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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Aug 20. 2020

법정의 죽음

TEXTIST PROJECT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태어날 때부터 천주교 신자인 나는 고승들의 철학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법정'이라는 승려의 이름은 잘 알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승려. '무소유'의 상징.
 우연히 법정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보게 됐다. '음, 그래, 역시 대단한 분이시구나' 하면서 스크롤을 하다가 머리를 때리는 그의 말을 봤다. 죽기 전 남긴 마지막 법정의 말.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그는 입적 직전 마지막, 이렇게 우아한 말을 남겼다. 우아할 뿐이랴. 이 짧은 문장 안에 세상을 꿰뚫는 통찰을 드러냈다. 시간과 공간을 버리다니. 그는 물리학자가 아니지만 시간과 공간이라는 미지의 두 객체에 대해 완벽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듯 했다. 그는 그의 세상에서 시간을 내려놓고 공간을 내려놓았다. 덕분에 그는 죽음으로서 사라져 없어지지 않았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시간과 공간을 버려두었을 뿐이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멈춘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버려야겠다'라고 표현했다. 불자의 길로 들어선 후 평생을 실천하고 설파한 무소유의 마침표를 찍어내듯, 시간과 공간마저 단호하게 버렸다.
 그는 '시간과 공간에게서 버려진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버려야겠다'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 자살이라는 예외를 제외하면 죽음의 시점 또한 인간은 절대 선택하거나 가늠할 수 없다. 그는 삶의 시작을 결정하진 않았지만 다가오는 죽음까지 손 밖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라는 말을 통해 그는 시점을 스스로 정했다. '버려야겠다'는 말로 의지를 정했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최고의 종교를 '친절'이라고 답했다. 불교도, 기독교도, 이슬람도 아닌 [친절]말이다. 그의 통찰은 이미 종교와 무관했고, 그릇이 컸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의연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했던 한 문장은 결코 길지 않지만 그의 삶을 대변한다.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법정은 그저 시간과 공간을 버려두고 멈춘 상태로 중생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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