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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Dec 07. 2020

인스타그램

TEXTIST PROJECT

 누가 뭐라고 하건 상관없이, 블로그건, 미니홈피건, 페이스북이건, 나는 글을 쭉 써왔다. '글'이라는 단어는 마치 쓰는 사람을 대단하게 포장하는 것 같아서 사용하기 민망스럽긴 한데, 어쨌든 '글쓰다'는 동사를 다른 말로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계속 이어간다. 

 이렇게 매체들을 바꿔가면서 글을 썼는데, 당연히 여기에는 시대의 흐름도 수반된다. 싸이월드의 다이어리나 게시판에 썼던 글들보다는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 좀 더 봐줄만 하고, 블로그에 쓴 글은 그것보다 더 봐줄만 하다는 뜻이다. 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어서 아주 옛날에 쓴 글이지만 마음에 들기도 하고, 비교적 최근 글이지만 면전에 마주하기 힘든 글도 있다. 

 어쨌든 별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내 글들은 글의 완성도나 만족도와 별개로 페이스북, 네이버블로그, 브런치등의 공간에 각각의 용도나 갈무리를 거쳐서 어느 정도 정형화된 형태로 실어지고 있다. 사내기사까지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겠다. 


 사실 서너 공간에 각각의 글들을 업로드하고 편집하고, 관리하고, 창작하는건 불편한 행위다. 한 공간에 모아지면 좋으련만 쉽지가 않다. 노력해보지 않은건 아니다. 가령 페이스북에 실어진 글을 싹 복사해서 블로그로 옮긴다거나, 블로그에 있는 모든 글을 싹 재편집해서 브런치로 옮긴다거나 하는 행위 말이다. 

 몇몇 글들은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창구를 일원화하는데는 실패했다. 글을 제공하는 플랫폼의 형태에 따라 주는 맛과 퇴고때의 감각이 완전히 달라서, 페이스북에 쓰여진 글을 네이버로 옮기거나 네이버에 쓰여진 글을 페이스북으로 옮기거나 하기엔 단지 복-붙 이외의 엄청난 공수가 든다. 그냥 현재의 다양한 창구에서 각 창구의 맛을 최대한 살리며 글을 보존하고 창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브런치는 매체들 중 외부로 반출이 금지되는 사내기사를 제외하면 가장 책의 형태에 가깝게 편집된다. 아마 다음 책은 브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 같은데 이 이야기는 좀 더 아껴놓겠다. 책이 나오고 난 뒤에 해야 맞는 말일 듯.


 사용하는 매체 중 비교적 최근에 개설한 인스타그램도 하나의 창구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으로는 '글쓰기'행위를 딱히 하지 않는다. 그냥 SNS의 역할일 뿐이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개설할 때는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책을 홍보하는데 썼고, 지금은 일상을 공유하고 자랑하는데 활용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스타는 사진과 동영상에 특화된 매체다. 내가 남의 것을 볼 때도, 정독보다는 슥 한번 스크롤하면 끝이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햇수가 늘어갈 수록 사실 여기에도 글쓰기 기술이 필요했음을 깨달아간다. 사진이 메인일 뿐이지 텍스트가 안들어가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사진을 메인으로 두되 가장 적절하고 날카롭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텍스트 몇 줄로 임팩트를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준다. 게다가 해시태그를 통해 '당신이 쓰지 못한 내용을 p.s. 정도의 용도로 활용해라'며 툭 던져주기까지 하는 느낌이다. 의도치 않게 인스타그램은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전혀 써보지 않은 글을 쓰도록 훈련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 훈련의 결과는 미미하다.

 '명함을 정리하며'에 썼던 글 중에 '짧은 글쓰기'에 자신없음을 한탄한 부분이 있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나서는 더더욱 절절하게 느낀다. 자꾸 구차하게 길어진다. 


 그럼에도, 결국, 어떻게든, 어떤 게시물이든, [완료] 버튼을 누르게 된다. 인스타그램에서 [완료]버튼을 많이 누르게 될 수록 내 글은 좀 더 많은 능력을 갖게 될까. 다른 창구들에 존재하는 아끼는 글들에 도움될 양념이 되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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