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가장 자주 만난 한국은

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by 서인석

K-문화의 힘은 해외로 나갔을 때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물론 국내에 있으면서도 여러 기사들과 수치들을 통해

‘아, 한국의 위상이 이토록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할 순 있지만 피부에 와닿는 수준은 아니다.

정제된 사실을 전달받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헝가리에 정착한 후,

한국에서 느낀 것보다 더 생생하게 'K-블라블라'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헝가리에서 가까워진 현지 친구들도 대부분 K-블라블라에 이미 관심이 많았는데,

나와 같은 한국인들에게 다가오고 싶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KakaoTalk_20260314_171501895.jpg 이런 인기들을 바탕으로 헝가리의 한국문화원에서는 한국 영화 상영 행사를 하기도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대화의 주제가 포커싱된다.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오징어게임>과 <부산행>, 'BTS', '블랙핑크'였다.

조금 깊이를 가진 한 친구는 <헤어질 결심>을 이야기 했었는데,

나는 <헤어질 결심>을 십수번이나 다시 돌려봤을 정도의 매니아였기 때문에

이 친구와는 거의 2시간동안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한 ‘삼성’이나 ‘기아’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지인들은 의외로 ‘현대’보다 ‘기아’를 더 많이 언급했다.)



KakaoTalk_20260314_211507085.jpg 시골마을 에게르썰록에서 만난 식당 직원은 한국인이냐며 말을 걸었고,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한참동안 하고 식사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한국의 위상을 가장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콘텐츠는 다름아닌 ‘불닭볶음면’이다.


K-콘텐츠들에 대한 벽은 넷플렉스 시대 이후 거의 사라지다시피 해서,

원하는 누구라도 아주 쉽게 한국산 영화나 드라마를 '터치' 한번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마트의 불닭볶음면은 그 ‘터치’조차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마트를 가더라도 불닭볶음면은 항상 있었다.

그것이 ‘해외 음식’ 코너에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냥 평범한 ‘인스턴트 식품’ 코너에 있었던게 인상적이더라.


KakaoTalk_20260314_171501895_23.jpg 헝가리의 창고형 할인마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한국의 술도 구할 수 있다. 헝가리 현지인들은 과일향이 들어간 소주를 더 선호한다.

10만원 초반대였던 삼양의 주가는 불닭볶음면의 대히트 이후

140만원을 찍고 그 근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잘 만들어지고, 특정 시장에서 지배력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삼양과 불닭볶음면의 사례는

새로우면서 넓은 시장을 개척하는 것의 압도적인 힘을 증명한다.




1990년대 초반 김건모나 신승훈, 서태지의 시대에

음반 100만장 판매는 일종의 ‘고지’이자 히트의 ‘인증’으로 여겨졌다.

음반의 시대가 저물고 한 해 음반 최다판매량이 20만장 아래일 때도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존재했다.


KakaoTalk_20260314_171501895_07.jpg 헝가리 대형마트 음반코너에서 절반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음반들.

그러나 지금 한국 아이돌 그룹들의 음반 판매량을 보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이름을 모르거나 음악도 모르는 그룹들이 100만장 200만장을 팔고 있다!


K-POP의 시장이 5천만 한국에서 80억 지구로 넓어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혹자는 앨범의 버전이 나눠져 있거나 포토카드나 팬미팅 등의 상술로 유도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2024년 100만장 넘게 팔린 앨범이 22개나 된다는 점은 결코 폄하할 수 없다.

200만장 넘게 팔린 앨범만도 6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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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60314_212109191.jpg 부다페스트에서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헝가리어 번역판 출간 기념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헝가리인 친구 번더와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




올 초 원자재값들이 크게 오르면서 대부분의 라면회사들이 제품 가격을 올렸다.

그러나 삼양은 동결했다.

“우린 해외에서 팔면 돼~”라는 짤이 등장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불닭볶음면을 한번도 먹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맛보지 않았음에도 해외 생활 덕분에 불닭볶음면의 위세를 느낄 수 있었고,

그 맛은 충분히 매웠다.


KakaoTalk_20260314_171501895_21.jpg 헝가리의 한인마트는 현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들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다. 이렇게 다양한 상품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만큼 수요가 존재한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