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두 할머니와의 트래킹

부다페스트에 1년 동안 살게 됐다

by 서인석

'에게르설록(Egerszalók)'으로 지역연구를 출발한 12월 첫째 주.

다른 지역연구 때와는 설레는 마음이 조금 달랐다.

7월에 2주동안 이미 '에게르(Eger)'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에게르와 에게르설록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도시.



20241202_152247.jpg 크리스마스 무렵의 에게르 중앙 광장. 날씨가 흐렸다.

에게르는 주도(州都)의 역할을 수행하는 인구 5만명 규모의,

나름 헝가리에서는 이름있는 도시지만 에게르설록은 2천명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름에 에게르가 붙어있는 것처럼 위성마을 정도라고 보면 된다.


지역전문가 기간이 1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비슷한 도시를 재방문하는 것은 합리적인 계획이 아닐 수도 있다.

가볼 도시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게르설록을 지역연구로 선택했던 이유는

‘소금언덕’이라는 특별한 명소를 방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았는지,

서쪽으로 차를 달리는 동안 기억속 에게르의 풍경을 계속 떠올리게 되더라.




20241202_091843.jpg 시골마을을 방문하는 정취를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숙소를 가정집 분위기로 잡았다. 숙소가 있던 동네 분위기.

첫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아침 일찍 소금언덕으로 향했다.

주차장은 한산했고, 소금언덕은 조금 멀리 있었지만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라서 올라갔다.

소금언덕과 그 온천수를 품고 있는 리조트 방향이었다.


리조트 후문에 도착했는데, 막상 소금언덕으로 내려가는 길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숙소에 묵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관광할 수 있는 위치가 다른 것 같았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덩치 큰 경비원이 나타났다.

그는 어눌한 영어로

“무슨 일이야? 뭐 도와줄까?”라고 물었다.

나는 헝가리어로

“소금언덕에 가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비원은 깜짝 놀랐다.

“너 왜 헝가리어 할 줄 알아?”

“조금 배웠어. 잘은 못해요.”

“아냐, 이것봐. 잘 하잖아.”

그는 안쪽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던 경비원동료들을 불러모았다.

“이 친구 헝가리어 할 줄 알아! 한국인이래.”

순식간에 경비원 네 명에게 둘러 쌓인 나는 의도치 않게 헝가리어 말하기-듣기 평가를 치르게 됐다.

아저씨(혹은 형일 수도 있다)들은 어디서 왔는지, 헝가리에서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학교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학생이 아니야. 나는 서른 여섯살이라고.”

사실 이들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대답했다.

서구권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에서 동양인들의 외모를 파악하기 때문에,

대부분 원래 나이보다 매우 어리게 본다.

열달 가까이 헝가리에서 지낸 시점이었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동양인을 매우 어리게 본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 놀라는 모습을 보며 “그것보다 훨씬 어려 보여!”라는 말을 듣는 건

몇 번이라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말도 안돼!”등의 표현을 이구동성으로 나누었다.


경비원들과 몇 가지 잡담을 더 나누었고 한명이,

“너 커피 마실래?”라고 물었다.

“아냐. 나는 저쪽 소금언덕을 가고 싶어.”


그러자 처음 말을 걸었던 경비원이 밖으로 안내하더니 돌아가는 길을 안내해줬다.

걸어서 10분에서 20분정도 걸릴듯한 코스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는 아주 쨍쨍하진 않았지만,

적당히 산책하기 좋은 날씨였기 때문에 잘됐다는 생각으로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내가 왔던 같은 방향으로부터 두 할머니가 다가왔다.

할머니들은 엄청나게 빠른 헝가리어로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경비원들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할머니들도 리조트에는 묵고 있지 않지만 소금언덕을 관광하러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경비원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 따라가세요. 길을 알려줬어요.”


두 할머니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매우 당혹스러워 하는 할머니들의 눈을 보았다.

할머니들은 다시 경비원을 돌아보았는데, 바로 그때 그가

“이 친구 헝가리어 할 줄 알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들은 이번에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같이 가요.”라고 말했고,

할머니들은 다시 눈이 반가움으로 바뀌더니 와다다다 헝가리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예기치 못하게 나는 소금언덕을 올라가는 동행이 생겼다.


20241202_104008.jpg 갑자기 동행이 된 두 할머니들. 뒤로 보이는 연기가 소금언덕에서 올라오는 소금연기이다.



할머니들과 언덕을 올라가는 길은 즐거웠다.

특히 두 할머니 중 한 분은 유치원 선생님으로 오래 일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더듬더듬 말하는 속도에 맞춰서 -마치 유치원 선생님처럼- 천천히 대답해 주었고,

질문도 천천히 쉬운 단어를 사용하며 내밀었다.

언덕이 가파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하면서 걷기 딱 좋은 거리였다.

자연스럽게 헝가리어 ‘자기소개’를 지역연구지에 와서 하게 될 줄이야.


내가 삼성에서 일한다고 하자,

그녀들은 자신의 TV와 냉장고를 얘기하며 몇십년째 사용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또 휴대폰을 보여주며 갤럭시만한 휴대폰이 없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화웨이보다 비싸서 부담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두 사람이 꽤 닮아서 자매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들은 맞다고 하면서 내가 모르는 단어를 말했다.

도무지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영어로 부탁했는데,

두 분은 헝가리어 이외에 이탈리어와 독일어, 불어를 할 줄 알았지만, 영어는 아예 하나도 못하셨다.

몇 번의 반복되는 질문과 손동작을 통해 나는 그 단어가 ‘iker’였다는 걸 알게 됐다.

‘쌍둥이’라는 헝가리어 단어를 배우게 된 것이다.




20241202_104214.jpg 소금언덕 전경.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그래서 더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쌍둥이 할머니들과 소금언덕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신비로운 풍경을 함께 감상했고 사진도 남기며 돌아올 수 있었다.

주차장까지 돌아왔을 때 나는 태워드리겠노라고 했지만,

두 할머니는 씩씩하고 쿨하게 잘가라고 하며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여행지에서 이방인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일은

여행지의 풍경만으론 결코 느낄 수 없는 감동과 따듯함을 준다.

소금언덕의 신비로움보다 할머니들과의 트래킹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더 큰 무언가로 남아있다.

소소하지만 평화로웠고, 어눌한 대화였지만 웃음으로 가득 차있던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