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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Aug 29. 2020

전라남도 장성군

장소프로젝트

 별거 없는 심심한 시골. 게다가 이 곳을 소재삼기에 여기에 대해 과연 나는 아는 것이 많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장소.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군민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전라남도 장성군 이야기다. 



 ROTC 후보생은 학교생활과 후보생 생활을 병행하며 대학교 3, 4학년을 보내게 된다. 그 과정을 낙오하지 않고 통과하면 비로소 소위 계급장을 달게 된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지휘권'을 얻게 된다. 그래서 ROTC 출신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휴학이 없다. 4학년이 마치면 즉시 졸업이고, 임관이다. 2월 대학교 졸업시즌이 후보생들에겐 임관 시즌이다. 계급장을 달게 되면 3월부터 임무 수행에 들어간다.


 당장 부임지로 가는 것은 아니다. 실무와 병과별 교육을 위해 4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 장성은 육군 보병, 포병, 기갑, 화학, 공병 총 5개 병과의 학교가 있다. 육군 최대 군사교육 시설이라고 자부하는 상무대다. (기계화)보병이었던 나는 스물 네살까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장성으로 가서 4개월을 지내게 됐다.



 대부분의 동기 소위들은 장성이라는 시골에 대해 큰 감흥이 없을 듯하다. 소위들의 교육 생활은 생각보다 평탄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할당된 시간만큼 교육을 받는다. 금요일 오후에는 외박을 나간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복귀한다. 넓디넓은 군부대 안에서만 모든 생활이 끝나기 때문에 장성군이라는 곳과 접점은 없다. 



 상무대에 입소하면 후보생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후보생때는 그야말로 '군인화 과정'이다. 인격적으로 타이트하게 대우받고 훈련 또한 봐주는 것이 없다. '못 하겠으면 그만 둬라'는 신호를 후보생 2년동안 보내는 과정 같다. 하지만 소위 계급장 하나 달고 왔을 뿐인데 생각보다 상무대에서는 자유롭다. 물론 부대 밖을 맘대로 왔다갔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관 내에서 운동을 하거나 PX를 가거나 하는 생활들이 얽매여 있지 않다. 대위급 이상으로 구성된 지도장교들이나 교육관들 또한 소위들은 존중하면서 교육이 진행된다. 후보생이 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모진 대우와 과정이 소위 계급장 하나로 사라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의 책임이 부여된다. 이제 정말로 스스로의 자세나 행위, 태도에 대해 소위 한명 한명이 책임져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4개월동안 스며진다.

 



 4개월의 교육과정 중 소위들에게 중요한 일과는 당연히 외박이다. 아무리 후보생시절의 훈련보다 충분히 편해진 교육이라고 해도 집으로 돌아가는 외박을 이길 수가 없다. 


 상무대에 입소한 후에 주말마다 외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나는 걱정에 빠졌다. 준비되는 외박 버스는 서울,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다섯개의 도시로만 이동했다. 장성에서 부산까지는 적어도 네 시간. 부산에 도착해서 울산까지 가려면 두 시간. 게다가 돌아오는 차편까지 생각하면 일요일 아침부터 빠듯하게 움직여야 할 판이었다.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은 토요일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주말마다 장성을 여행하자는 생각이었다. 


 시골이건 도시건, 여행하자고 마음먹으면 볼거리가 없는 곳은 없다. 꼭 랜드마크나 명승지가 있어야만 그 도시가 재밌는 것은 아니다. 좋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주말의 자유가 생겼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자.



 이렇게 장성 트래킹이 시작됐다. 내 트래킹은 매주 반복되었고, 금요일과 토요일의 숙박은 찜질방에서 해결했다. 돌아다니면서 사치까지는 아니지만 군것질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PC방에서 쉴 때도 비싸보이는 간식류를 먹었다. 소위 임관 후에는 월급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작은 돈이었지만 그 때는 충분히 넉넉하다고 생각하며 다녔다. 



 상무대 생활 초기에는 부대에서 장성군내까지 택시를 탔다. 몇 번 타보고 알았다. 상무대가 행정구역만 장성이지, 장성군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거리라는 것을. 편도 택시비만 2만원이 나오는 걸 체험하고서는 버스를 찾아보며 다녔다. 2만원인 교통비를 천오백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장성군내 마을이 밀집된 곳은 한 시간을 채 걷지 않고도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다. 그래서 주말이 새로 올 때마다 나는 코스를 다르게 걷고, 또 군외로도 멀리 걸어봤다. 



 장성성당은 울타리가 없는 성당이었다. 당시 주임신부님은 히피처럼 머리를 기른 분이셨다. 성당 마당에는 염소가 두 마리 있었던 기억이 난다. 푸른 잔디와 울타리 없는 성당, 거기에 염소. 나는 짧은 머리의 군인이었음에도 장성성당에서의 미사를 떠올리면 마치 네덜란드나 스웨덴에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기분삼아 기차를 탄 적도 있다. 장성은 작은 동네지만 기차역이 군 중앙에 있었다. 어디에서 내렸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아주 산 같은 곳에서 내려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물고 산등성이를 마음 내키는 곳까지 올라갔다. 마찬가지로 언제 다시 내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번은 철로 방향을 따라 북쪽으로 쭉 걸어갔던 적이 있다. 걷다걷다 지쳐서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벤치에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그늘에 자리잡고 앉으니 바람이 솔솔 불었다. 그야말로 시골의 바람이었다. 가슴팍에 닿아있는 군번줄에서 땀이 식자 쇠의 냉기가 전해졌던 기분이 생생하다. 이번에도 역시 언제 거기서 일어났고 다시 걷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장성 걷기는 어떤 일관성도 없고 목표도 없었다. 목적지도 없었고 출발지도 불명확했다. 4개월 동안 다른 지역에 갔던 몇몇번을 제외하면 이런 식의 여행이라기 민망한 주말이 반복됐다. 반복이라고 표현했지만 매 주의 방향과 장소가 달랐고 날씨와 기분도 달랐다. 




 조금 부끄럽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성실함과 계획성을 나의 장점으로 꼽아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나의 계획성이 단점으로 느껴질 때도 많다. 나는 계획되지 않은 일을 맞닥뜨리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크고 작은 일들에 항상 디테일한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움직인다. 장성에서의 날들은 내 인생동안 몇 안 되는 계획 없이 생활했던 기간이다. 



 장성에서의 날들은 매우 짧았다. 쌀쌀했던 날씨는 금새 더워졌고 6월이 됐다. 그 동안 나와 동기들은 장갑차 조종을 배우고, 포 사격을 훈련했다. 지휘통제를 매주 익혔고, 기관총 구조와 제원을 공부했다. 유격훈련과 체력단련도 잊을 수 없고, 담당 교관의 배려로 맥주를 마시며 자유시간을 즐겼던 추억도 남았다. 그렇게 소위들은 점점 자신들이 진정으로 무게를 짊어져야 할 부임지로 갈 날들을 맞이해갔다. 장성에서의 교육을 토대로 각자의 부대로 흩어져 서른명 남짓한 소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안았다. 나도 그렇게 장성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발령지인 홍천 11사단으로 이동하게 된다. 



 무계획과 목적없음으로 일관했던 장성에서의 주말. 그와 같은 나날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온 적이 없다. 장성을 다시 방문해 보지도 못했다. 서울에서 한 번 가겠다고 마음먹기에 장성은 도무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여행가자고 하기에 장성은 미안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그래서 특별하다. 아무것도 없었던 곳을 아무 목적과 계획없이 몇 주의 주말동안 활보했던 기억이 장성에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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