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차를 견인당한 소소한(?) 이야기

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by 서인석

부다페스트 중심부의 한 중식당에서 저녁식사를 가진 날.

식사 멤버는 함께 파견 온 지역전문가 찬양,

그리고 헝가리의 한국 회사에 자리잡은 창창한 사회 초년생 친구 두 명.


늘 그렇듯 해외 생활에서의 설렘과 적응에 대한 이야기를 메인 메뉴로 풍성하게 식사시간을 채웠다.

집이 가까운 편이었던 나는 걸어왔지만, 다른 친구들은 식당에서 집까지 거리가 좀 있는 편.

마침 찬양은 차를 가져왔었다.

그는 호기롭게 모두를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자처했다.

찬양은 항상 이렇게 무언가를 베푸는 역할이다.

그는 집이 가까운 나에게도

“아, 형도 실어다줄게.”라며 차를 대놓은 곳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찬양이 차 키의 ‘열림’ 버튼을 누르며 가리킨 곳에는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빈 주차칸만 덩그러니 우리 넷을 맞이했다. 나는 재밌는 장난이라며 낄낄댔다.

방향을 종종 헷갈려 하는 찬양이 차를 한두 블럭 뒤나 앞에 주차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머리를 긁던 찬양의 표정은 점점 더 어리둥절해졌다.

그의 연기력이 이정도로 훌륭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윽고 네 방향으로 퍼져서 찬양의 차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내 차가 아니었음에도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누군가의 차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헝가리라는 먼 나라 한복판에서 동양인 네 명이 뽈뽈거리며

자동차를 찾아다닌다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기에 기이한 감정이 교차했다.


우리 모두는 흩어져서 주변 몇 블록을 수색했지만 찬양의 차를 찾지 못했다.

그때쯤 찬양은 가장 처음의 그 주차자리의 바로 앞 가게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주차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어떤 안내문을 발견했다.


헝가리어로 쓰여진 그 안내문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당신이 주차한 곳은 주차금지 구역이다.

그래서 무슨무슨 규정에 따라 차를 견인한다. 그 차는 어느 주소에서 보관한다.’

20241023_212505.jpg 찬양은 이 사진을 찍고 싶어했다.




안내문을 확인한 우리는 다소 마음이 놓였다. 일단 차의 소재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헝가리의 치안은 여타 서구권 ‘기 센’ 나라들에 비해 안전한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혹여 강도라도 당한 거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평온한 일상과 ‘차량이 견인된 사건’은 궤가 같을 수 없다.

나는 차주인 찬양의 표정을 보았다.

그런데 안내문을 확인한 그의 표정은 ‘불만’ 혹은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대신 그의 표정은 설렘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다.

이 친구는 늘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건에 목말라 했다.

외국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운용하고 있던 차가 견인되었다, 이 얼마나 새로운 경험인가!

상황을 인지한 찬양의 표정은 점점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 주인인 찬양과 나는, 다른 두 친구를 먼저 집에 보낸 후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견인 장소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2024_10_23 23_17.mp4_20260219_225404.991.jpg 나와 찬양이 견인장소로 출발하는 택시를 탔을 때, 함께 식사한 다른 두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흐린 사진이지만 분명 견인된 차를 찾으러 가는데도 웃음이 보인다.




부다페스트의 한 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가하는 시간이라 한산하지만 한 택시기사는 운 좋게 손님을 잡는다.

게다가 ‘Bolt(택시 앱)’를 통해 접수된 손님은 제법 먼 거리로 가는 듯 보인다.

목적지로 지정되어 있는 장소가 조금 외지고 일반적인 곳은 아닌 듯 보이지만 넉넉한 요금이 발생한다.

그렇게 마르지만 단단한 체형을 가진, 청자켓 차림의 택시기사는 왠 동양인 남자 두 명을 손님을 맞는다.


의아함은 더해진다.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에 왠 동양인 두 명이 가겠다고 하니깐, 일단 엑셀은 밟는다.

그러나 질문을 안 할 수 없는 상황.

오밤중에 건물들도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대체 왜?


“이 주소는 왜 가는거야?”


한편 동양인 두 명, 그러니까 바로 우리는

이 신기한 모험에 점점 흥분되기 시작했다.

