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문학기행, 세번째 이야기
계나가 사는 동네는 아현동 재정비 촉진지구이다. 서울 집값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서울 마포구의 아현동’이라하면 집값이 꽤 나갈 듯 싶다. 하지만 계나의 동네를 쉽게 상상해 보려면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네 가족이 모여 살던 반지하 집을 생각하면 된다.
오래된 주택과 반지하 방, 엄청난 경사의 수많은 계단 그리고 전신주 위로 어지럽게 엉켜있는 전선. 그것이 바로 계나가 살던 동네의 풍경이다. 지하철 2호선 이대역과 충정로역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노후화된 주택단지가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품고 있는 곳이다. 좁고 어둑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창문도 제대로 없는 다방과 술집, 점집들이 오종종 모여있다.
“아현동 뒷골목이 떠오르더라고. 아현동 뒷골목에는 ‘촛불'이니 ‘만남'이니 ‘개미굴'이니 하는 코딱지만 한 술집이 많아. 용화선녀니 처녀보살이니 하는 점집도. 자동차라도 한 대 골목에 들어오면 옆으로 서서 더러운 담장에 등을 붙이고 길을 내줘야 해.” (p.32)
이 지역은 가구점이 밀집한 ‘북아현동 가구거리’ 맞은편이기도 하다. 만리동 고개 아래쪽에 자리 잡아 경사가 심하다. 특히 5호선 애오개역 주변은 만리재와 애오개가 있는 언덕마을인 만큼 고지대에 있는 주택이 많다. 이 지역의 이름마저 고개가 많고 경사가 심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일단 아현은 애오개의 한자 이름이다. 애오개는 그 옆 충정로와 마포구 아현동을 잇는 고개의 옛 이름이다. 옛날 도성에서 어린아이가 죽으면 이 고개 밖으로 묻어서 '아이고개'라고 했던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아이고'하며 힘들게 넘어서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또 중구 만리동 큰고개(만리재)보다 작은 고개이므로 아이고개라고 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기생충’의 스틸 컷에는 엄청난 경사의 계단이 보인다. 파란색 표지판을 자세히 보면 이 골목은 아현동 ‘환일1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하면 영화 속 장면처럼 경사지고 가파른 언덕에 오래된 빌라가 빽빽이 모여 있다. 이 지역에 재개발 사업이 추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몹시 더디게 진행되다 보니 동네가 전반적으로 낡았다. 그러는 사이 아현1구역(699번지)이라 불리는 이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현동 일대는 뉴타운으로 바뀌었다.
소설 속에서 계나가 중학생 때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돌았던 것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계나의 아버지는 재개발만 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10년이 넘도록 그 재개발만 바라고 계셨다. 그렇게 영영 안 올 줄 알았던 재개발이 계나가 호주 이민을 준비할 때에야 진척되었다.
그럼 그동안 계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어렸을 때 쥐 잡는 끈끈이에 쥐가 붙으면 비명을 지르면서 재미있게 구경했다는 엄마의 이야기, 아현고가도로에서 폐지를 줍느라 무단횡단하다가 뺑소니차에 치여 돌아가셨다는 계나의 할머니 이야기, 동네가 다 연탄을 피웠는데 계나 친구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은 이야기 등을 종합해보면 어렵게 살았을 계나의 삶이 그려진다. 계나가 어른이 된 후 상황은 좀 더 나아졌을까 싶지만, 소름 끼치도록 여전했다.
“언니, 거기 봉지에서 과자 좀 꺼내 줄래?”
예나가 내 뒷자리를 가리키며 부탁했어.
“아, 무슨 초콜릿인가 보네?”
내가 쿠키 모양으로 생긴 과자를 몇 개 꺼냈어.
“초코 과자는 안 샀는데.”
예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앉은뱅이상에 올린 쿠키를 보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어.
