'를 처음으로 제안한 논문이다. 천재적 수학자이지만 전산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컴퓨터공학의 기초를 다졌으며 생물학과 물리학, 화학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연구와 개발 모두에 능통했으면서 참전 공로까지 지대한, 그야말로 올라운드 플레이어, 사기 캐릭터 되시겠다.
하지만 튜링은 1954년, 만 41세에 자살로 세상을 떠난다. 튜링의 자살에는 여러 음모론들이 제시되기도 한다.
자살 전 그의 몇 년은 꽤 음울했다. 세계 최고의 석학이자 천재로 추앙받았던 인물이지만, 그의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이 드러나자 국가와 사회의 태도가 반전된 것이다. 동성애는 범죄였기 때문에 튜링은 감옥에 가느냐, (화학적) 거세를 당하느냐라는 두 선택지 중에 하나를 강요받았다. 결국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후자를 택한 것이 튜링의 말년이었다.
튜링의 학문적 업적과 전쟁 공로, 국가에 대한 기여는 '동성애자'라는 타이틀을 이겨내지 못했다.
시대를 건너서야 영웅은 빛이 나는가. 1900년대 초중반에는 학문과 전혀 무관한 동성애라는 가치 때문에 무시당하던 그의 공로가 2000년대 들어서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컴퓨터공학과 인공지능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를 학자들부터 대중들에 이르기까지 몸서리쳐질 정도로 느끼게 된 것이다.
사실 앨런 튜링이 남긴 업적은 학문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까지는 아니라 해도, 정약용, 이황 정도의 인물에 비하기에는 전혀 모자람이 없다.
최근 들어서는 영국에서도 앨런 튜링의 성과에 대한 복권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종 문서나 매체에서도 빛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비운은 안타깝게도 한 세기를 넘겨서야 해소되고 있다.
어벤져스의 '닥터 스트레인지'로 잘 알려진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연으로 등장한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오늘 수차례 언급한 '튜링 테스트'의 다른 명칭이기도 하다. 앨런 튜링이 에니그마를 해결하는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영화에 등장한 앨런 튜링의 생애와 모습은 실제 모습과는 좀 다른 편이다. 그래서 고증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한 인간으로서 앨런 튜링이 마주했던 어려움과 고뇌에 대한 부분을 잘 지적했다고 평가받는다.
진정한 천재, 진정한 영웅은 그 시대가 담기엔 너무 크고 넓고 빠른 것일까. 시대에서 외면받았으나, 지나고 나서야 추앙받는 인물의 예는 꽤 많다. 앨런 튜링이 쌓아둔 인공지능과 컴퓨터공학적 업적만큼, 그의 생애 자체가 주는 울림과 아쉬움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