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을 관람하다가 헝가리어 늪지대에 빠졌다

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by 서인석

'에스테르곰'은 자잘한 볼거리들이 많은, 예쁜 도시다.

20240504_114945.jpg 언덕에서 바라본 에스테르곰의 전경. 왼쪽 상단의 강(두나 강, 도나우 강)이 슬로바키와의 국경이다.


작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옆 나라인 슬로바키아로 갈 수도 있고,

'헝가리의 첫 번째 도시'라는 역사적 사실을 보존한 작은 박물관들도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곳의 랜드마크는 에스테르곰 성당(Esztergomi Bazilika)이다.


20240504_125938.jpg 2024년 5월에 찍은 에스테르곰 성당의 정면. 당시에는 부분부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관광객은 에스테르곰 성당에 쏠리는 편인지라 시간의 운을 잘 타면,

다른 유니크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한산한 상태로 관람할 수 있다.

그리스도 미술관(Keresztény Múzeum)을 방문했을 때가 그랬다.




일요일 아침 시간에 그리스도 미술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매표소의 할머니는 갸우뚱하며 동양인을 바라봤다.

동양인이 “열었죠?”라고 헝가리어로 물어봤을 때서야

할머니는 경계를 풀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복도와 계단의 불을 켰다.

그 동양인, 내가 그날의 첫 관람객이었다.


20240504_103612.jpg 그리스도 미술관 전경(커버사진과 동일)


매표소 할머니가 누군가를 부르자 도슨트가 다가왔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로 나를 안내하고는 같이 탑승했다. 전시실로 안내하려는 모양이었다.

이 곳의 사람들이 동양인과 대화를 해야 할 때면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인입니다.”라고 헝가리어로 대답하자, 도슨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도슨트는 영어도 능숙했다. 그녀는 자신이 헝가리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영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헝가리어를 전혀 못해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영어를 어느 정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도시로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평균 연령대가 높은 지역일 수록 영어는 거의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일어나 러시아어가 공용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도슨트가 자신이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설명한 이유일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더듬더듬 헝가리어를 써야 했다.

왜냐면 도슨트가

“내가 헝가리어를 가르칠 때는 영어를 최대한 쓰지 않아.”라고 했기 때문이다.

왠지 나에게 ‘너도 헝가리어를 배우고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도슨트는 다른 도슨트에게 나를 인계했다.

엘리베이터의 도슨트가 일종의 ‘대장 도슨트’였던 모양이다.

인계받은 도슨트는 전시실의 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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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관람객이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설렜다.

각 전시관들의 불을 켜는 게 나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동양인은 혼자서 넓은 미술관을 전세 낸 것처럼 관람하기 시작했다.

도슨트가 서너 명인데 관람객이 혼자인 다소 우스운 상황.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격언은 진부하다.

그럼에도 이 미술관에서 그 격언을 굳이 다시 끌어올 수밖에 없다.

성경과 그리스도교 신앙들을 토대로 그려진 그림들이 즐비했다.

모태신앙이 가톨릭인 동양인에게,

그림 하나하나는 성경의 특정 페이지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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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그림에서 멈췄고 오랫동안 미소 지으며 그 그림에 빠져들었다.

예수의 열두 제자를 그린 그림인데

(바오로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열두 제자’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넘어가자.),

이천 년 전 예수의 제자들 얼굴을 내가 알리 없음에도,

그 열두 명이 각각 누군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별로 상징물이 있다.

가령 베드로는 열쇠를 들고 있다거나, 안드레아는 엑스자 형태의 십자가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

나의 유추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시실의 불을 켜준 도슨트와 눈이 마주치자 영어로 몇 가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 도슨트는 당황하면서 먼 곳의 대장 도슨트를 불렀다.


그 도슨트는 영어를 전혀 못 했던 것이다.

그리고 대장 도슨트와 헝가리어로 대화하는 게 들렸다.

전시실이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대화소리가 울려서 꽤 잘 들렸다.

헝가리어였지만 대장 도슨트의 마지막 말은 유독 정확히, 그리고 선명히 들렸다.


“저 사람, 헝가리어 할 줄 알아.”

