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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Aug 29. 2020

칼의 노래와 서태지 5집

TEXTIST PROJECT

 책 리뷰나 음반 리뷰는 상대적으로 편하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 작품들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서술하는 행위가 가벼운 마음이어선 안될 것이지만, 어쨌든 그렇다. 내 이야기를 만들거나 내 창작물을 만드는 일에 비해 책임감과 무거움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혹은 내가 리뷰하는 책이나 음반이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선정되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읽거나 들었을 때, 불만족스럽거나 별로라고 생각했던 책 혹은 음반을 일부러 리뷰하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 '책 리뷰'나 '음반 리뷰'는 리뷰라는 고상한 단어와 별로 관계없을지도 모른다. '리뷰'라는 있어보이는 단어를 썼지만 사실은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이니깐, 내가 황홀하게 들었던 음반이니깐, 여러분들도 함께 읽고 들어보자'는 [권유]가 더 맞을지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좋은걸 경험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하면서 '내가 느낀 이 좋은 느낌을 당신들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싶은 그 감정.


 쌓아둔 책 리뷰와 음반 리뷰는 어느새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의 모든 글들을 합쳐서 백여개가 된다. 당연히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책과 음반들이다. 나는 오래된 리뷰들도 종종 다시 꺼내보면서 지금 시점에 과거의 책과 음반을 어떻게 다시 표현할지 고민한다. 좋은 감정으로 읽고 들어서 남겨놓은 책과 음반의 이야기들은 꽤 먼 미래에 다시 읽었을 때도, 다시 '권하고' 싶어진다. 

 200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했던 리뷰들이지만 아직까지도 전혀 접근해보지 못한 책과 음반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책과 음반 중 정말 첫 손가락으로 꼽을만큼 개인적으로 의미있고 영향을 끼쳤으며, 지금까지도 신화처럼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책과 이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려면 첫 문장, 첫 단어부터 막중한 책임감과 무거움이 어깨를 짓누르고, 결국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포기한다.


 내 책꽂이에 꽂혀있는 '칼의 노래'는 이미 너덜너덜해진지 오래다. 교과서가 이토록 너덜너덜해졌다면 모르긴 몰라도 서울대, 연고대 근처는 가봤을지 모른다. 칼의 노래를 처음 읽었을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김훈의 문장이 칼처럼 심장에 꽂히는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책 첫 문장부터 마지막 말줄임표에 이르기까지 김훈에 의해 각색된 이순신의 생애 마지막 부분은 충격이었다. 나는 종종 이 감정이 '중2병' 시기의 일시적인 증상이지 않을까하는 의심에, 성인이 되고서도 칼의 노래를 다시 이순신이 칼을 뽑듯 책꽂이에서 꺼내곤 했다. 그때마다 의심이 의심일 뿐이었음을 매번 새로이 깨닫는다. 칼의 노래는 읽으면 읽을수록 심오한 영감과 범접할 수 없는 텍스트의 깊이에 좌절하게 만든다. 


 잠적하다시피 미국으로 건너간 서태지는 뜬금없이 은퇴 2년 후 한국으로 솔로 앨범 하나를 보내왔다. 5집이다. 나는 서태지의 시대에 조금 비켜있는 세대지만 이 5집에서 서태지의 음악이 다른 대중가요들과는 초월적인 무언가라는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30분이 안되는 짧은 음반을 처음 들은 건 대학교 때였다. 평론가들이나 팬들이 여러 수사어구를 동원해서 5집이 얼마나 음악적으로 뛰어난 앨범인지를 발매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설명하지만, 음반을 플레이어에 넣는 행동만으로 굳이 설명들은 필요없어진다. 가사도, 음악도, 앨범 전체적인 구성도 서태지의 생각은 범인들의 그것과 전혀 다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글을 연마하는 이의 추상적인 목표는 항상 '좋은 글', '재밌는 글'을 쓰는 것이다. 이걸 구체화 해보자면, 적어도 나에게는 [칼의 노래와 서태지 5집을 자신있게 리뷰하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칼의 노래와 서태지 5집에 마주한 내 펜은 여전히 망설인다. '감히'라는 단어가 앞선다. 나의 단어와 문장은 여전히 모자라고 무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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