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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Sep 05. 2020

이탈리아 로마

장소프로젝트

 로마에서 걸음의 기억은 웅장하다. 큰 길부터 골목까지 가리지 않는다. 로마의 길은 어디든 수백년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테르미니역부터 콜로세움, 판테온까지 어느 한 구간도 놓치기 아까웠던 그런 곳. 분명 지하철로 수 정거장 되는 거리임에도 그 사이사이에 있는 크고 작은 유적들과 성당들을 도무지 놓칠 수 없어서 걸어야만 했던, 바로 그런 기억이 로마에는 강렬하게 남아있다. 


 2016년에 나는 인생 두 번째 로마를 방문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만 일주일을 있었다. 보통 유럽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은 한 국가나 한 도시만을 방문하는 일이 드물다. 국가 곳곳, 도시 곳곳이 모두 유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과거 강대국들의 집합대륙이 바로 유럽이다. 그럼에도 나는 로마에서만 일주일을 있기로 결정했다. 아마 첫번째 로마의 기억 때문일테다.


 다시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첫번째 로마, 2011년을 떠올린다. 3주가 넘는 기간의 유럽여행은 신기한 세상을 본 인상깊음의 덩어리였다. 나는 해외여행 경험이 적었다. 학술연수로 싱가포르 일주일 다녀온게 전부인 나에게, 처음 해외여행지로 정해진 유럽은 별천지였다. 평범한 동네의 평범한 건물조차 이국적이고 역사적이었다. 

 3주지만 결코 길지 않았던 2011년의 유럽여행에서 몇 안되는 아쉬움은 바로 '너무 많은 나라를 방문했던 것'. 열개국, 십수개 도시를 돌았는데, 한정된 시간 때문에 어떤 도시라도 그 지역의 느낌을 큰 숨 들이쉬듯이 마실 시간이 없었다. 거의 한번 땅을 밟고 이동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 기간의 여행중 단 3일만 허락됐던 로마는 나에게 강한 아쉬움을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돌았던 여러 나라 중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었고, 가장 온전히 느끼고 싶었던 곳이었으며, 떠나면서 가장 다시 오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천주교인으로서 처음 시선에 담은 바티칸의 풍경은 도무지 내 일천한 텍스트로는 담아낼 수가 없다. 

 나는 2011년의 이 여행에서 돌아오며 3주간의 감동을 복기했다. 그 과정에서 한가지 액션아이템을 꼽아 기록해두었다. 바로 '서른살 전에 꼭 '로마'만 긴 시간을 들여 다시 와보기'로. 2016년의 로마는 이 기억들을 통해 수행한 일종의 숙제이자 버킷리스트로서의 방문이다.


 이렇게 2016년에 밟은 로마땅은 고작 두 번째일 뿐인데도 매우 익숙했다. 아마도 나는 수년 동안 로마를 그토록 기다리면서 경로 하나하나를 되새기고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공항에서 테르미니역까지 어떤 혼란도 없이 도착했고, 테르미니역에서 숙소까지도 너무 편하게 찾아갔다. 일정동안 로마를 돌아다니면서 길을 잘못 찾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유럽 곳곳에서 횡행하는 소매치기 피해 또한 나와는 무관했다. 돌이켜보면 내 복장이 일반적인 여행객들과는 달랐을 듯 하다. 보통의 배낭여행객들에게 로마는 사나흘정도 시간이 허락되기 때문에 그들의 복장과 가방은 '저 사람은 여행객이다'는 티가 난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들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래, 생각해보면 소매치기 당할만한 물건이 없었기도 하네. 


