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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Aug 19. 2020

나의 브랜드

TEXTIST PROJECT

 자본주의 사회의 수요-공급 관계에서 공급은 항상 수요보다 많다. 우리는 이 관계를 갑-을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일부 소비재들은 분명 '공급'에 속하면서도 '수요'보다 월등한 갑의 지위를 누리기도 한다. 재밌는 현상이다.


 '샤넬런'이라는 현상은 수요와 공급의 갑을 관계가 완벽히 뒤집힌 세태를 전형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가격 인상 전, 샤넬 제품을 득하기 위해 백화점 셔터가 올라갈 때부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샤넬 매장까지 전력 질주해서 명품을 소비하는 모습을 샤넬런이라고 표현한다. 이건 참 생각할수록 기이한 현상인 게, 샤넬의 할인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 막바지 기간에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는 거다. 그냥 똑같은 제품의 가격이 특정 시점부터 올라갈 뿐이다. 소비자들은 특별한 논리도 없이 올라가는 가격에 항의하거나 반박하기보다는 '오르기 전에 달려가서라도 산다'는 자세를 보여줬다.

 샤넬이라는 브랜드로 대표된 표현이었지만 수요-공급이 뒤집히는 현상은 백화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특징이 있다. 이 현상은 소위 '명품', '고가' 브랜드에서 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령 루이뷔통이나 디올, 구찌 매장은 주말마다 줄을 서서 들어간다. 점원들은 매장 내부의 품격과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오는 고객 수를 철저히 통제하고, 고객 중 누군가 한 명이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대기자 1명을 들여보낸다. 롤렉스는 매장에 가도 시계를 살 수가 없다. 포르쉐는 10개월을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지만, 대기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구매자가 줄진 않는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경제는 항상 어렵고, 자영업자들은 죽어나며, 취업난은 악화된다. 10대부터 90대까지 힘들지 않은 세대가 없다. 그런데 자꾸 명품 매장 줄은 늘어나고 인천공항의 여행 목적 출국자는 매년 최다 규모를 갱신한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2020년의 출국자 또한 2019년보다 많았을 터다. 사람들은 이제 '어차피 아껴봐야'라는 생각으로 '이왕 살 거'라는 명분을 만든 후,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삐까번쩍한' 명품을 사고 싶어 하는 듯하다.

 나는 이런 소비행태가 뭔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현상 자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는 브랜드와 정체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런 생각을 했다. 모두가 줄 서서라도 갖고 싶어 하는 에르메스, 샤넬 가방이 만약 전 국민에게 하나씩 보급된다면, 과연 사람들은 이전처럼 줄을 설까. 명품잡화류는 개인의 실용적 생활을 위해 구매하기보다는 남에게 보이도록 착용해서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모두가 그 브랜드를 갖고 있다면 특별한 목적과 의미가 없는 한 구매 메리트는 하락한다. 남들이 쉽사리 구매하지 못하는 다른 명품 브랜드로 옮겨갈 것이다.

 벤츠는 이 단계에 이른 대표적인 예시다. 매년 한국에서 벤츠의 판매량은 압도적이다. E클래스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라고 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막상 벤츠 매장에 가보면 10여 년 전처럼 '우와, 벤츠'하는 정도가 결코 아니다. 의외로 가격이 접근 불가능한 정도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대중들은 벤츠를 쉽게 살 수 있게 됐다. 도로에 즐비한 벤츠들은 이 사실을 증명한다. 한편 도로에 벤츠가 늘어나자 '진짜 부자'들의 벤츠 구매는 줄어들고 있다. 이제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벤츠로 허세 부리기엔 꼴불견인 시대가 됐다. 벤츠는 고급차의 대명사로 여전히 유효하지만 '엄청 비싼 차'는 그보다 더 윗 브랜드들이 자리한다. 고급 주택가나 타워팰리스 등지에는 벤츠만큼이나 마세라티, 포르쉐 혹은 그보다 더 비싼 브랜드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래퍼들이 억 단위의 돈을 어렵지 않게 버는 시대다. 이들의 가사에는 롤렉스와 포르쉐가 어렵지 않게 언급된다. 그들의 자랑거리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대중들은 롤렉스와 포르쉐가 마치 특정 범위의 성공에 이른 후, 이를 인증받기 구매해야 하는 인증서처럼 여기곤 한다. 이런 구매에 과연 어떤 정체성이 있는가. 그냥 누군가가 '이건 성공의 상징이다.'라고 잠정적으로 정의를 내린 것 말고는 아무 이유도, 이야기도 없다. 그나마 샤넬런은 후일담이라도 풀어놓을 수 있다. "야, 내가 이거 사려고 몇 시간 전부터 백화점 셔터 앞에서 기다렸다가 하이힐 신고 우사인볼트보다 빨리 뛰었지 뭐야."

 그래서 나는 해가 넘어갈수록 남들이 "이런 건 하나 있어줘야지"하는 제품들에 매력을 점점 못 느끼고 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따라하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성격도 한몫하지만,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들을 사면서 이유도 없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여기게 된다. 반대로 남들이 잘 모르는 브랜드이지만 딱 나만의 서사를 갖추고 있는 브랜드에는 매우 욕심이 많이 간다.


