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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Feb 05. 2019

두바이 말고 벨기에 가자

작은 파리 브뤼셀

남편은 한국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을 확신했다. 두바이로 한국 축구 응원을 가자며 설레발을 쳤다. FIFA 랭킹 1위의 독일도 이겼던 한국이다. 한국이 아니면 누가 아시아컵 결승에 진출하겠냐며 오직 승리만 있을 것처럼 말했다. 호기 가득했던 남편의 예상은 빗나갔다. 8강에서 FIFA 랭킹 93위 카타르에게 어이없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이스탄불까지 전해졌다. 이미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터키에서 “아부다비 쇼크”에 시달렸다. 카타르와 일본의 결승전이 있을 두바이에 가서 뭐하나? 20년 산 붉은 악마, 축구광인 남편의 정신적 고통에 공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라도 가자. 우리는 여행의 방향을 중동에서 유럽으로 돌렸다. 유럽은 어느 나라를 가든 한인마트 천국이니 장이나 봐와야겠다 생각하고 식재료 재고조사에 나섰다. 라면, 돼지고기류, 양념 등 부족한 것이 꽤 있었다. 올 7월이나 한국에 다녀올 수 있다. 지인 찬스도 쓰고 틈틈이 여행 다닐 때마다 식재료를 보충해야 한다. 김 센 두바이 말고 장 보러 벨기에나 가보자.




목요일 밤에 도착해서 잠만 자고 금토일, 짧은 3박 4일 일정이었다. 우리는 평소 여행 패턴대로 느리 적 느리 적 8시쯤 일어나 호텔 조식당에서 구글링을 하며 일정을 짰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들은 자연사 박물관 가자고 했고 남편은 브뤼셀의 중심인 그랑플라스 광장 가서 감자튀김과 홍합요리를 먹자고 했다. 나는 기차를 타고 브뤼셀에서 30분 거리에 중세 도시 겐트 가고 싶었다. 대략 동선을 체크해보니 우리가 묵는 호텔 근처에 아들이 가고 싶다던 자연사 박물관이 있었다. 일단 오늘은 브뤼셀 왕립 자연사 박물관과 그랑플라스 광장 주변을 둘러보고 겐트는 다음날 가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 보낸 첫겨울은 한국처럼 춥지도 않았고 눈도 거의 오지 않아 밍밍했다. 매운 추위 한번 없이 이스탄불의 겨울이 끝나가고 있을 때 우리는 벨기에에 왔다. 브뤼셀에 오니 마치 한국 같은 진짜 겨울 느낌이 났다. 바깥에는 아침부터 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아들은 세계 최대 공룡 화석을 본다며 신이 나서 강아지처럼 뛰어 나갔다. 

 

세계 최대 공룡 화석 박물관 


세계 최대 공룡 화석 박물관이라더니 들어가자마자 공룡 화석 퍼레이드가 장관이었다.     

브뤼셀 자연사 박물관은 다른 유럽의 박물관과 비교해도 공룡 화석은 단연 최고다. 티라노 사우 로스, 파라 사우 롤로 포스, 트리케라톱스 등 수십 개의 거대 공룡 화석이 아이들을 맞이했다. 현지 유치원과 학교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견학을 와 있었다.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체험 수업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신나 보였다. 이 수많은 거대한 공룡 화석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으로도 이 곳에 올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아들은 두 눈이 반짝였고 동작도 빠릿빠릿해졌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몇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특히 벨기에의 Bernissart지역의 성 바바라 탄광에서 발견된 공룡 화석 발굴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1878년에 성 바바라 탄광에서 황철석 층에 묻힌 이구아노돈의 뼈가 발견되었다. 이 소식이 벨기에 왕립 자연사 박물관에 전해지자 학예연구사와 노동자들이 발굴에 착수했다. 완벽에 가까운 20여 마리의 이구아노돈 화석을 발굴하게 된 현장과 스토리를 지하 전시실에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이때 발굴된 화석 덕분에 백악기 거대 초식 공룡인 이구아노돈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살아난 이구아노돈 화석은 이후로 벨기에 왕립 자연사 박물관의 자랑이 되어 세계 최고의 공룡 화석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을 선사했다.

탄광에서 최초 발견된 공룡 화석
거대한 공룡 화석 발굴지를 재현한 전시
박물관의 노동자들이 공룡화석에서 진흙과 광물을 제거
뼈 조각을 맞추며 화석의 모양을 복원

유럽의 박물관은 전시물의 발굴이나 복원 과정을 상세하게 밝히는 경향이 있다. 벨기에 왕립 자연사 박물관도 ‘어떻게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지’ 그 현장과 연구자의 작업 과정을 상세하게 전시하고 설명해 놓았다.  거대한 공룡 화석을 감각적으로 전시한 컬렉션도 훌륭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이 위대한 자연유산을 발굴하고 복원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흥미진진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와'하며 감탄하게 만든다.




