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기억
세상이 좋아져서. 아니, 혹은 나빠져서. 학창 시절의 기록을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친구들의 증언에만 남는 정성적인 지표가 아니다.
출결, 성적, 수상, 선생님의 의견 등을 볼 수 있다.
나는 어떤 글을 쓰기 위해 정확한 지표가 필요해서, 나의 학창 시절 정보를 확인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1년, 1년의 생활이 몇 개의 숫자, 몇 개의 문자로 압축되어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수상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는 상이 남발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음악, 그림, 글쓰기, 독후감, 과학상자, 성적, 토론, 웅변 등등의 상이 종류 없이 얽혀있다.
그런데 스크롤이 내려갈수록 상들은 줄어든다. 상은 줄어들지만 종류는 오히려 한두 가지로 짙어지더라.
하나는 과학상자. 나는 그래도 매년 그 학년에서는 과학상자로 지역구 10명 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교내에서는 항상 상을 받았다. 금상이냐 은상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중학교땐 좀 더 본격적이 됐다. 상위 교육청대회와 시대회를 매년 나갔다. 성적이 아주 탁월하지 않았음에도, 이 수상 덕에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지원 자격과 특별 가산점이 붙을 정도였다. 물론 자사고는 떨어졌지만.
얼마 전 과학상자의 판매가 중단된다는 기사를 헝가리에서 읽었다. 인간은 살면서 자신의 과거를 하나하나 닫아갈 수밖에 없다. 내 과거 중 제법 인정받았던 한 부분이 닫혔다. 과학상자로 상위 대회를 나가면 새 과학상자를 하나씩 준다. 그래서 나는 매년 하나에서 두 개 정도의 과학상자를 받아왔다. 서른여섯 살 서인석의 집에는 여전히 멀끔한 보관상태의 과학상자가 존재한다.
다른 하나는 글과 관련된 상들이었다. 목록을 확인하면서 느꼈다. 학교들은 정말 자주 독후감을 내라고 했구나라는 사실을. 독후감은 매년 상을 받았고, 창작 혹은 글쓰기 상도 잦았다.
고등학교 때는 과학상자대회가 없다. 그래서 이 시절의 상은 오로지 성적 우수상과 글짓기 상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나는 머리가 제법 큰 때에도 글을 계속 썼나 보다. 입시로 바쁠 때도 글을 성실히 썼나 보다.
큰상과 작은 상이 번갈아 존재했다. 큰상은 학교 밖에서 받은 상들, 작은 상은 학교 내에서 받은 상들이다.
이걸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상들은 내가 기억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