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운전 여부는 ‘관광객’과 ‘거주자’의 차이를 구분하는 요소 중 하나다.
‘여행’과 ‘일상’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물론 요즘에는 여행지에서 차량을 렌트해서 쓰는 경우도 많지만,
그 심리적 편안함은 분명 어느정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운전, 그리고 차량 보유는 그 이면에 여러 법적인 고리들을 소유자에게 걸어두기도 한다.
나와 같은 이방인 장기 거주민들에게 집 다음으로 큰 자산이기도 하다.
어찌저찌 여러 장기 렌트 업체들을 접촉하고, 가격과 차종을 조율하는 과정은 진이 빠진다.
헝가리 그리고 유럽에서 차량에 붙는 세금과 보험료는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내가 처음 찾아본 차량의 렌트비보다 훌쩍 높아지는 계산서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차를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 명함 등을 제시하고 계약금액을 확인하면서 해외에서의 첫 차를 수령하는데 성공했다.
운전은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평범한 이유는 몸에 익어버렸기 때문이다.
정작 운전의 속성을 면밀이 들여다보면 자칫하면 초 단위로 생명이 왔다갔다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이다.
인간이 개인의 자격으로 운용할 수 있는 평범한 교통수단 중 가장 빠른 속도를 내지 않는가.
내 나라에서 일상이었기 때문에 타지에서도 일상일 줄 알았던 이 행위는,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문화와 관습 차이를 초단위로 체감하게 해준다.
번호판의 구성부터 다르다.
알파벳 두 개와 세 자리 숫자로 이루어진 번호판의 형태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딘가에 차량 번호를 제시해야 할 때도, 한동안은 외우지 못해서 메모를 보며 제시하곤 했다.
유리 선팅 규제도 다르다.
한국에서는 차 밖에서 운전자의 얼굴은 커녕 운전자의 존재 여부도 확인하기 힘들다.
헝가리와 유럽은 앞유리와 운전석, 조수석, 그리고 뒷유리는 선팅이 없어야 한다.
뒷좌석의 양옆유리만 선팅이 가능한 것.
그래서 보행자와 운전자는 수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고, 서로 표정도 알 수 있다.
룸미러를 통해 뒷 차량 운전자의 제스처를 인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가본다.
일단 한국의 도로 인프라가 정말 훌륭하다는 것을 몇 킬로미터만 주행해도 체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헝가리와 유럽의 도로가 뒤떨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이 훌륭할 뿐이다.
차선 사이로 들어가면 중앙선 때문에 크게 당황한다.
이 곳의 중앙선은 주황색이 아니라 흰색이다.
한국에서는 같은 방향을 향하는 차가 같은 색의 선 안에서 나란히 달리지만, 여기서는 역주행이 된다.
도심에서는 보행자가 왕이다. 이 차이는 정말 크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건너지 않고 있으면 차들이 먼저 멈춘다!
보행자는 어떤 차가 지나간 후 건널 지를 가늠해 볼 필요가 없다.
차들이 먼저 멈춰주기 때문이다.
라이트를 깜빡이는 차들도 종종 보인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경적 혹은 짜증(?)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유럽에서는 양보의 의미다!
방향등을를 켰지만 내 앞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차에게
속도를 늦추면서 라이트를 깜빡여주면 ‘먼저 들어오세요’, ‘먼저 지나가세요’의 의미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차선변경하려는 차들을 위해 양보해주는 편이다.
주차는 정말 복잡하다.
주차가 가능한 구역을 표지판이 표시하고 있고, 차선과 도로의 보도블럭 모양으로 어느정도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역과 시간이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운전자는 반드시 무슨 요일과 무슨 시간대에 해당 구역 주차가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유료 주차 구역은 근처 어딘가에 있을 주차 자판기에서 주차권을 구매한 후,
앞 유리 안쪽에 보이도록 넣어두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유료 주차장이 디지털화가 되어 있는 한국과 다르게, 여전히 구식 스타일이 남아있다.
최근에는 통신사 어플리케이션과 주차 구역이 잘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부다페스트의 경우는 거의 모든 구역을
이 통신사 어플리케이션으로 간단하게 주차 요금을 결제할 수 있게 되었다.
분명 똑같은 운전이라는 행위인데도,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소한 습관들이 바뀌게 된다.
돌아보면 회사의 예산에는 차량 지원비와 주유비 등이 따로 넉넉하게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경험할 수 있는 헝가리의 범위도 일반적인 관광객에 비해 몇 배는 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한국에서는 보행자를 위해 차를 멈추고 유럽스러운 표정(?)과 제스처로
먼저 건너시라고 표현해도,
보행자는 선팅 안쪽에 있는 나를 볼 수 없다.
나 또한 보행자의 입장이 되어
횡단보도를 건너며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해도 운전자의 표정을 볼 수 없다.
헝가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마치 저장장치에서 ‘습관'이라는 이름의 패치 파일을 불러와서 '업데이트'한 것처럼,
한국에서의 운전 환경과 습관을 다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한국보다 낡은 헝가리의 도로와 양옆에 보이는 유럽식 건물들이 떠오르곤 한다.
차창 뒤로 지나가는 부다페스트의 날씨와 풍경은 오래도록 그리울 것 같다.
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