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문학기행, 다섯번째 이야기
아니, 아무리 출퇴근이 힘들어도 날씨라도 좀 따뜻했다면 나았으려나. 물론 모든 이별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이랬더라면 우린 안 헤어졌을까” 라고 청승을 떠는 시기가 있지 않나. 그럼에도 계나는 한국과 헤어졌겠지만, 괜히 날씨를 가지고 미련을 부려본다.
사실 출퇴근 다음으로 한국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게 추위였거든. 한국에 있을 때에는 매년 9월만 되면 벌써 올해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졌어. 농담이 아니라 매해 겨울 동상 위기를 겪었어. (p.32)
한국의 겨울 추위가 귀가 떨어져 나갈 만큼 매섭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계나가 말하는 추위는 일반적인 추위를 넘어선다. 아마도 계나가 체감하는 추위는 계절적 추위에 심리적 추위가 더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 심리적 추위는 계나를 바라보는 일그러진 시선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우리는 그것을 편견과 차별이라 부른다.
계나는 남자친구인 지명이의 가족과 식사를 했을 때 이미 그 차가운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명이네 가족은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강남 유한 마담인 엄마,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유한마담 후보생인 누나와 강남에 살고 있었다. 이와 달리 계나는 경비일을 하시는 아버지,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언니와 그냥 놀고 있는 동생과 아현동 뒷골목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명이의 가족 모임에 참석했다. 전형적인 한국 부모가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던지는 질문을 어느 정도 예상하며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지명이 부모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심지어 지명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물론 이 상황에 대한 배려심이 차고 넘치는 지명이의 설명은 이렇다. 부모님께 계나의 집안 사정을 미리 말씀드렸고, 그 때문에 부모님은 아들의 여자친구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을 아예 하지 않으셨다는 것. ‘아~ 그랬구나. 날 배려해줘서 그랬던 거구나.’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시와 차별이 있음을 계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지명이는 쓸데없이 솔직하다. 두 달 뒤쯤 지나서 지명이가 아버지에게 계나와 헤어지라고 말하는 메일을 받았지만, 자신은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다며 떠듬떠듬 말한다. 이것만 봐도 지난 가족 모임의 상황이 계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으며, 지명이의 부모님은 계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음이 뻔히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 부모님이 너랑 헤어지래.” 라고 그대로 전달하는 지명를 보며 이건 뭐 순수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아니면 대화 기술이 부족한 것인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이참에 효도나 해라. 우리 헤어져.” 라고 말하는 계나의 사이다 발언이 꽤 시원했지만, 마음은 꽁꽁 얼어붙었을 것이다. 연애사업 이외에도 취업이나 회사생활처럼, 매일의 일상에 이런 차별과 무시를 당하는 일이 잦았을 테니까.
그런데 심리적 추위는 계나만이 느끼는 특수한 증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는 것이었나 보다. <한국이 싫어서>가 출간된 2015년, 한 리서치 기관(마크로밀엠브레인)에서 고등학생부터 50대 직장인까지 총 1천 명을 대상으로 마음의 온도를 주제로 조사한 적이 있다.
심리적 추위와 계절적 추위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냐는 질문에 78.1%가 심리적 추위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심리적 체감 온도인 마음의 온도는 몇 도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의 평균값은 약 영하 14도로 나타났다. 심지어 79.1%의 사람들이 앞으로 마음의 온도는 더 낮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롱패딩이 미친 듯이 팔리던 그해의 겨울을 생각해보면, 잠시 잊고 있던 영하 14도의 추위가 다시금 느껴진다. 그 정도 추위를 마음으로 느낀다니, 다들 마음에 시베리아 벌판 하나씩은 품고 사는가보다. 하긴 당장 월급이 오르지 않는 한, 마음의 온도 또한 오를 리 없다.
앞선 설문조사에서 마음의 온도가 더 낮아질 거라고 답했던 이유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많은 답변은 “갈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세상이 될 것 같아서” 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외에도 경제 전망이 밝지 않아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이 줄어들어서, 세상 인심이 각박해져서, 여가 및 휴식이 부족해서 마음의 온도가 낮아진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경쟁은 심해지고, 경제 성장률도 점점 더 낮아질 일만 남았다는데. 어쩌지?
그래서 등장했던 단어가 바로 헬조선. 현재 우리 사회 전반에서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한 국가명 앞에 “헬(Hell, 지옥)"이라는 단어를 붙이다니, 극단적이다. 얼마나 싫고 괴로웠으면 지옥이라 표현했을까.
하지만 지명이 놈은 또 그럴 거다. 아무리 그래도 객관적으로 전 세계 다른 국가에 비하면 한국은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꼭 반박하고 싶다. “더 나아진다는 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한국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경우가 거의 없고, GDP도 여전히 조금씩 높아지고 있으며, 누릴 수 있는 물질문명과 편리도 크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옥이다. 같은 노력을 부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과에 격차가 크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상승 욕구가 큰 편이다. 하지만 IMF 이후 소위 금수저로 통칭하는 기득권층은 더욱 견고해졌고, 고용 안정성은 낮아졌으며, 타고난 부의 크기를 뒤엎을 수 있는 신분상승의 기회는 줄어들었다.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길에서 한 번만 어긋나도 기회는 급격히 멀어진다. 시작점부터 격차가 크니, 여러모로 현재 상황을 뒤엎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다. 그 가능성만 공정하고 충분하다면, 그래도 현재의 어려움을 버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계나는 그 희망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서는 경쟁을 해도 만년 2등 시민일 것 같고, 신분 상승의 기회는 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한 번 낙오되면 아주 사람 취급도 안 해준다고. 그러니 배려나 존중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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