 이 글을 쓰면서 '서인석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뭐가 있을까 주변을 쭉 살펴봤다.


 벤츠? 나는 어느새 두 번째 CLA 클래스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 친구의 딸은 나를 '벤츠 삼촌'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벤츠는 이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탄다. 서인석을 전적으로 상징하기엔 어폐가 있다. 차라리 '쿠페형 세단'이라는 디자인을 좋아하는 게 서인석의 정체성에 가깝다. 삼성은 어떨까. 나는 무려 여섯 번째 갤럭시를 사용 중이다. 삼성 사원증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은 여전히 뿌듯하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 GC는 디자인이 예뻐서 샀을 뿐, 브랜드 자체를 잘 알지는 못 한다.


 이렇게 나열하다가 가장 '서인석의 브랜드'였으면 싶은 이름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그건 바로 '파카'다.


 펜의 시대는 저물었다. 지금 쓰여지는 이 글도 타이핑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필기구 매니아다. 만년필에 대한 사내 기사를 썼을 정도로 만년필을 비롯한 필기구에 욕심이 많다. 필사를 많이 하는 편이고, 그러려고 노력한다. 타이핑이나 휴대폰으로 하는 메모는 매우 편하고 빠르지만, 종이에 손으로 쓴 글씨들보다 사랑스럽진 않다.

 나의 첫 만년필이 바로 파카 어번이었다. 대학교 졸업선물로 아버지가 사주신 이 만년필이 내 손에 닿은지 어느새 10년째다. 다 닳아서 여기저기 색이 벗겨져 있고 펜 촉은 부러뜨리는 바람에 한 번 교체도 했다. 이렇게 교체하고 손봐서라도 '만 년 동안' 사용하는게 만년필의 본질이다. 심이 다 되면 쉽게 버려지는 펜들과는 다르게 오래 사용하고픈 품위를 지녔다. 당연스럽게도 10년 손에 머무른 만년필은 10년치의 기억을 담고 있다. 이 어번은 나의 장교 임관식 때 왼쪽 가슴에 꽂혀 있었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임관식이라 몸 수색이 철저했는데, 그 바람에 이 만년필까지 샅샅히 수색당했다. 각종 훈련을 함께 했고, 꽤 등급이 높은 보안문서들과 비문들을 작성했다. 소대원들의 휴가서에 서명을 남겼던 녀석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입사를 함께 했고, 수 년간 사무실 자리를 함께 지키며 노트를 담당한 의리있는 친구다.

 첫 만년필이 손에 잘 익어서인지 파카에 대한 애정은 무한하다. 다음 만년필, 그 다음 만년필, 그 다음다음 만년필 모두 파카의 제품이다. 만년필의 가격은 일반 소비재처럼 선뜻 구매하긴 어려운 금액이다. 그래서 오히려 개인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걸 달성하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만년필을 사게 된다. 매우 드문 구매지만 매번의 구매마다 강렬한 서사가 담긴다. 가령 나는 진급을 하고선 그동안 회사생활 고생했다는 의미로 나 자신에게 파카의 '아이엠 인제뉴어티'를 사줬다. 또 최근 책을 출간하고선 더 열심히 글을 쓰라는 의미로 파카의 '벡터'를 사줬다.

 내 목표 중 하나가 파카의 '듀오폴드' 라인을 갖는 것이다. 파카의 가장 상위 라인이다. 무려 백만원에 육박한다. 물론 몽블랑 같은 최고가의 만년필이나 다른 명품 잡화에 비해선 민망할정도로 저렴하지만 그 꿈마저 저렴하다고 치부할 순 없다. 나는 언젠가 듀오폴드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결코 아주 쉽게 갖진 않을거다. 정말 뿌듯하고 내 자신에게 당당할만한 목표를 이뤘을 때, 그 때 스스로에게 당당한만큼 당당한 걸음으로 매장에 가서 이름을 새긴 듀오폴드를 받아내기로 항상 다짐한다.


 지금도 날개돋힌듯 팔리며 사람들의 우월감을 장식하고 있는 수 많은 브랜드들.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그저 주변에 난무하는 우월감으로부터 더 우월해지기 위해 방어적으로 구매되는 것은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의 브랜드가 적어도 작은 이야깃거리 하나씩은 간직했으면 좋겠다. 브랜드와 내가 연결될 수 있는 정체성이 갖춰지면, 그 브랜드는 '대중적으로' 값진 것을 넘어서 그제서야 온전히 '나'에게 값진 것이 된다. 지금 내 오른손에 잡혀있는 파카 벡터는 2만원짜리지만 적어도 온전히 '나'에게 값지다. 나는 브랜드를 획득하기 위해 땀을 흘려 소비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온전한 만족감을 오래도록 느꼈으면 한다. 이왕 비싼 돈을 들인다면, 공급자들의 주머니 채워주기를 넘어섰으면 한다. 수요자들에게도 브랜드가치 이상의 깊이있는 의미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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