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평범한 회사원의 입장에서,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은 정말 특이하다.
돌아보면 ‘믿기지 않는다’라는 말도 어느정도 맞다.
회사라는 조직은 철저히 계산적이다.
회사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
직원들을 고용하는 것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직원들에게 지출한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직원을 자유롭게 두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역전문가’ 제도는 특별하다.
회사원 중 선발 절차를 거쳐서 1년을 ‘거의 자유롭게’ 두기 때문이다.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여러 압도적인 혜택들,
가령 해외 생활동안의 체류 비용이나 여행(지역연구) 비용,
그럼에도 그대로 지급되는 연봉 등이 있지만, 가장 큰 이점이 ‘자유’다.
물론 각 지역전문가들이 몇가지 필수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숙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활동 또한 마감일만 지키면 되고
스스로가 하루, 일주일, 한달을 어떻게 보낼지는 온전히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면 된다.
누군가는 어학원을 매일 오전에 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오후에 간다.
누구는 하루에 2시간을 가기도, 누구는 하루에 5시간을 가기도 한다.
(어학 교육과 관련된 비용 지원은 아예 한도 자체가 없다.)
‘자유’는 위험하다.
시간과 돈이 주어졌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열심히 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원래 사람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동물 아닌가.
나태해지려면 얼마든지 나태해질 수 있을 환경에 처해있다.
재정적으로 허덕이기라도 한다면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나태해질 수 없겠지만,
오히려 이 프로그램은 이런 요소를 아예 없앴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든 밤에 몇 시에 자든, 누구도 뭐라고 할 일이 없다.
만약 게임을 좋아한다면
아예 컴퓨터 한대 사두고 하루 십 수 시간씩 레벨만 올린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인터넷을 가장 좋은 것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통신비용조차 넉넉하게 지원된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니, 그게 왜? 그거 너무 좋은 거 아니야?
회사가 1년동안 온갖 지원을 다 해주면서 놀게 해주는데,
휴가처럼 보내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1년 편안하게 리프레쉬하고 돌아오는 지역전문가도 없진 않을테다.
그러나 내가 만나본 지역전문가들은 대부분 ‘뭐라도 해보려고 움직이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이색적인 체험과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기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이렇게 생각하면 1년은 정말 짧다.
나는 부다페스트에 착륙하는 그 순간부터 이 1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세상을 배우기에는 너무 짧은 1년.
단지 편안하게만 보내고, 나태해지기에는 너무 아쉬운 시간 아닌가.
그래서 학원 수업이나 약속, 혹은 별다른 스케줄이 없더라도 짐을 챙겨서 항상 밖으로 나갔다.
어딜 걸어보기도 하고, 관광지를 가보기도 했다.
이렇게 동네를 비롯한 도시 중심부 곳곳을 쏘아다니다가
모든 장소들이 익숙해져서 더이상 갈 곳이 없어진 시점에도 어떻게든 짐을 챙겨서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단골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뭐라도 했다.
‘무엇’을 하느냐를 생각하기 전에, ‘일단’ 아침부터 밖으로 나왔다.
그것이 나에게는 나태해지지 않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물론 카페에 서너시간 앉아있으면서 100퍼센트 집중하며 효율적인 일만을 한 것은 절대 아니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책이나 유튜브를 보며 쉬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과 밖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쨌든 다르다.
카페에 앉아있으면 헝가리인들의 대화도 (거의 해석이 잘 되진 않지만) 들어볼 수 있다.
창을 통해 부다페스트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하다못해 주문할 때라도 헝가리어 연습을 해볼 수 있다.
(커피를 주문하는 헝가리어 대화는, 한국에 돌아온 지 반년이 지난 지금도 능숙하게 할 수 있다.)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면 공부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집 뿐만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잘 집중한다.
그것은 이상적인 사람이다.
이동시간을 손해보면서도 도서관에 가는 건 일종의 안전장치다.
할 것이 공부밖에 없는 환경,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1년동안 나에게 그 안전장치는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 장치가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수치화해서 계산할 순 없지만,
적어도 집에서만 머물렀을 때보다는 얻은 게 많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