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의 창가 자리
병의 특성상 이번 글은 조금 지저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넘기셔도 좋다. 배설에 대한 이야기이다. 표현을 완화하기 위해 '산출물'이라는 단어로 치환한다.
인간의 몸은 위대한만큼 정직하다.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졌나 싶을 정도로 온갖 기능과 장치들이 유기적으로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 장치들 중 단 하나라도 조금만 고장나도 정직하게 신호를 보낸다.
불행하게도 나는 병을 갖고 있고, 그래서 그 병이 작용하고 있는 장기의 시스템적 역할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래야만 하는 운명을 안고 살아간다.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 그 음식은 입으로 들어간다. 씹어지고 목으로 삼켜진 음식은 이윽고 소화기를 통과한다. 내가 방문하는 의료과가 '소화기내과'이다. 소화기관의 장기들은 다양한 분류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크게 둘로 나누면 '위'와 '장'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장이라고 부른다.
위장의 역할을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요약하면, 음식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뽑아내고 찌꺼기를 배출하는 것.
서두에 설명한 '인체 시스템의 정직함'이 소화기관만큼 명료하게 드러나는 기관도 드물다. 위와 장은 길다. 특히 장은 소장과 대장으로 나눠지고, 그 안에도 위치마다 여러 분류가 존재한다. 그 장치들은 자신들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영양분과 소화해 낼 수 없는 찌꺼기를 정직하게 구분한다. 이 작동은 몸 안에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을 명료하게 인지할 수 있다. 산출물이 매번 몸 밖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배설이다.
정말 직관적이고 간단하지 않은가. 산출물에 문제가 있으면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거나,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고구마나 보리밥을 먹으면 방귀냄새가 독해지고, 상한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하는 것.
나는 항상 산출물을 보는 습관이 있다. 봐야만 한다. 그것은 확실한 데이터이며, 매일마다 반복되는 데이터이기 때문에 이것만큼 내가 내 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드물다.
내 병이 매우 심했을때, 그러니까 다른 글들의 입원 생활에서 겪었던 지옥같은 하루하루들에서, 내 산출물은 실체가 없었고 거의 피였다. 내 대장은 어떤 영양분도 흡수할수 없었고, 장 내벽에 수많은 궤양과 그들이 뿜어내는 피만을 제출했다.
몸이 나아지면서 산출물의 데이터도 서서히 바뀌었다. 나중에 멀쩡한 산출물로 바뀌었을 때, 내 몸의 상태는 거의 나아져 있었고, 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직하다.
내시경에서 보여주는 내 대장의 사진은 더이상 과거처럼 궤양으로 가득하거나 핏덩이로 범벅이 되어있지 않다. 내 대장은 거의 일반인의 대장과 같다. '거의'라는 표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과거 고생했던 흔적과 상처들이 아문 형태로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대장은 완벽히 건강할때만큼은 작동하지 못한다. 내 대장은 과거처럼 모든 음식물과 영양분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까칠하고 예민하다. 그렇게 연약해진 대장이 못 소화해낸 영양분들은 더이상 분해되거나 소화되지 못한채 산출물에서 발견된다.
산출물을 관찰하는 이유이다. 영양분으로 흡수되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산출물에 담긴 음식을 인지할 수 있다. 그 음식은 내 대장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음식이다. 피해야 된다는 강력한 데이터이다.
퇴원후 많은 해가 흘렀다. 거의 십년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더이상 아프지 않고 공포스런 기억들도 희미해졌다. 이렇게 병에 대한 이야기들도 찬찬히 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것이 산출물을 확인하는 습관이다. 그것은 매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변할 수 없고, 꾸준하다. 정직하고 정확한 데이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