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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Dec 07. 2020

결혼의 인지

TEXTIST PROJECT

 결혼한지 갓 1년을 넘긴 서툰 남편이다. 

 인간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주로 받는 질문은 '뭐가 제일 많이 달라졌냐', '싸우지 않느냐', 혹은 '어떨 때 결혼을 실감하냐' 정도.

 '어떨 때 결혼을 실감하냐'는 질문에 결혼 전에 막연히 상상했던 유부남 서인석의 대답은, 화려하거나 다이나믹한 대답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결혼한 사람이구나'를 실감하는 순간은 매우 작고 사소한 데에 있었다.


 전역 이후 나는 꽤 긴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앞머리를 내리면 눈을 훌쩍 넘어서 코까지 오는 그 정도 길이다. 밖에서야 세팅된 머리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어딘가 나가지 않는 주말처럼 정리 안 된 머리로 생활할 때는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머리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 년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누나나 여동생이 없기 때문에 머리띠가 있을리가. 그렇다고 내가 쓸 머리띠를 굳이 사긴 또 꽤나 아깝다. 

 결혼 후에는 내 머리띠가 생겼다. 흘러내리는 머리의 불편함을 알고, 아내가 하나 줬다. 지금도 내 머리에는 머리띠가 자리잡고 있다. 감지 않아서 치렁치렁 쏟아지는 머리카락을 잡아주고 있다. 


 빨래를 하고 세탁물을 꺼내면 내가 입지 않는 옷들이 나온다. 아내의 옷이다. 남자들의 옷은 왠지 딱딱 개키기 쉬운 모양인데, 여자의 옷은 안 그런 옷도 많다는 걸 결혼 후에 알았다. 소재도 그렇고, 모양도 반듯이 개지지 않는 애매한 옷들이 존재한다. 

 결혼 후 처음 빨래를 갤 때는 이 옷들을 어떻게 개켜야 하는지 난관이었다. 1년여가 지난 지금은 나름의 요령이 생겨서, 정리 후 개켜진 아내의 옷들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다.


 결혼으로 인해 생기는 사소하고 작은 변화는, 오히려 결혼이라는 큰 변화를 자주 인지하게 해준다. 

 인생에서 크나큰 일이라 생각했던 결혼은 사실 작은 것에서부터 느껴져야 하는 일이었음을 머리띠와 빨래가 되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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