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 들진 못하지만 같이 걸을 수는 있으니까
얼마 전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본 건 6개월 전이었는데,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원래는 감성적인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꿈 많은 대학생이었다. 언젠가는 꼭 자기가 쓴 글을 모아 출판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주식 투자를 하며 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취직 준비를 하고 돈을 버는 걸 보니 불안해졌다고 한다. 글쓰기로 먹고살 수 있을까 싶어서 요즘 많이들 하는 주식에 도전 중이라고 했다. 좀 어떠냐, 재미는 있냐는 질문에는 멋쩍게 웃으며 차트 확인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한다고 했다. 예전에 나와 문학 이야기를 할 때보다는 확실히 덜 행복해 보였다.
그런 시대가 온 것 같다. 점점 더 많은 걸 요구하는 시대 말이다. 그 친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먼저 대학생으로서 주어진 공부를 해야 하고, 작가가 꿈인 사람이기에 글을 꾸준히 써 봐야 한다. 이렇게만 보면 열심히 공부하고 꿈에 도전하는 대학생 청년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주어진 역할이 여기까지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추가로 몇 개가 더 있었다.
그는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에서 어떻게 자리를 찾을지 고민하는 구직자였다. 또 스스로의 생계를 신경 써야 하는 알바생이였다. 불확실한 미래에 홀로 뛰어들어야 하는 23살이었다.
물론 23살이라 하면은, 여러 가지 일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도 아직까지는 용서되는, 그래서 한창 이리저리 방황하는 나이긴 하다. 그러나 점점 더 사회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나이에 적합하지 않은 고민을 강요받는 사람이 많아졌다. 취업, 생계, 학점, 꿈을 모두 한번에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대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실제로 해내는 몇몇 능력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인 이 사회에는 지금 우울감으로 가득한 안개가 끼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성 세대의 노력,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 제일 중요한 젊은 세대의 각성 등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작용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개인 혹은 단체가 사회 여러 부분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고, 열렬히 응원한다. 빠르게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실제로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그들을 통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많은 젊은이들, 나아가 많은 사람들 어깨 위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또한, 그래서 더 많은 타인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타인이 짐을 대신 들어줄 수는 없다. 취업이건 꿈이건 모두 개인이 짊어져야 할 문제이고, 타인이 실제로 도움이 되어 주긴 어렵다. 하지만 서로가 어깨에 지고 있는 짐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혼자서는 얻지 못하는 위안과 안정을 얻을 수 있다. 그저 내가 이만큼을 지고 있고, 힘들게 살아간다는 걸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어주는 게 타인이기 때문이다.
너무 과한 짐들이 우리에게 맡겨지는 요즈음, 결국 의지해야 할 건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황재현
자다가 가끔 깨면 글을 씁니다. 쉬운 글, 어려운 글 다 쓰지만 그 능률은 바닥을 기기에 영감이 올 때 꼭 펜을 잡아야 합니다. 쓴 소설이 운 좋게 문학상을 받아서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