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인석 Feb 23. 2021

길의 끝

TEXTIST PROJECT

 서울에서 속초까지는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다. 경로상에는 가평을 지나 춘천, 홍천을 거쳐 인제, 양양에 이른다. 양양에서 북쪽으로 가면 속초, 남쪽으로 가면 강릉이다. 

 반도인 대한민국의 특성상 길의 끝은 많고 다양하다. 삼면이 바다이다보니 바다를 품은 도시는 모두 길의 끝을 소유하고 있다. 이 땅에 바다가 아닌 길의 끝은 오로지 국경선 뿐인데, 그 국경선은 온전히 타지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인지 애매한 국가와 맞닿아 있다. 


 아내와 계획없이 동쪽으로 떠난 날, 우리는 시원하게 뚫린 바로 그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달렸다. 2년의 젊음을 바쳤던 홍천을 지나가면서 화양강 휴게소에 잠시 머물렀다. 커피와 번을 함께 먹었다. 별 말없이 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지만 충분했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북쪽 인제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작은 차 안에서 함께 바깥 풍경도 보고,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찬찬히 시간을 느꼈다. 

 인제와 속초에 잠깐씩 머물렀다. 역시나 이유는 없었다. 햇살도, 미세먼지도 좋은 날이었다. 목적지가 없었던 우리는 속초에서 북쪽으로 향했다. 이미 지도상에서 우리 부부는 상당히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왕 여기서 가볼 수 있는 가장 북쪽까지 가보기로 했다. 속초 바다를 오른편에 두고 북쪽으로 쭈욱 올라갔다. 고성 땅은 금새 바퀴에 닿았다. 

 빠르게 달리진 않았고, 차 밖으로 몇번 나가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달라지는게 느껴졌다. 짙은 무거움이 도로를 점점 짓눌러왔다. 녹색 얼룩무늬의 콘크리트 차단목이 점점 잦게 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과 차는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현저히 줄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활발하고 발전된 나라가 얼마나 큰 무거움을 저변에 가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지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명사화된 단어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화진포 해수욕장을 지나고부터는 아름다운 바닷가를 오른편에 두고 있음에도 결코 휴양지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알 수 없는 긴장된 공기와 침묵들이 바깥의 산과 밭 켜켜이 스며들어 있었다. 

 명파 해수욕장은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해수욕장이다. 과연 최북단의 해수욕장은 어떤 모습일까. 차를 세우고 내려봤다. 해수욕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행객들을 위한 건물들은 굳게 잠겨있었다. 사람이나 주차된 차량은 당연하다는 듯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해수욕장 하면 쉬이 떠올릴 수 있는 모래사장과 바다의 조화는 바닷가를 엄중하게 가려놓은 철조망이 대체하고 있었다. 바다는 길고 높게 바다를 가려놓은 철조망 너머에 있었다. 북쪽으로 향해오면서 느낀 공기의 무거움은, '해수욕장'이라는 단어와 모순되는 철조망이 현실로 증명해 주었다. 바다는 훨씬 차가워보였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동해였다. 철조망 너머에서 왼쪽으로 아주 먼 곳에 있는 바다는 북한의 바다일 것이다. 그 바다의 어떤 물들은 금강산 주변의 땅을 건들고 여기까지 왔다갔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막함 때문에 잠시조차 머무르기 힘든 명파 해수욕장을 서둘러 벗어났다. 다시 더욱 북쪽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작은 톨게이트가 보였다. 하지만 무장한 군인들이 단단하게 여기를 지키고 있었다. 톨게이트가 아니었다. 민간인 통제선의 시작점을 알리는 게이트였다.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차를 돌려서 남쪽으로 돌아섰다. 해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저물기 시작했다. 


 피곤했는지 아내는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자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에 들었다. 차는 왔던 길과는 조금 다른 산골길을 통해 남쪽으로 향했다. 어둠이 깔린 차창 밖 풍경들을 북쪽으로 밀어내며 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길의 끝에 대한 생각. 길의 끝에는 어떤 사색이나 철학적 지평들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 그저 허무와 총구가 모든 생각을 차단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가치 판단의 여부를 제안하고 있지 않은, 그저 사실이었다. 그래, 맞다. 바로 사실, 현실일 뿐이다. 

 남쪽으로 점점 더 달릴 수록 다시 켜진 불들은 늘어났고, 보이는 차들도 많아졌다. 인제를 지나 홍천에 진입하자 명파 해수욕장의 철조망이 영겁 거리의 꿈인 것 마냥 차들은 북적거렸다. 하지만 분명 해수욕장의 철조망과 제진리의 민간인 통제선은 뇌리에 박혀버린 현실이었다. 고작 100km 가량의 직선거리를 두고 이 땅은 마치 환상 속의 풍경처럼 모순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아내는 서울양양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잠에서 깼다. 서쪽 서울방향으로 향하는 정체구간에 들어서서 우리는 현실의 이야기들로 돌아왔다. 물론 지나온 곳도 엄연한 현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결혼의 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