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물값을 받다니

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by 서인석

타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시시각각 문화와 관습의 차이를 내 것인양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음식이야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을 진작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또한 나는 식도락에 그다지 큰 기호와 기대가 없는 편인 사람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와 다른 외식문화를 접하는 것은 신기한 관찰거리였다.


헝가리, 그리고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론 코스 형태의 식사가 기본이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는 간편화 되었기 때문에 코스로 식사하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여러 음식을 주문할 때면 “한 번에 주셔도 괜찮아요.”라고 얘기하는 편이 낫다.

가령 굴라시와 피자를 주문하면서 별다른 요청을 하지 않는다면 굴라시를 먼저 준 후,

손님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중에 피자를 줄 지도 모른다.


여러 명이 함께 식당에 가면, 주문할 때 자주 썼던 표현이

“쎄렛닉 에지쎄뤼엔 엔니, 이쉬 쎄렛닉 멕오쓰떠니."

(Szeretnék egyszerűen enni, és szeretnék megosztani)였다.

“음식을 한번에 주시고요, 다 같이 나눠 먹을 거에요.”라는 의미.


그 외에도 카운터가 아닌, 테이블에서 계산을 하는 관습도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한동안은 식사가 끝난 후 카운터가 아닌 테이블에서 직원을 기다릴 뻔했다.

헝가리의 식사 계산 습관이 몸에 익은 탓이다.




문화의 차이이기 때문에 모든 다름은 이해해야 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적응이 되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문화는 바로 ‘물값’이다.


한국의 식당에서 물값을 따로 받는 곳이 있다면 분명 금방 ‘점포세’ 팻말이 붙을지 모른다.

그러나 헝가리와 유럽에서 물은 결코 무료가 아니다.

물은 거의 음료수나 맥주 가격에 가까울 정도로 값나가는 하나의 독립된 메뉴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콜라나 맥주 한잔이 4천원이면 물 한 병은 3천원 내외를 받는다.


이들의 문화에서 물은 ‘음료 중 하나’의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셈이다.

한국에서 온 나는 물이 ‘무료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헝가리에서의 일상이 누적될 수록 ‘물을 돈주고 주문할 바에는 맥주나 와인을 마시지.’라는

합리적인(?) 생각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KakaoTalk_20260214_234328347_03.jpg 혹은 커피나 과일주스를 주문하곤 했다. 커피맛이 괜찮은 카페들이 제법 많다. 야외자리가 많다는 점도 헝가리와 유럽 식당의 특징이겠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몇몇 선생님들은 한국이 물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아껴야 된다고 가르쳤다.

어떤 선생님은 ‘미래엔 물이 기름보다 비싸질 것’이라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해외와의 교류가 지금에 비하면 매우 드물었던 1990년대 후반의 이야기이다.


요즘 들어서는 전국 단위로 읊어진 “한국은 물부족 국가”라는 표어가

‘어릴 때 속은 역대급 가스라이팅’이라는 제목의 피드로 SNS에서 종종 보인다.

사실 한국은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는 사실,

그것도 깨끗한 지하수가 풍부한 나라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전히 기성세대는 한국이 물부족 국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헝가리의 내 집은 매우 상태 좋은 새 집이다.

수도관도 모두 새것인 비싼 아파트다. 유럽식 아파트임에도 무려 바닥난방이 갖춰진 플랫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필터형 샤워기를 꽂으면 하얗던 필터가 2주만 지나도 거뭇거뭇해진다.

헝가리와 유럽은 지하수의 석회가 기본값이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식당의 ‘생수’를 콜라나 맥주급의 비싼 음료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 헝가리에서 다 쓰지 못하고 남겨서 가져온 필터형 샤워기를 주방에 꽂아서 사용하고 있다.

꽂은지 세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이 필터는 여전히 하얗다.

한국의 물이 얼마나 깨끗하고 풍부한지를 직접 내 눈으로 매일마다 체감하게 된다.


헝가리는 사랑스러운 나라다.

이제 나는 이 나라를 제 2의 고향이라고 여기며, 이 곳의 관습과 문화에 상당히 절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에서 3천원 안팎의 돈을 내고 주문해야 하는 물값은,

헝가리를 떠나는 시기가 되어서도 적응되지 않더라.

한국이 얼마나 깨끗한 물을 풍부하게 가진 자랑스러운 나라인지,

지금 한국의 수돗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면서 다시한번 되새긴다.

KakaoTalk_20260214_235532701.jpg 그래도 이렇게 물을 주문하는 날도 많다. 헝가리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인 '군델(Gundel)'이었던만큼, 본문에서 언급한 것보다 물값이 더 비쌌던 건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