택시기사의 질문에 우리는 더듬더듬(찬양은 나보다 훨씬 능숙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이 태운 승객들이 동양인임에도 헝가리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

기사는 안도하며 대화와 질문을 이어간다.


택시 안에서의 대화는 대강 이랬다.

“우리의 차를 찾으러 가는 거야.”

“차가 왜 거기에 있는데?”

“견인(vonás)되었거든!”

(찬양은 안내문을 읽으면서 ‘견인’이라는 헝가리어 단어를 익힐 수 있었다.)


기사는 전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음표 그 자체인 표정이다.

“우리가 밥을 먹고 나왔거든. 그래서 주차자리에 갔어. 그런데 차가 없었어!”


늦은 시간에 동양인 둘이, 이상한 곳으로 목적지를 찍어서 의아했던 기사는 차차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룸미러로 그 승객 둘을 너머다보며 이것저것 다시 묻기 시작했다.

그는 근본적인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자식들은 왜 즐거운 걸까?’

슬슬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더군다나 승객들은 어떤 불편함이나 불쾌함 없이

“이봐! 우리는 우리의 차를 잃어버렸다구! 신나지 않아?!”라며 깔깔대고 있다.

기사의 헛웃음은 이내 살짝 돌은 것 같은 두 동양인 승객에 동화되어 진짜 웃음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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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은 끊임없이 ‘재밌는’ 상황에 놓은 자신의 즐거움을 헝가리어로 구사했다.

'이게 왜 즐겁지?'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렇게 택시 안은 어이없음과 황당함의 웃음소리로 견인장소를 향해가는 내내 가득찼다.




안내문에 나와있는 견인장소를 내비게이션이 잘 인식하지 못한 탓인지,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친절함과 즐거움, 그리고 다소 어이없는 감정으로 꽉 차버린 기사는 우리에게 안내문을 받아서,

거기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우리 대신 통화해준 후 다시 꽤 먼 거리로 우리를 태워주었다.

기사는 그 거리만큼의 추가비용은 받지 않았다.


우리는 심술궂은 표정의 덩치 큰 경찰이 당직이었던, 견인차 보관소에 도착했다.

기이한 경험으로 인해 흥분도가 120%를 넘어버린 찬양은 택시기사에게

“꾀쐬뇜(Köszönöm,감사합니다)!”을 연발하다가 문득 이 즐거운(?) 경험을 남기고 싶었는지

택시기사와 함께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직 경찰은 “헤이!”하면서 우리를 독촉했고, 사진은 남길 수 없었다.


헝가리의 사설기관들은 대부분 영어가 잘 통하지만, 공공기관은 그렇지 않다.

경찰은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헝가리어 설명을 따라야 했는데,

법적인 용어가 많았던 탓에

경찰과의 소통은 택시기사때와는 다르게 원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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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찌저찌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고, 필요한 벌금과 보관료를 납부했다.

대략 한화로 15만원 이내.


찬양은 비로소 흰색 파싸트의 조수석에 나를 태울 수 있었다.




견인 안내가 있었던 주차구역을 보면 실소가 나올 정도로,

헝가리어를 전혀 모르더라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너무 확실하게 주차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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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표현을 빌리면,

‘주차 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천천히 도로를 돌고 있었는데, 너무 좋은 자리가 있더라.

그래서 "오, 개꿀!"하면서 고민없이 자리잡았다’고 했다.

때때로 우리의 시야는 좁아지고 그것의 결과는 전혀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차량 보관소가 멀었던 탓에 이미 도로에 차들이 없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중심부까지는 30분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오는 주행동안 피곤하거나 지치거나 기분이 나쁘기 보다는,

식사 후부터 차량을 찾을 때까지의 짧은 모험을 복기하고 깔깔대며 돌아올 수 있었다.


차주인 찬양은 이 경험을 특별하게 여겼는지,

매달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영상만들기 과제’에서 이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헝가리인에게 빌려졌더라면 가볼 일이 없었을 외진 땅을,

찬양의 흰색 파싸트는 견인차에 매달린채 밟았을테고, 다시 제 주인을 만났다.

그렇게 나를 집 앞까지 내려주고 찬양과 찬양의 차는 제 집으로 돌아갔다.

왜인지 찬양의 집으로 돌아가는 파싸트의 궁둥이는 신나 보였다.

택시 안에서의 동양인 두 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