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기

입원실의 창가 자리

by 서인석

진부한 표현이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내 병은 이제 강산이 한번 변할 정도의 기간을 내 몸에서 안착해 있다. 짧지 않은 세월이기 때문에, 나는 내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이 저주하고 싶은 병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아프거나 아팠거나 아플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마치 내가 아파봤기 때문에 잘 안다거나, 내가 더 힘들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결코 하고 싶진 않다. 그런 식의 어조는 낯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응급실에서, 병실에서, 주사실에서, 나는 수많은 중증의 환자들을 지나왔고, 병과 고통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거의 차도가 없는 상태에 고통스러워서 병실 침대를 때리고 찢고 싶었던 시기에(물론 그럴 힘은 전혀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싫어하고 저주했던 것 같다. 종교관도 흔들릴 정도의 시기가 이때였다. 내가 믿는 신은 '전지전능'한데, 그것이 흔들렸다. 그럴 법했다. 수십억명이 사는 지구에서 한명의 배 아픔도 낫게 못해주는 신을 저주하는 인간의 모습을, 단지 '나약한 믿음'이라고 치부할수 있을까.


몸이 조금 나아지고, 퇴원했지만 병원생활의 후유증이 몸에 조금 남아있던 시기에는 주변을 돌아봤다. 내 '주변을 돌아봄'은 따듯한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아픈 사람을 보며 용기를 얻으려 했다. 이기적이고 못된 마음가짐이었다. 내가 아픈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병을 가지고 있는 걸 받아들이기 위한 그릇된 마음가짐이었다.


혹은 긍정적이려고 일부러 노력해보기도 했다. 이건 지금도 어느정도는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젊은 편일때 아팠으므로 이정도로 잘 회복될 수 있었고, 또 젊을 때부터 꾸준히 병을 추적할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가짐.



병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 어떤 마음가짐이 가장 도움되고 옳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게 하나 있다면, 이 병이 여전히 내 몸에 계속 있다는 사실이다. 병이 잘 관리되고 있고, 고통이 없을 뿐 '중증'이라는 단어 안에 이 병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을 뿐이라는 점을 표현해 내고 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갖더라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냥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 장기처럼 내 몸에 계속 있는 것이라고. 내 스스로를 위한 응원이나 치료를 위한 정신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냥 정말로 이 병은 계속 있는 것이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이 글을 누군가 병을 갖고 있는 사람, 아프거나 아팠던 사람이 읽는다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해야 한다면, 나는 할 이야기가 없다. 우리가 가진 병은 우리 각자에게 다른 형태일 것이고, 내가 감히 타인의 병과 아픔에 대해 의견과 응원을 제시하기에 나는 고작 나에게 한정된 병에 대해서만 겪어본 사람일 뿐이다. 단지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응원이 '된'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당신과 나에게 같은 점을 털어놓아 본다면. 이 병과 고통을 저주하거나, 주변을 둘러보면서 위안을 얻거나, 아예 긍정적으로 병을 바라보거나, 어떤 자세를 가지더라도 병은 계속 나와 당신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완치된 병이라도, 그 병과 고통이 컸었다면 계속 관리해야 할 것이기에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자세를 가지더라도 그저 우리는 그 병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받아들인채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방식,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은 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병은 있다.


우리가 겪었던 고통이 더 큰 고통으로 언젠가 다시 다가올 수도 있고, 아예 영영 사라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병은 있다.


받아들이는 것. 내가 환자라는 걸 받아들이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병은 있다.

계속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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