 내가 잡은 숙소는 2011년 방문때 묵었던 숙소였다. 한인민박이었고,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 곳의 기억도 다정하다. 허름했지만 유럽여행의 어떤 숙소보다 맛있고 풍족한 식사를 제공했다. 부부는 항상 웃는 인상이었고, 일주일에 1~2회는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사장내외에게 인사하며 '5~6년 전에 왔었다'하니, 얼굴이 기억난다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진짜로 기억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다시 왔다는 말에 반가웠을 것이고, 그 때의 좋은 기억 때문에 여기서만 일주일 예약했다고 하니 고마웠을 것이다. 한 숙소에서 일주일을 머물게 되니 거의 터줏대감처럼 지내게 됐다. 나중에는 사장님이 숙소 사람들을 데리고 로마 야경 투어를 부탁할 정도였다. 여행 마지막날 숙소를 나오며 꼭 다음 로마 여행때도 다시 오겠노라고 인사했다. 그만큼 이 한인민박의 기억은 예쁘다. 사장님은 얼마 비싸지도 않은 숙박비를 굳이 깎아주시며 아쉬워 해주셨다. 뒷 얘기지만 2019년에 신혼여행으로 로마를 방문했을 때, 그 한인민박은 그대로였지만 사장은 바뀐 상태였다. 기회가 된다면 꼭 들러서 그 맛있던 로마에서의 한식 아침을 꼭 먹고 싶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어져 버렸다.


 2016년 5월의 로마는 일주일이라는 긴 일정 덕분에 엑셀이 필요하지 않았다. 동선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그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됐다. 하다못해 반나절 정도는 아예 카페 하나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까지 했다. 여유로운 일정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바티칸에도 이틀이나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바티칸은 모든 줄이 길다. 일단 바티칸 들어가는 줄이 길고, 성베드로 성당을 들어가기 위해 서는 줄이 길다. 쿠폴라에 올라가는 줄, 바티칸박물관에 들어가는 줄, 모든 크고 작은 장소를 들어가기 위해 모두 줄을 서야 한다. 로마에서의 일정이 사나흘 정도면 분명 어느 몇 개는 포기해야 하지만 나에겐 일주일이나 시간이 있었다. 모든 줄을 설레임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2019년 신혼여행 때조차 바티칸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했는데, 2016년에 혼자 왔던 바티칸에서는 온갖 곳을 눈과 머리와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바티칸만으로도 하나의 긴 에세이가 나올 법해서 여러 말들을 줄이고, 가장 강렬하고 가슴을 울렸던 장면을 꼽으면 성베드로 성당안에 있는 피에타 상이다. 신혼여행때 같은 천주교인인 아내에게 피에타를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그럴 수 없었다. 


 콜로세움, 판테온, 베네치아광장, 트레비분수, 스페인광장, 온갖 성당들 등 한곳한곳 긴 여유를 두며 감상했다. 아니다, 나는 전문적 지식을 갖고 각종 장소들을 '공부'한게 아니기 때문에 감상보다는 그저 '느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로마에서는 참 많이 걸었는데, 결코 다리가 힘들거나 하지 않았다. 이동을 위해 걷는 시간조차 로마 자체를 온전히 느끼는 행위에 포함됐다. 회사나 동료, 친구들, 심지어 가족까지 잠깐 마음 속 저 한구석에 밀어두고 일상에서 탈출하여 익숙하지 않음에 감동을 느끼는 강렬한 일주일을 로마가 선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품은 일주일은 다시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됐다. 


 여행은 '미션'이 아니다. 어쩌면 첫 유럽여행이었던 2011년은 '미션'처럼 여행을 수행한 것일지 모른다. '나는 어디어디를 갔었어.', '나는 어디어디를 봤어' 같은. 미션으로 수행했던 여행의 아쉬움은 2016년에 다시 '진짜 여행'을 할 수 있게 안내했다. 과연 나의 다음 '진짜 여행'은 언제 다시 행해질 수 있을까. 그게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그 시간 전까지는 해야될 일과 만나야 될 사람들을 만나며 익숙한 풍경 속에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눈과 마음에 담겨있는 바티칸을 떠올리다 직접 찍은 이 사진을 보면 사진이 기억에 비해 참 조촐하다. 사진에 담기는 장면보다 마음에 담기는 장면이 덜 선명할지 몰라도,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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