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해를 넘긴 1월과 2월은 부다페스트의 삼성SDS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특별히 업무가 주어지진 않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현지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같은 공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의 헝가리인 친구들을 만날 때와,
직장생활에서의 사람들 관계가 어떻게 다른지 배울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사무실의 직원들에게 나는 조금 이상한 존재였을 것이다.
공유하는 업무는 없는데, 출근을 맨날 한다.
그런데 또 다른 한국인 직원들과는 다르게 헝가리어를 쓰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들에게 헝가리어로 조금이라도 말을 붙여보고 싶었던 것처럼,
그들도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했다.
그렇게 가까운 자리의 몇몇 직원들과 서서히 친해지고 있었다.
출근한지 3주 정도 지났을 때,
그날도 나는 먼저 퇴근하는 동료에게
“비쏜뜨라따쉬러!(Viszontlátásra :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뒷자리의 언너가 불렀다.
언너는 갓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유럽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코리아 러버’였다.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종종 나에게 한국 관련된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나에게 더듬더듬 한국어를 연습하기도 하는 동료였다.
그러면 나도 더듬더듬 헝가리어로 설명을 해주곤 했다.
언너는 헝가리어로 물었다.
“인석, 그런데 너는 왜 항상 ‘비쏜뜨라따쉬러’라고 인사해?”
나는 이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헤어질때 헤어지는 인사를 쭈욱 해왔던 것인데, 왜 그렇게 인사하냐는 질문에 혼란스러웠다.
나는 혹시 내가 헝가리어 질문을 아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게 아닐까 싶어서 영어로 다시 물었지만,
언너의 질문은 동일하게 ‘왜 ‘비쏜뜨라따쉬러’라고 인사해?’였다.
나는 헝가리어로 답했다.
“‘비쏜뜨라따쉬러’가 헤어질때 하는 인사잖아.”
옆자리에 있던 조피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아, 인석. 나도 항상 그게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나는 이 대화가 미궁으로 빠져들어간다고 생각했다.
한국어로 의역해보자면,
‘인석, 너는 왜 헤어질때 ‘안녕히가세요.’라고 인사해?’라는 질문인데,
이 질문의 번역도 틀리지 않았고,
언너 뿐만이 아니라 옆에 있던 다른 동료까지 똑같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이때부터 나는 영어로 언어를 바꿔서 대화를 이어갔다.
가끔 헝가리어를 쓰려고 노력하다보면, 모자란 언어실력으로 오해를 살 때가 있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좀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게 낫다는 것을 지난 수개월동안 배운 터였다.
“나는 너희들이 하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비쏜뜨라따쉬러’가 잘못된 표현이야?”
언너와 조피아는 서로를 마주보면서 한쪽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언너가 답했다.
“음, 아.. 맞지. 맞는 표현이야. 그런데 좀..”
조피아가 언너의 말을 받았다.
“음.. 아무튼 우리끼리는 잘 안써.”
“왜?”
“뭐라고 설명해야되지.. 우리는 동료들이잖아.”
언너는 자신이 배우는 한국어 표현을 예로 들으며 이야기했다.
“친한 사람들끼리는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안녕’이라고 하잖아?”
“발음 좋은데, 언너! 맞아. 정확해.”
“그러니까 ‘비쏜뜨라따쉬러’는 ‘안녕히 가세요’랑 비슷한거지.”
“맞아. 그게 왜?”
내가 답하자 다시 우리 셋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조피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친한 사이이니까 ‘비쏜뜨라따쉬러’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다는 거지.”
그제서야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인들에게 ‘직장’은 공적인 장소에 해당한다.
그래서 아무리 친해도 어쨌든 존댓말로 인사하고, ‘친구’와는 다른 관계들이 모이는 장소다.
그러나 헝가리인들에게는 다르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사람들은 ‘가까운 사이’다.
그래서 오히려 격의있는 인사는 '선을 긋는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너는 아침에 출근하면서부터 헝가리어로 밝게 인사한다,
하루종일 이사람 저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며 재밌는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강아지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종일 엄청 가깝게 지내다가도
퇴근 인사를 할 때면 한없이 멀어지는 것처럼 보여서 항상 이상했다."
라고 언너와 조피아는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헝가리어로 ‘우리쉬뗀!(Úristen! : 맙소사!)’라는 표현을 한 후, 영어로 설명했다.
“한국에서 회사는 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아도, 서로 예의를 지키는 공간이야.
헝가리어와 구조는 다르지만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는 관계를 멀리두는 표현이 아니라
예의있는 표현이거든. 이거 정말 신기하네!”
현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야만 알 수 있는 미묘한 차이를 배웠다는 사실에 살짝 흥분됐다.
“그럼 우리끼리는 뭐라고 인사하면 돼? 헤어질 때 말이야.”
언너와 조피아가 동시에 말했다.
“씨어!(Szia!)"
또다시 맙소사였다.
쉬운 표현이지만 너무 가벼운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잘 쓰지 않았던 표현이,
오히려 가장 무난한 인삿말이었던 셈이다.
나는 언너와 조피아에게 이 문화차이에 따른 표현 차이로 느낀 신기함과 재미를 설명했다.
그들도 한국어 표현의 설명을 듣고는 매우 흥미로워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을 서로의 표현과 발음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다른 문화를 배울 때, 이런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책이나 유튜브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미묘하지만 정말 구체적인 경계에 있는 생활 자체의 것들,
특정 사회나 문화에 녹아들었을 때에서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
정리된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지만 관습으로 녹아있는 무언가들 말이다.
'비쏜뜨라따쉬러-씨어'의 차이같은 것들.
현지에서 생활했을 때에서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자산들이다.
그렇게 남은 시간동안 다시 업무에 열중했다.
그리고 언너가 먼저 일어날 때, 나는 평상시보다 더 정확한 발음으로 인사해주었다.
“씨어!”
언너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나갔다.
건너편에서 조피아도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