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Dec 07. 2020

과거의 미래였던 현재

TEXTIST PROJECT

 상상은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상상에는 아름다운 그림만 존재하지 않았다. 나름 상상하는 시점에서는 합당한 걱정거리들도 상상 속에 포함되어,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대비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는 으레 '화석연료의 잔여량'이 언급되었다. 정확한 숫자들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석유의 연한이 40여년 정도 남았다고 적혀있었던 기억은 난다. 아니, 그보다 더 짧게 적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숫자가 언급된 이 서술은 단지 상상이 아니라 당시로서 합리적으로 추측한 결과값이었으리라. 사람들은 화석연료의 잔여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합리적인 추측에 대해 걱정어린 상상들을 더했고, 그래서 미래를 준비했다. 효율은 여전히 매우 미흡하지만 대체 에너지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본 저 내용이 족히 20년은 지났다. 하지만 '화석연료 가용 연한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어서 십수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언급은 보지 못했다. 그것이 대체연료를 성공적으로 찾아서인지, 아니면 추가로 확인된 석유 매장량이 더욱 늘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의 합리적이었던 추측은 틀린 듯 하다. 


 1995년도에는 '20년 후 미래'를 예측한 특집기사가 대형 언론사에 게재되기도 했다. 2015년을 예측했던 기사에는 '암 완전 극복', '달 여행', '로봇 비서', '화상 통화' 등의 큼지막한 표제들이 걸려 있었다. 적어도 여기서 한 가지는 확실히 실현됐다. 그것은 바로 화상통화. 하지만 나머지 예측들은 아직 유효하지 않다. 암은 여전히 환자들을 힘들게 하고, 달은 멀다. 로봇 비서가 실현되지 않은 표제들 중 그나마 가까워 보인다. 그.나.마.

 사람들은 걱정거리를 일부러 만들어내기보다 낙관적 세상을 상상하며 그 안에 스스로가 존재하기를 희망한다. 1995년의 그 기사에서 꿈같은 발전 모습을 꽤 구체적인 기술에 대입하며 상상했던 점은 인간의 속성을 대변한다. 


 인간의 상상은 폭이 넓어보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거나 완전하진 않다. 그래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생활이 바뀌어 버리기도 한다. 

 나는 어릴 때 매년 점점 낮아지는 컴퓨터 가격을 보고 '앞으로는 가정마다 머리 수만큼 개인용 컴퓨터가 생기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컴퓨터는 점점 작아졌고 또 점점 가벼워졌다. '내 생각이 맞았구나' 하며 뿌듯해 했는데, 기술의 발전은 아예 내 상상 밖 수준이었다. 이젠 컴퓨터가 가정에는 필요없어지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의 데스크탑 보유율은 줄어드는 대신, 모바일 환경이 이를 대체해가고 있다. 

 그래도 자동차는 그나마 인간의 상상에 맞춰 발전하는 것 같다. '영광의 레이서' 같은 만화영화에서 봤던 자동차에 가까운 상용차들이 점점 생산량을 높여가고 있다. 자율주행기술은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테슬라의 모델들은 이미 기본적인 옵션으로 자율주행을 채택한다. 크루즈컨트롤로는 이제 '자율 주행'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하다. 그 정도로 익숙하고 높은 단계가 아닌 기술로 인식된다. 


 나는 IT회사에 7년째 재직 중이다. 다른 이들이 '블록체인', '인공지능', '클라우드' 등을 얘기하기 시작한 때보다 2~3년 일찍 저 단어들을 만났다. 이는 나의 자부심이나 자랑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내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사실이다. 저 기술들을 진작에 알고 있으면서도 관련 회사의 주식이나 기술에 미리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개탄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주식을 사진 못했지만 업종의 중심에서 기술을 체험해가는건 설레고 신기하다. 사무실에서 어떤 기술에 대해 불꽃 튀도록 토론하고 연구과제로 실행하면, 빠르면 6개월, 늦으면 1~2년 후에 그 기술이 세상에 부상하더라. 덕분에 나는 매번 기술에 기반한 미래의 모습을 좀 더 일찍 상상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IT 분야의 기술이 아니더라도 과거에 상상했던 미래는 다양하다. 가령, 나는 적어도 2010년 쯤에는 지금 모습의 우산말고 좀 더 편한 어떤 제품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 태풍에 날아가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몸으로 비가 들이치는 그런 우산 같은 물건 말고, 좀 더 간편하고 효율적으로 비를 막아줄 물건 말이다. 2020년인 지금도 나는 가방에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닌다. 

 혹은 고등학교 때까지도 나는 내가 20대가 되면 군대는 의무가 아닐 줄 알았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과거에 생각한 미래의 모습에, 길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코부터 턱까지를 숨이 차도록 가로막는 마스크를 끼고 다닐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터미네이터가 인류를 말살시키면서 기계와의 전쟁이 시작되면 어떡하냐는 비관적인 상상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과거에 상상한 미래는 현재가 됐고 많은 이들의 상상은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사라졌다. 상상 중 대부분은 특정 시점의 상상과 기대, 혹은 걱정으로만 드리워졌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세상은 다시 상상하고 미래로 다가간다. 상상이 맞건 틀리건, 미래는 곧 현재가 된다. 그 현재는 다시 과거가 되고, 모든 순간에 인류는 상상을 씌운다. 

 앞으로는 과거가 될 현재에서 기대 섞인 상상을 이 글에 놓는다. 어쩌면 소박할 수 있는 상상이다. 되도록이면 가까운, 현재가 되어버릴 미래에, 마스크를 풀고 온전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외출할 때마다 휴대폰보다 마스크를 먼저 챙기던 어떤 시절을 현재가 아닌, 그저 과거로만 기억할 수 있는 때가 서둘러 다가와주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인스타그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