대형 폭탄이 떨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당황했던 도슨트가 반색을 하며 다가와서 “정말? 헝가리어 할 줄 알아?”라고 물었다.

그 반가운 표정에 어떻게 고개를 저을 수 있을까.

“아주 조금 할 줄 알아요.”라는 말을, 헝가리어로 해버리고 말았다.


한국에서 서양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길을 물어본다.

그런데 만약 한국어로 더듬더듬

“나 한쿡말 초큼 할출 알아효.”라고만 말해도 한국인들은 고마워하고 반가워하며 칭찬해 주지 않는가.

이제 내가 그 포지션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두 단어로만 말해도 도슨트는 헝가리어를 너무 잘하고 발음도 좋다며 신나게 칭찬했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서 헝가리어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마치 임자 만났다는 듯이.


다행히 제스처와 성경에만 나오는 고유명사들 덕분에 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도슨트는 그림의 가치와 의미를 아는 사람을 만난 게 기쁜 것 같았다.

또 그런 사람이 동양인인 게 고맙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 동양인이 헝가리어를 더듬더듬 하는 것도 신기했을 것이다.


헝가리어는 널리 쓰이는 언어가 아니다.

지구에서 헝가리인 1천만 명 정도만 사용하는 언어이므로,

한국어보다도 훨씬 적은 인구가 쓰고 있는 특수어에 속한다.


나는 “조금만 천천히 말해주세요.”라고 헝가리어로 말했다.

도슨트의 칭찬이 또다시 터져 나왔음은 더 언급하지 않겠다.




단, 한 명의 관람객만 있는 한적함에 비해, 미술관은 매우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유명한 그림도 있었다.

특히 ‘Virgin and Child’는 다른 그림으로 향하지 못하게 발을 묶어두는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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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는 내가 흥미롭게 바라보며 멈춰 선 그림마다 다가와서 천천히 설명을 붙여줬다.

당연히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도슨트가 작품들에 대해 갖는 자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예 개인 도슨트처럼 내 경로를 따라 함께 이동하며 설명해 주었고,

연관된 그림으로 잡아 이끌며 화풍과 성경을 연결 지어 설명해 주었다.

개인 가이드와 함께 관람한 기분이었고,

그림에 대해 갖는 현지인의 자랑스러움이,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그대로 전해졌기에,

어떤 미술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설렘을 담을 수 있었다.



20240505_102242.jpg 에스테르곰의 그리스도 미술관은 주제에 맞게 모든 작품이 그리스도 신앙과 관련된 그림과 조각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 도슨트에게 고마웠고, 무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한 시간에 걸친 헝가리어의 늪지대에서 극소수의 알아듣는 단어와 문장이 나올 때마다,

최대한 내가 알고 있는 헝가리어를 끄집어내어 대답하고 리액션하기 위해 노력했다.

눈으로는 그림과 작품들을 담으며,

머리로는 헝가리어 단어들을 찾고 조합하면서, 입으로는 대답하는

그야말로 쿼드코어(?)급의 두뇌 활용을 하며

절반의 설렘과 절반의 혼란스러움으로 헝가리어 늪지대를 즐거이 한발 한발 내딛었다.


전통시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이것도 잡솨봐.” 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걸 몇백 년 된 그림이 즐비한 미술관에서 느꼈으니, 미술에 대한 괴리감보다 친근함이 더 커졌다.

그렇게 헝가리어에 흠뻑 젖은채 미술관 마지막 코너까지 관람을 마치고 나올 수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다시 매표소 방향으로 나왔다.

매표소의 할머니 직원을 다시 만났다.

그녀는 동양인이 계속 대화를 나누고 오랫동안 재밌게 관람하다가 나오는 게 기특했던 모양이다.

기념품인 관람 책자 하나를 공짜로 챙겨 주었다.(다행히 이 책은 영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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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문을 나서며, 문 앞에서 기념품들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재미들 중 하나는, ‘내가 어디에 왔는가’만큼이나,

‘내가 이곳에서 어떤 사람인가’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소소한 에피소드 하나씩을 헝가리의 날들이 늘어나는 만큼 쌓아가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타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하지만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