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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우 Oct 11. 2021

나도 뭐 대단한 계획은 없었어.

우연찮게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다.

현재 성수동의 한 마케팅 회사에서 BM기획을 하고 있는 이시우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2016년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10월까지 '디자인'부터 '콘텐츠 기획/제작', '서비스 기획', 'BM기획'까지.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테크트리를 타기보다 이것저것 다 해본 잡식성 직장인이다.

이 매거진에 올라갈 글들은 내가 스스로의 족적을 돌아봄과 동시에, 우연히 글을 읽게 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조그만 마음으로 시작한다.


아무래도 몇 년이 지난 일들은 많은 내용이 요약한 체 적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글의 주제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점까지 따라온다면 그땐 구체적으로 적어보겠다.


"의상에 관심이 없던 의상학도"

초등학교를 제외한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맨날 교복 입고 다니던 나는 패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뜬금없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 '의상학과'에 입학하게 돼버린다.

어렸을 적부터 학교에서 조사하는 장래희망란(부모님이 생각하는 아이의 장래희망)에 어머니는 내가 쓰는 직업들을 따라 써주시며 언제나 지지해주셨다. 화가, 수의학자, 캐릭터 디자이너, 공무원, 광고인(아. 지금은 광고인?으로 지내고 있다.) 등등. 참 우리 어머니도 따라 써주시면서 얘는 나중에 뭐가 될까 많이 궁금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간다.

어쨌든 뜬금없이 '의상학과'에 입학했을 때도 어머니는 별다른 질문을 하시지 않고, "뭐 네가 생각이 있겠지."라는 말로 대학교 입학을 축하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하루하루가 술이었다. 사람들 사귀는 게 재밌었고 술자리가 재밌었다. 그렇게 군대를 다녀오고, 학생회장을 하며 근근이 학교 생활을 하다 갑자기 졸업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부리나케 사색하는 시간도 가져보고,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수업들도 들었다. 짧은 시간 안에 자격증 3개를 쉽게 땄고 여전히 졸업은 무서웠지만 이상하게도 먹고 살 걱정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용돈을 벌기 위해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냥저냥 지낼 뿐이었다.



(대충 군대를 졸업하고 학교에 복학해 적응하던 2014년부터 썰을 풀어보자.)


"너무도 듣기 싫었던 그 수업, 터닝포인트"

나는 의상학과가 어떤 수업을 듣는지 설명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모든 수업이 재미없었지만 그중에서도 CAD라는 수업이 있었고, 그 수업은 입체적인 의상을 만들기 전 2D 도식화를 디자인을 하는 수업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재미없었던 그 수업이 전공 수업이었던 게, 어쩔 수 없이 수강 신청했던 게, 그 수업에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툴을 가르쳐준 게 내 인생을 특별하게 만든 결정적인 기회였다.


당시 광고인의 꿈을 꾸고 있었고, 한창 기발한 '인쇄광고'들에 꽂혀있는 상태였던 나는 상상한 이미지를 밖으로 표현하는 게 좋았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가 그걸 직접적으로 도와주던 툴이다 보니, 유난히 흥미가 생겼나 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 시간엔 하루 종일 강의실에서, 집에서 포토샵을 만지작거리며 공부하곤 했다.


초등학생 때 캐릭터 디자인 전국 대회 3등을 했던 만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나는 2014년 여름방학 내 침대에 누워 결심한다.

"인쇄광고나 그림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건 똑같으니까...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도 배웠겠다. 그림을 다시 그려보자."


"나도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지"

초등학생 땐 여러 캐릭터들을 그린 후 연습장들을 모아두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디지털 시대가 아닌가! (것도 벌써 7년 전 얘기지만....) 난 한창 핫했던 페이스북에 내 그림들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왠지 친구들이나 동기들에겐 보여주기 부끄럽더라... 그래서 구독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올리기로 했다.

디자인 툴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손그림이 익숙했기에 연습장에 스케치 후 라인을 따고 스캔한 다음, 포토샵으로 색상을 칠하는 작업으로 첫 그림을 올렸다.

이런 식으로 손그림 작업 후 포토샵으로 색상을 채우거나, 일러스트레이터로 라인 작업을 별도로 한 후에 색상을 채웠다.

당시엔 그림을 빨리 올려야겠다는 마음보다도 연습이나 많이 해보자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더 빠르게, 하루에 3~4개씩 그림을 올렸던 것 같다. 아래 그림들이 당시에 작업했던 그림들인데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시에 난 왜 저 누리끼리한 필터에 꽂혀있던 걸까... 아마 인스타그램 기본 필터인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20~30개 정도의 그림을 올려놓았을 때, 정말 단 0.00001%도 생각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페이스북 광고 관리자 따위 (지금은 내 월급을 책임지는 주요 기능) 없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내 그림이 건너 건너 퍼져나갔고, 무려 좋아요 10만 개가 찍힌 것이다.


그 옛날, 누군가 나에게 말실수를 세게 했나보다. 고맙다 그 때 말실수해줘서

매일 알림이 오고 댓글이 달리고 심지어는 친구를 통해서 내 그림을 봤다고 연락이 왔다.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내게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러주는 분들도 생겼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계기'이자 '내 인생, 남들과는 차별된 나만의 포트폴리오'

지금까지 내 인생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첫 발걸음은 거창한 계획도 큰돈도 필요 없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만, 누군가 내게 어떻게 한 거냐고 물어본다면 최근에 본 넷플릭스 DP의 명대사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뭐라도 해야 뭐든지 바뀌지 않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DP' 대사 중

다음 글에선 이렇게 시작된 일들도 어떤 기회들을 마주하게 됐는지,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이 글이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디테일하고 고난과 역경, 해결 방법에 대해 더 생생하게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첫 번째 글은 여기서 줄인다.



이시우 홈페이지 : http://leesiwoo.co.kr

이시우 인스타그램 : instagram.com/leesiwoo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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