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내가 무슨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는 결코 아니고,
세계 평화를 꿈꾸는 리더도 아니며, 혁명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적은 흔적으로 남아,
시끄러운 소리들에는 아무리 관심을 끄려 해도 하릴없이 귀가 열린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까지, 본격적인 선거운동은 시작 전이었다.
그럼에도 언론과 여론은 다양한 관점에서 소음에 불을 지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정치인들과 정치계에 나는 크게 바라는 게 없고,
그렇게 바라는 것 자체가 순수가 아닌 순진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던 바다.
그래서 내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건 고작 ‘현수막 좀 걸지 마라’ 수준의 단순한 것만 남았다.
정치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욕에 우선순위가 앞서는 것은 기본값이다.
그래서 이 자들이 국민 여러분들의 행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몸을 갈아 넣어 ‘봉사’할 거라는 생각 따위는 멀리 치워야 한다.
애당초 국회의원 여러분들께서 받으시는 ‘봉급’ 수준이 ‘봉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 십수년이 지나버린 4년의 대학생활 동안 정치학을 좀 더 현실적인 관점에서 배웠고,
그렇게 현실 속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것은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받는 만큼이라도 일해달라’의 수준만 남게 되더라.
지금은 이 정도의 기대조차 남지 않게 된 것일 뿐.
그래서 고작 ‘현수막 좀 걸지 마라’에 다다른 것이다.
높은 분들께서는 일단 자기 주머니 채워놓고 나서야 뭐 하는 척 하시다보니
결국 내 삶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사실-높은 분들이 내 일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을 인지하면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딘가를 탓하거나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 분들을 그저 ‘남’이라고 단정지으면,
그냥 열심히 살 수 있다.
근데 내 귀에 바짝 주둥이를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 아닌가.
일종의 공해.
당신들에게 크게 바라는 것 없고,
이제는 아예 ‘받는 것만큼은 일해달라’라는 바람조차 접었는데,
공해를 살포하고 있으니 성이 나는 건 당연하다.
눈에 들어오는 사거리마다 ‘우리 당은 쟤네 당보다 나아요’,
‘쟤네 당을 뽑으면 나라가 망해요’
이런 유치한 글귀들을 보고 있어야 하니 보는 사람이 부끄럽다.
그러니까 제발, 이따위 쓰레기를 다시는 걸지 않겠다고 공약하는 후보는
당적을 막론하고 뽑아주겠다-가 출국 전까지의 내 생각이었다.
지난 3주 동안 내 눈에는 어떤 정치인의 유치한 플랫카드도 보이지 않았다.
인지되지 않으니 기분도 나쁘지 않더라.
얼마나 슬픈 일인가.
국정 홍보, 시정홍보 도구로서 플랫카드를 잘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서로의 페이스북을 사거리로 확장하여
‘내가 돈 얼마를 확보했지롱!’,
‘내가 이거 했는데 잘했지?’
이런 글귀로 가득 채워 놓으니 반감만 생길 뿐이다.
저런 게 시정홍보, 국정 홍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대한 내 대답은
‘해야 하는 일 해놓고 플랫카드까지 거시는 분들은 참 편하게 사십니다’ 정도.
십년을 훌쩍 넘긴 회사생활동안
‘나는 제 시간에 출근했으니 칭찬해 주세요!’라고 말해본 적 없는 입장에서는 갸우뚱할 따름이다.
쟤네 당을 뽑으면 나라가 망하고 우리당을 뽑으면 나라가 산다는 선거운동도 얼마나 교만한가.
미안하지만 당신들과 당신들의 당은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살리게 할 정도로 엄청난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내가 말하는 ‘당’은 현재 한국에서 정치라는 행위를 하고 있는 모든 당을 말하는 것이다.
특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유치하게 굴지 말고, 일상을 침해하지 말아달라, 의 상징으로
“플랫카드 좀 떼라!”는 요구까지가 내가정치인들에게 바랄 수 있는, 정말 사소한 영역이었다.
멀리 있으니 아무 인지도 되지 않고 편안했다.
부다페스트의 한국 대사관에 방문해서 부재자 투표를 했다.
공휴일임에도 현지의 직원들이 열명 가까이 출근해서 한산한 투표소를 지키고 있었다.
한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플랫카드들을 잠깐 떠올렸다.
인지되지 않은 불편함은 어떤 감정도 수반하지 않더라.
드물게 이성적인 감정으로 후보자와 정당에 투표를 하고 투표소를 나섰다.
인지되지 않을 때서야 편안해지는, 내가 잠깐 떠나온 곳의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