편의점과 펍에서


공룡 탐사에 오전 시간을 훌쩍 보내고 나니 배가 고팠다. 민생고를 해결을 위해서는 중심가인 그랑 플라스 광장으로 가야했다. 버스를 타려니 잔돈이 하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물 한 병을 사고 100유로를 내밀자 가게 주인은 잔돈이 없다며 단박에 물을 안 판단다. 역시 유럽인에게 한국식은 얄짤없다.


그냥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잔돈을 바꾸기로 하고 점심 메뉴와 맥주를 곁들여 파는 유럽식 펍에 들어갔다. 우리는 닭고기 슈니첼과 홍합 파스타, 벨기에식 감자튀김과 맥주를 맛보기로 했다. 남편은 낮부터 마시기엔 조금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수도원 맥주를 시켰다. '안 하던 낮술 하다가 정작 브뤼셀 중심가는 나가 보지도 못하고 호텔로 후진하면 어쩌나!' 나는 남편이 시킨 맥주를 조금 빼앗아 먹을 작정이었다. 맥주에 맞는 컵이 없으면 맥주를 아예 팔지도 않는다는 벨기에! 맥주의 고장답게 점심시간부터 사람들은 온통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가 시킨 맥주는 와인잔같은 전용컵에 나왔다. 에일 맥주는 풍미가 깊고 맛있었다. 낮술에 뻗을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한 병 더 맛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바이킹이나 마셨을 거 같은 손잡이가 세 개 달린 도자기 컵에 따라 줬다. 전용컵이 정말 맛과 연관이 있는 건가? 시키는 것마다 유니크하고 맛도 좋았다. 동물성 기름에 튀긴다는 벨기에식 감자튀김은 주로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다. 남편이랑 아들은 고소하다며 잘 먹는데 나의 한국식 입맛은 케첩을 찾게 한다. 케첩 추가도 1유로씩 받는 팍팍한 유럽에선 수혜자가 비용을 감당한다는 게 기본 개념이다. 한국인은 너무 계산적으로 따지면 정없다고 싫어할 지도 모른지만 유럽인에게는 이유 없이 더 주는 에누리나 덤은 상식이 아니다. 유럽인은 비용이 지불되지 않는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면 판매하지 않는다는 마인드와 맥락이 같아 보인다. 유러피안의 합리성은 정확함이다.




브뤼셀의 심장 


우리 부부의 낮술은 만족스러웠지만 아들은 살짝 지루했나 보다. 벨기에의 수도 부뤼셀에서 가볼만한 곳 1위는 그랑플라스 광장이라며 아들이 먼저 서둘렀다. 남편도 벨기에의 상징인 오줌싸개 동상과 추억의 스머프 박물관도 가봐야 한다며 따라나섰다. 나는 별 의견도 없이 설렁설렁 뒤를 쫓았다. 구글맵을 보니 그랑플라스 광장 근처에 거의 옹기종이 모여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근처만 돌아다녀도 좋을 것 같았다. 식당 앞에서 71번 delta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먼저 EU 본부처럼 아주 현대식 건물들을 스치듯 지나갔다. 다음에는 벨기에 왕궁처럼 클래식한 건물 사이를 돌아 가로질렀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그랑플라스 광장 근처 정류장에 버스가 섰다. 바로크와 고딕 양식의 건물들, 상점가인 길드하우스가 즐비하고 갤러리와 박물관이 혼재돼 있었다. 벨기에는 클래식한 유럽의 중심이었구나! 파리나 런던도 좋지만 유니크한 브뤼셀만의 멋이 느껴졌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랑 플라스 광장은 부뤼셀의 중심답게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나도 찍혔을 테고 이름 모를 누군가도 내 핸드폰에 찍혔을 것이다. 서로가 찍히는 걸 의식하지만 찍지 말라고도 못하는, 여기는 초상권의 공유지. 찍고 찍히며 광장을 한 바퀴 휘돌고, 근처에 있는 아시아 마트로 향했다. 우리가 여기온 목적 중 하나인 한식 재료 장보기를 위해 두 팔을 걷어 부칠 차례였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에게 밥은 생존이므로. 중요하고도 급했다.


                                                                                                                                      -  겐트 편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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