자세히 보니까 과자는 노란색인데, 그 표면을 개미가 새까맣게 뒤덮고 있어서 초콜릿으로 보였던 거야. 혜나 언니나 나나 모두 흠칫 놀랐지. 우리 집에 개미가 많은 건 알았지만, 와, 그때 그건 정말. (p.101)
예전에는 쥐가 나왔지만, 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집의 위생 상태가 나아진 건 아니었다. 쥐가 사라지자 바퀴벌레, 바퀴벌레 다음에는 개미떼가 나왔다. 변화는 있지만 더 나아진 건 없는 상황에서 계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 하더라도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며 나아지는 게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 또한 한국에 가만히 있다고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했다. 동네에 있던 아현시장만 해도 예전에는 번창한 곳이었지만 이제는 대형마트와 쇼핑몰, 백화점 등에 밀려 재래시장으로서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니. 빠른 변화 속에서 까딱 흐름을 놓치면 오히려 더 나빠지기 십상이다.
아, 혹시 궁금할까봐 조금 부연설명을 해보자면, 아현시장은 1930년대 초 서대문구 북아현동 굴레방다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생활필수품들을 사고 팔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6・25전쟁을 거치고 1960년대에 들어서며 남대문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규모 시장으로 발전했는데 국가기록원에 전시된 사진을 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아현시장을 만나려면 2호선 아현역 4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여기가 맞나 싶을 때쯤 '아이가 행복한 아현시장'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간판이 반긴다. 아현이라는 이름이 '아이고개'에서 왔다던 유래 때문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 그대로 아이들이 오기에 즐거운 시장일 듯하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길에 상점들이 양옆으로 들어서 있는데, 그 구간을 총 6개로 나누었다. 그 구간마다 아현이길, 수현이길, 다람이길, 황금이길, 미도길, 힙쏭이길로 귀여운 이름을 가지고 있고, 각자 대표 캐릭터도 있다. 아현역 4번 출구에서 나와 맨 처음 들어섰던 곳은 그 중에서도 황금이길로 이어져 있는 4구역이었다.
시장이라면 역시 먹거리가 빠질 수 없지. 혹여나 주전부리를 파는 집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양옆에 늘어선 가게를 매의 눈으로 스캔했다. 가는 날이 장날인 것인지 장날이 아닌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문을 연 곳이 몇 군데 없다. 점점 더 빈 매장이나 문 닫은 가게가 많이 보인다. 더 안쪽에 더 맛있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며 입구 쪽 가게들을 모른 척했던 것이 후회됐다. 그나마 눈이라도 즐거워서 다행이랄까.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지 않고 장을 볼 수 있도록 비 가림막을 씌워놨는데, 곳곳에 시장에 관련된 아이들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더 깊숙이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 자주 길을 비켜주어야 할 만큼 길이 좁아진다. 좁은 골목 틈으로 선녀보살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있는 집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시장이 끝났다. 그리고 그 너머로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계나가 이곳에 살았더라면 조금은 더 나은 삶을 꿈꿨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아현동은 2000년대 초부터 재개발 열풍을 타고 한 구역, 한 구역씩 이국적인 이름의 브랜드 아파트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아현 1구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재개발이 완료된 상태고, 집값 또한 매년 아주 성실하게도 오르고 있다.
아현동 재정비 촉진지구에 살던 계나네 식구들 역시 18평 아파트를 분양받았었다. 1억 원을 더 내면 온 가족이 24평으로 갈 수 있었고, 계나의 아빠는 계나에게 2천만 원을 빌리고 여기저기에서 대출을 끌어모아 더 큰 24평 집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계나는 더는 미래가 보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2천만 원을 미래가치 대신 현재의 행복을 실험하는 데에 쓰기로 마음먹는다. 아직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차가운 3월, 한국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여기까지 쓰면서 “계나야.. 아니야.. 왜 그랬어.. 그 집값이 지금 몇 배가 뛰었는지 알고 있니?”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는 사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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