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문학기행, 네번째 이야기
출퇴근길이라도 좀 편했으면 계나가 안 떠났으려나. 직주근접의 행운을 가진 직장인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집에서부터 먼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 아니, 지하철이라 쓰고 지옥철이라 읽어야 한다. 계나 역시 그 고통을 알기 위해서는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의 출근길을 무조건 체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신도림에서 사당까지는 몸이 끼이다 못해 쇄골이 다 아플 지경이야. 사람들에 눌려서. 그렇게 2호선을 탈 때마다 생각하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고. 나라를 팔아 먹었나? 보험 사기라도 저질렀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도 생각해. 너희들은 무슨 죄를 지었니? (p.16)
거의 같은 구간을 따라 출퇴근했던 경험에 따르면, 저런 생각은 솔직히 와 닿지 않는다. 전생에 죄를 저질러서 그 벌로 현재 지옥철을 타고 있는거냐고 찬찬히 되짚어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오히려 처절함을 느끼지 않도록 정신을 놓고 혼이 빠진 상태로 다녀야 차라리 덜 힘들었다. 아니, 회사 생활도 힘든데 회사로 가는 길이 이리도 험난하면 어쩌란 말인가. 자가용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토할 것 같은 교통 체증과 주차 전쟁을 치러내야 하니, 결국 전쟁이냐 지옥이냐의 문제일 뿐 도심 내 출퇴근은 너무나 힘들다.
‘계나처럼 2호선 타시는 분들, 모두 힘내세요!’라고 말하기엔 9호선 이용 출퇴근자가 서운하려나. 현재 서울 지하철 혼잡도 1위 구간은 9호선 구간이 모조리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혼잡도를 말할 때 지하철 한 칸에 160명 정도가 탔을 때를 100%로 기준 삼는다고 한다. 한 칸에 사람들이 여유롭게 서 있거나 앞에 사람들이 서 있어서 시야가 다소 막히는 정도다. 그런데 염창역에서 당산역 구간을 보면 혼잡도가 200%를 넘어간다. 한 칸에 320명 이상이 타있다는 의미인데, 이는 서로 몸과 얼굴이 밀착되어 이미 숨이 막히는 상태다. 이러한 출퇴근길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아마 이게 아닐까. “집에 가고 싶다!”
어느 구간이든 한 번이라도 지옥철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지하철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그 순간만큼은, 지하철이 아니라 아예 한국을 떠나고 싶을 수도 있다. 단순히 혼잡한 지하철에서의 탈출을 넘어 매일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상황 자체를 벗어나고 싶은 것일 테니.
생각해보면 계나의 일상 중에서 지옥철에서의 시간이 엄청나다. 계나는 서울을 크게 한 바퀴 두르는 2호선을 따라, 집이 있는 아현역부터 역삼역의 회사까지 출퇴근했다. 최소 환승 조건으로 길 찾기를 해보니, 아현역부터 서울 북동쪽을 거쳐 시계 방향으로 2호선을 쭉 타고 가면 역삼역까지 43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오잉? 그런데 계나가 신도림역에서 사당역을 거쳐서 가니 쇄골뼈가 다 아플 정도라고 했는데. 그 동선처럼 아현역부터, 이대역, 신촌역을 따라 역삼역으로 향하는 반시계 방향을 따라 확인해보니 46분이 걸린다. 2호선을 타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다. 원형 구간의 반대편 끝으로 이동할 때, 별 생각 없이 익숙한 방향을 선택하는 거다. 시계 방향으로 반대쪽 노선을 따라 출퇴근했더라면 시간도 조금 더 짧고 사람도 적은 편이라 계나가 조금은 덜 힘들었을 텐데. 미리 알려주지 못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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