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버튼

입원실의 창가 자리

by 서인석

지금 몸을 담고 있는 회사는 군생활을 제외한 내 첫 사회생활 직장이고, 지금도 유효하다. 만 24살이었던 나는 같은 회사에서 만 36세를 보내고 있으니 12년을 이곳에서 성장한 셈이다. 회사에서의 시간은 그 빠른 속도에 비해 체감이 무디다. 함께 오래 일한 동료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비로소 시간의 속도를 느끼게 된다. 가령, 분명 초등학생이었던 옆자리 동료분의 아들이 군대를 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나는 만 26세때 처음 병을 알았고, 앓았다. 입원하고 퇴원했다. 퇴원 후 통원했다. 평균 두달에 한번을 진료를 받았다.


지금의 회사는 시스템으로 의료비를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시스템은 의료비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사, 총무 관련 내용을 관리한다. 시스템에서는 최근 사용헀던 메뉴들부터 순서대로 클릭할 수 있게 화면을 보여준다. 주차등록이나 회의실 신청, 복지 프로그램 신청이나 관계사 놀이공원 신청 같은 메뉴들이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아무리 여러 메뉴를 쓰더라도 항상 '최근 사용한 메뉴' 어디엔가에는 '의료비 신청'이라는 버튼이 보였다. 어쨌든 두 달에 한번, 혹은 그보다 더 짧은 기간에 한번은 병원을 방문하고 의료비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병을 알게된지 10년 가까이 지났고, 그러다가 회사의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1년을 다녀왔다. 이 과정에서 내 병을 관리하는 방향은 조금 바뀌게 된다. 두달에 한번 맞던 주사를, 매일 먹는 약으로 바꾸었다. 해외에 있는 기간동안은 두달에 한번씩 주사를 맞으러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으니 필요한 조치였다. 무엇보다도 주사보다 낮은 단계의 조치도 괜찮다는 의료진의 판단이었고, 안정된 상태를 오랫동안 잘 유지하고 있음을 인정받은 상태가 되었다.


조치가 먹는 약으로 바뀌면서 병원 방문 주기도 달라졌다. 해외에서 복귀한 후 두 번의 병원 방문과 진료가 있었고, 다음 진료 주기가 6개월 후로 잡혔다. 아마 큰 이상이 없는한 이 주기는 6개월로 유지될 모양이다. 1년에 여섯 번 이상 가던 병원을 1년에 두번 가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오늘 회사 시스템에 의료비 신청 내역을 확인할 일이 있어서 접속했다. 그런데 '최근 본 메뉴'에서 더이상 '의료비 신청'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병원 간지가 세달이 넘었고, 그 사이 다른 다양한 메뉴들을 사용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내가 이 병을 알고난 후 처음으로 '최근 본 메뉴'에서 '의료비 신청'이 사라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을 이 병의 흔적이, '최근 본 메뉴'에서 사라져 버린 '의료비 신청' 메뉴처럼 희미해진 상태이길. 그리고 아예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인지되지 않는 시점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완치' 개념 없는 병을 가진 모든 환자들의 바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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